黃華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251년에 오군이 여수를 막는 것을 기회로 왕릉이 군사를 일으키려고 했는데, 왕릉이 오군의 토벌을 상주했다가 조서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답장을 받았다. 왕릉이 양홍을 파견해 조방을 폐위하는 일을 알리자 황화는 양홍과 함께 이 일을 사마의에게 알렸으며, 황화 이전에는 왕릉과 함께 일을 꾸미던 영호우였지만, 질병으로 사망했기에 황화가 후임으로 연주자사가 된 것이다.
황화가 왕릉에게서 조방을 폐위하려던 일을 조정에 알리면서 왕릉은 군사를 일으키기도 전에 일이 발각되어 사마의에게 추궁받았으며, 결국 왕릉은 수도에 도착하기 전에 독약으로 자살했다.
태평광기에서는 동신(董莘)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