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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터카이펙(Hinterkaifeck) 농장의 전경.
이건 농장의 내부를 CG로 재현한 영상이다.
1922년 3월 31일, 독일 바이에른 주 힌터카이펙 농장에서 벌어진 의문의 일가족 피살사건. 독일 역사상 가장 미스테리한 미해결 사건으로 회자된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인 힌터카이펙은 사실 정식 명칭은 아니다. 이 농장은 인근의 작은 시골마을인 카이펙(Kaifeck)에서 외따로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래서 이 이름이 붙은 것이다. 독일어로 Hinter는 '뒤에', '뒤쪽에'란 뜻이다.
1 힌터카이펙 농장의 비극
사건이 발생한 것은 3월 31일 금요일 저녁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현장의 상황으로 추측만 할뿐이다.
살해된 사람은 65세의 농장주인인 안드레아스 그루버와 그의 부인인 72세의 세칠리아[1] 그루버, 부부의 딸인 35세의 빅토리아 가브리엘, 외손녀인 7살의 세칠리아와 2살의 요제프, 그리고 농장의 고용인인 44살의 마리 바움가트너였다. 이들 중 마리 바움가트너는 사건이 벌어지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이 농장에 도착한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곡괭이에 머리를 강타당해 살해되었으며, 6명 중 그루버 부부와 딸 빅토리아 가브리엘, 7살의 세칠리아는 헛간에서 발견되었고, 2살의 요제프와 마리 바움가트너는 집 안에서 발견되었다. 이로 미루어 보면 범인(혹은 범인들)은 그루버 부부와 빅토리아 가브리엘, 세칠리아를 어떤 수단으로든 헛간으로 유인해서 살해한 후, 집 안으로 들어가 어머니 침실의 아기침대에서 잠들어 있던 요제프와 하녀방에 있던 마리 바움가트너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이 발견된 건 매우 늦었다. 토요일과 월요일에 학교에 나와야 했던 세칠리아가 등교하지 않았고 일요일에는 가족들이 교회 예배에 나오지 않았다. 화요일에는 기계 수리공이 농장을 방문해 5시간 동안이나 기계를 고쳤지만 농장 사람들 어느 누구도 나와보지를 않자 의아하게 여긴 기계 수리공이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고 힌터카이펙 농장 사람들이 도통 보이질 않는 걸 이상하게 여긴 마을 주민 몇명이 농장에 찾아왔다. 이들과 동행한 우편 배달부는 자신이 토요일에 농장에 와서 넣어둔 우편물이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을 주민들이 농장에 들어왔을때 농장내 모든 건물의 문이 잠겨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민들이 헛간 문을 뜯고 들어가자 안에서 4명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이어 집안 문을 뜯고 들어가자 나머지 2명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화요일이 되어서야 농장에 갔던 것은 힌터카이펙 농장이 마을 중심부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있었던 데다가 안드레아스 그루버가 괴짜이자 구두쇠로 취급을 받아서 마을 사람들과 평소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2 수사
마을 주민들의 신고로 다음 날인 4월 5일, 뮌헨에서 수사관들이 농장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관들은 농장을 정밀히 수색해 헛간 주변에 짚이 깔려있는것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 깔아둔 것으로 보였다. 또한 헛간 지붕밑에 누군가가 잠을 잤던 흔적도 발견되었다. 또한 헛간 지붕위에는 농장 전체를 살펴보기 편하려고 그랬는지 일부러 지붕의 기와를 몇장 뜯어낸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로 미루어보면 범인들은 사건 전부터 몰래 농장에 들어와서 농장의 상황을 몰래 살핀뒤에 저녁을 노려서 범행을 저지른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사건이 면밀히 계획되었을 가능성은 수사관들이 마을 주민들을 탐문한 결과에서도 확인되었다. 사건 며칠전에 농장 인근 숲에서부터 농장까지 이상한 발자국을 그루버씨가 발견했다는 것을 들은 주민이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근 숲에서 농장까지 들어온 발자국은 있었지만 농장에서 나간 발자국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거기에 지붕위에서 발소리같은 이상한 소리가 나거나 낯선 신문지가 떨어져 있는것을 발견했다고 들었다는 주민도 나왔다. 거기에 농장 건물의 열쇠 몇개가 없어진것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루버씨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묘하게도 그 정도쯤의 정황으로 보면 누군가가 농장에 몰래 숨어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러울 텐데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것은 이상한 점이었다.
경찰의 조사결과 사건이 일어나기 6개월 전에 농장에서 일하던 고용인 여성이 농장일을 그만두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녀는 "농장 전체가 뭔가에 사로잡혀 홀려있는게" 두려워서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후에 그녀의 진술에 의하면 집근처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고 기괴한 목소리도 들었으며 결정적으로 다락방에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서 매우 두려운 나머지 더이상 농장에 있을수 없었다는것. 그녀가 그만두고 6개월이 지나서 온 새 고용인이 마리 바움가트너였는데 그녀가 일을 시작하러 온 날은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당일이었다. 전에 일하던 고용인 여성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최소한 6개월여 전부터 힌터카이펙 농장에 수상한 침입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명확치는 않다.
사체들을 부검한 결과 살해된 사람들중 7살의 세칠리아가 습격후에 몇시간 정도 살아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이상하게도 세칠리아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난폭하게 쥐어뜯은 흔적이 나왔다.
당초 경찰은 인근의 우범자나 부랑자가 농장의 돈을 노리고 저지른 일이 아닐까라고 추정했으나 농장을 샅샅이 수색한 결과 안방에서 거액의 현금이 고스란히 발견되었다.
더 의아스러운 부분은 범인들은 그루버씨 일가를 다 죽이고 난뒤 며칠동안 농장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었다. 농장의 가축들에게는 그루버씨 일가가 살해된 이후에도 누군가가 먹이를 준듯한 흔적이 있었고 부엌에서는 빵과 고기를 먹은 흔적이 나왔다. 또한 사건 당시 주말에 농장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걸 목격한 주민도 있었다. 만약 범인들이 돈을 찾기 위해서 농장에 머물렀다면 분명 현금을 찾아냈을 것이지만 그 현금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는 점에서 원한관계의 살인이라는 쪽으로 수사방향이 전환되었다. 그러나 원한 관계의 문제도 드러나는 게 없었다.
바이에른은 가톨릭 교회의 세가 강한 지역이고 그 마을도 가톨릭 신도들이 대다수였던지라 범인이나 누군가가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해서 사건의 정황이 일부 드러났을 개연성도 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수사기록에는 신부의 증언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신부가 고해성사로 사건의 정황을 들었더라도 수사관들에게 이야기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지적도 있기는 하지만 의아스러운건 그루버씨의 딸인 빅토리아 가브리엘이 사건이 일어나기 몇시간 전에 고액의 헌금을 교회 고해실에 두고 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이로 미루어보면 신부도 수사관들에게 조사를 받았을 개연성이 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증언이 기록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의혹들 가운데 뮌헨 경찰의 수사관들은 사건 해결을 위해 전력을 기울였으나 외지인에게 배타적인 마을 주민들의 반감을 사서 사건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수년간 수백명의 마을 주민들이 조사를 받았으나 딱히 나온 것이 없었다. 일각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때 프랑스에서 전사한 빅토리아 가브리엘의 남편이 범인이 아니냐는 억측이 나오기도 했다. 실은 그가 프랑스에서 전사한게 아니고 살아있었다가 농장에 들어와서 범행을 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던 것이다. 이는 남편의 시체를 찾지 못했던데서 나온 이야기였지만 정말 그렇더라도 왜 그런 짓을 했을까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반론이 나온다.
3 사건 이후
피해자들은 모두 바이트호펜의 공동묘지에 매장되었고 묘지에는 이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이 때 시신들의 두개골은 함께 매장되지 못하고 아우크스부르크의 법원 건물에 있었는데, 여기가 그만 세계 2차 대전 때 폭격을 맞아 버렸다.
힌터카이펙 농장은 1923년에 철거되었다. 철거과정에서 다락방 지붕에서 곡괭이가 발견되었는데 경찰의 조사결과 그루버씨 일가족을 살해하는데 사용된 흉기로 드러났다. 현재 이곳 근처에는, 이 지역이 사건 현장이었음을 말해주는 조그만 기념물 하나만이 있을 뿐이다.
이후 뮌헨 경찰은 1955년까지 이 사건을 수사하다가 일시 수사를 중단했고 1986년에 다시 이 사건을 재조사했으나 이때도 새로 드러난 사항은 없었다. 결국 뮌헨 경찰은 수사를 종료하고 사건을 미해결로 처리했다.
아버지 안드레아스 그루버와 딸 빅토리아 가브리엘이 근친상간이었고, 그 결과로 태어난 게 아들 요제프였다는 소문[2]이 있으나 진상은 알 수 없다.
여하튼 힌터카이펙 농장에선 뭔가 기묘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과연 그런 기묘한 분위기가 살인이라는 끔찍한 결말을 이끌어낸 것인지는 지금에 와선 알 도리가 없다.
워낙 미스터리한 미제 사건인 만큼 독일에서는 여러번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차용되었다. 가장 최근 영화화된 걸로는, 2009년 독일에서 제작한 영화 '카이펙 머더(원제 Hinter Kaifeck, 영제 Kaifeck Murder)'가 있다. 한국에서는 제 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SCP 재단의 창작물 SCP-2127도 이 사건을 모티브로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