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소녀대

筋肉少女帯 (きんにくしょうじょたい, 근육소녀대)

우치다 유이치로(b) 키츠타카 후미히코(g) 오오츠키 켄지(v) 혼죠 토시아키(g)

약칭은 일본어로 筋少(きんしょう), 영어로는 kin-sho였지만 후에 king-show로 바꾸었다.
밴드명의 일본식 발음을 한글로 적으면 '킨니쿠쇼조타이'가 되며, 약칭은 '킨쇼'로 읽는다. 한국에서는 일본식 발음보다 주로 한자를 한국식으로 읽어 '근육소녀대' 혹은 '근소'로 읽는 편이다.

1 소개

80년대 초반에 결성하여 80년대 후반 메이저 데뷔 이후 ~ 90년대 후반까지 활약했던 일본록밴드. 멤버들간의 불화로 인해 주요 멤버들이 탈퇴하면서 활동정지했으나, 2006년에 '화해라이브'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재결성 후 현재까지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대표곡으로는 석가가 꼽힌다.

멤버는 여러 번 바뀌었으나, 라이브 행사 등에서 가끔씩 예전 멤버가 참여하기도 한다. 안녕 절망선생의 오프닝 곡으로 유명한 오오츠키 켄지도 이 밴드의 멤버.

특이한 밴드명의 유래는 (오오츠키 켄지가 밝힌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1. 인디 데뷔 시 명칭은 ‹筋肉少年隊(근육소년대)›로 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2. 하지만 당시 대인기 아이돌 그룹인 ‹少年隊(소년대)›가 소속된 쟈니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클레임이 들어옴. 따라서 기각.
3. 당시 오오츠키 켄지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경향도 있었다. 그래서 ‘소년’ → ‘소년소녀’ → ‘소녀’로 변화.
4. 隊(대)라는 한자는 불량소년 이미지가 있어서 맘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1] 그래서 이 글자도 바꾸었다. ‹筋肉少女隊› → ‹筋肉少女› (같은 발음)

인디즈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과격하고 정신나간 가사로 인기가 있었으며, 상당한 골수팬을 거느린 밴드. 음악적으로는 프로그레시브 록 + 헤비메탈 정도로 볼 수 있으며, 여기에 오오츠키 켄지 특유의 세계가 결합된 사운드를 보여 준다. 어쨌든 밴드 사운드로써의 완성도는 상당히 높은 편.

2008년 9월, 결성 14년 기념 라이브를 무도관에서 열었다.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인터뷰 등에서 알려진 대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아야나미 레이는 근육소녀대의 노래 중 하나인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우표"에서 이미지를 따서 디자인된 캐릭터이다.[2]

참고로, 보컬인 오오츠키 켄지는 세이키마츠의 데몬 코구레 각하와도 매우 친하다. 함께 라디오를 진행한 적도 있다. 음악계 선후배이기도 하지만(오오츠키 켄지가 후배), 괴짜끼리는 통한다고 해야 하나…

팀 내의 음악적 주도권은 베이시스트인 우치다가 잡고있으며, 고교시절 함께 만화를 그리던 오오츠키 켄지와 함께 근육소녀대를 결성한 이래, 이 두명만 여지껏 바뀌지 않은 멤버.(대규모 멤버 교체가 5~6회 있었다)[3]

오오츠키 켄지는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고, 당대에 외모를 무기로 상업성을 추구한 X JAPAN이나 BUCK-TICK을 강하게 디스하기도 했다.[4] 공연에서 자주 부르는 넘버인 踊るダメ人間에서 말하는 ダメ人間은 바로 Yoshiki를 가리키는 것.[5][6] 하지만 록 후지야마의 출연분 등을 보면 평소엔 상당히 조용한 편인듯 하다. 무대에서만 날뛰는 편.

2 멤버

#참고

2.1 현재 멤버

2.1.1 오오츠키 켄지[7](大槻ケンヂ)

보컬, 1966년 2월 6일생, 도쿄 출신
결성했을 때부터의 오리지널 멤버. 당초의 명의는 '모요코(モヨコ)', '오ㅡ츠키 모요코(おーつきモヨコ/大槻モヨコ)'[8] 등.
애칭은 오켄(オーケン). 결성 당시에는 보컬&베이스 담당이었지만 곧 노래하며 베이스를 칠 수 없는 것을 알게 되고, 보컬에 전념하게 된다.
엔도 미치로, 마치다 코우, 하세가와 히로토모 등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보컬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악곡의 가사를 쓰고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작곡도 어느 정도 하는 편으로 하드코어, 펑크, 테크노 팝이나 보사노바등 비교적 심플한 구성을 하면서도 폭넓은 악곡을 만들어낸다. 머릿속의 멜로디를 멤버들에게 알려주고 시범연주를 들어가며 만든다. 혹은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것을 메인으로 하는 작곡스타일 때문에 크레딧 표기에 있어서 후에 작곡자 크레딧이 'OO&근육소녀대'로 통일된 원인이 되었다.
작가, 배우, 탤런트로서도 왕성히 활동하는 중이다.
2006년 7월 재가입.

2.1.2 우치다 유이치로(内田雄一郎)

베이스, 1966년 2월 8일생, 도쿄 출신
결성했을 때 부터의 오리지널 멤버로서, 유일하게 밴드를 탈퇴한 적이 없다. 당초의 명의는 '유우(ゆう、ユウ)', '우치다 유우(内田ユウ)'등. 애칭은 웃치(ウッチー).
결성 당시에는 키보디스트였지만 오켄이 베이스를 칠 수 없었기 때문에 급히 포지션 체인지를 하게 된다. 특유의 선굵은 사운드와 베이스로서의 포지션을 지켜나가는 기묘한 라인구성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프로그레시브 록,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등을 좋아해서 근소의 곡 중에서 프로그레시브 느낌이 짙은 악곡이나 '라라미', '나의 죄', '탈주닌자'등의 기묘한 느낌의 악곡은 대부분 우치다가 작곡에 관여해 있다.
오켄과는 중학교부터 함께 한 동창생으로 '도테친즈', '가라데바카뽕', '망가도' 등에서 같이 활동. 특촬(토쿠사츠, 特撮. 오켄의 솔로 프로젝트)에서도 초창기에 재적했다. 게임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간 패미통에 연재를 한 적이 있다.

2.1.3 키츠타카 후미히코(橘高文彦)

리드기타, 1965년 12월 27일생, 오사카 출신
1989년-1999년, 2006년-현재까지 재적중. 1984년 헤비메탈 밴드 'AROUGE'로 메이저 데뷔한 이후, 재적해 있던 밴드가 해산하고 난 뒤 3년 후인 1989년부터 미시바 사토시를 대체하는 형태로 근소에 가입. "미시바군과 같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가 관둬버려서"라고 후에 본인이 가입 동기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애칭은 후밍(フーミン)
초창기의 밴드 내 얼굴 담당비주얼계와 비슷한 의상, 메이크와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을 쌓는' 격한 기타솔로가 특징. 우치다 유이치로가 근소의 프로그레시브함, 오켄이 근소의 정신세계를 대표한다면 후미히코는 90년대 근소 음악성의 메인이었던 하드록/헤비메탈을 대표하는 존재로, 드라마틱하면서도 서정적인 악곡을 쓰는 편이다. 밴드의 실질적인 음악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메인기타는 깁슨플라잉브이와 카파리즌의 FVK.
2006년 7월 재가입.

2.1.4 혼죠 토시아키(本城聡章)

기타, 1964년 9월 10일생, 도쿄 출신
1982년-1985년, 1989년-현재까지 재적. 나고무의 중심인물인 케라와 함께 '우쵸텐'이라는 밴드에 참가했다. 같은 해 4월 6일의 라이브로 근소와 함께 아마추어 데뷰. 우치다의 고교선배라는 인연으로 결성 9개월 째의 근소에 겸직(兼職)이라는 형태로 가입. 당초의 명의는 '토시(トシ)'. 애칭은 '오이쨩(おいちゃん)'
1989년 재가입 후 1992년의 앨범 '엘리제를 위하여'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9] 뉴 뮤직이나 뉴 웨이브에 영향을 받아서 근소의 비뚤어진 팝 스러운 일면을 끌어내는 역할을 맡게 된다. 90년대 중반부터는 메인 송라이터적인 포지션이 되어 자신의 팝센스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멤버 각각의 취향을 살리는 폭넓은 스타일의 악곡을 만들고 있다.
현재의 메인기타는 펜더스트라토캐스터와 카파리즌의 데린저.

2.2 서포트 멤버

  • 미시바 사토시(三柴理) - 키보드, 1965년 1월 15일생, 1986년-1989년 동안 정규 멤버로서 재적했다. 그 이후에는 앨범 제작이나 라이브 활동에서 한번씩 서포터로서 참가.
  • 하세가와 코지(長谷川浩二) - 드럼, 1965년 4월 4일생, 재결성 이후의 녹음 작업에 꾸준히 참가.

2.3 이전 멤버

  • 오타 아키라(太田明) - 드럼, 1965년 6월 30일생, 1988년-1998년간 재적.
근소의 전성기인 '90년대의 근소'의 드러머로서 알려져 있다. 서포트 키보드인 미시바와의 인연으로 가입. 근육소녀대 활동중지 즈음에 탈퇴. 재결성시에 멤버로 다시 들어와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일신상의 이유로 거절했지만, 부활후의 근소의 음악활동에 게스트로 자주 참여했다. 이 인물의 빈자리로 인해서 부활 후의 근육소녀대에는 정식멤버로서의 드러머가 없다.[10]
인디즈 초기에서 메이져 데뷔 때까지 재적했던 드러머. 탈퇴 후에도 2집 앨범 Sister Strawberry의 수록곡 일본의 쌀(日本の米) 중간의 아버지와 아들의 만담 부분에 게스트로 참여했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P-MODEL 출신의 베이시스트 '나카노 테루오(中野テルヲ-신디사이저, 컴퓨터 프로그래밍)[11]'와 'KERA[12](보컬)'라는 멤버와 함께 'LONG VACATION'이라는 3인조 시부야계 팝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이 때 포지션은 드럼과 어쿠스틱 기타.
  • 세키구치 히로시(関口博史) - 기타, 1987년-1988년간 재적.
데뷔 앨범 仏陀L에 참가한 이후, 다른 밴드의 가입이 결정되서 근소를 탈퇴.
  • 이시즈카 베라 노리히로(石塚BERA伯広) - 기타, 1985년-1986년간 재적.
  • 토모모리 쇼이치(友森昭一) - 기타, 1987년 재적.

2.4 이전 주요 서포트 멤버

  • 요코제키 아츠시(横関敦) - 1988년 10월-1989년 2월간 재적.
통칭 '젯핑거'로 유명한 일본의 기타리스트. 2집 앨범 Sister Strawberry의 녹음과 그 후의 투어에 참가했다.

3 영상

인디즈 시절(1986년) 라이브 영상.

日本の米(일본의 쌀) - 1990년(추정) 라이브. 원곡과는 다른 버전이다.

踊るダメ人間 - 199?년 뮤직 스테이션[13] 출연 영상. 방청객들한테 뭐하는 짓이냐 오켄!!!

大釈迦(대석가) - 2008년 무도관 라이브. 중간에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인물은 초창기 드러머였던 미노스케.

  1. 사실 이 시기에는 여자 아이돌 그룹인 少女隊(소녀대)도 활동하고 있었다(…).
  2. '붕대로 새하얀 소녀', '덤의 1일을 받은 소녀는 새하얀 붕대로 얼굴을 감싸고 결국 방에서 나오는 일이 없었다' 등.
  3. 우치다 유이치로는 일본 음악인들 사이에서도 알아주는 터프가이로도 유명하다. 각트와 말다툼하는 과정에서 각트가 우치다에게 난 468살이니깐 당신보다 나이많음 드립을 치다 우치다의 철권에 각트가 얻어맞고 뻗으면서 그대로 상황정리됐던 일화도 있다.
  4. 물론 멤버 전원과 다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고, 일본 록계의 마당발이었던 hide와 근소 멤버들은 음악잡지에서 서로 대담도 하는 친분관계를 쭉 유지했고 BUCK-TICK과도 화해했다.
  5. 곡을 연주하며 멤버와 관객들 모두 ダメダメダメダメ人間、ダ~メ人間人間 이라는 후렴구 부분에선 X JAPAN의 이미지로 유명한 X점프(양 손을 서로 X자로 교차한 뒤 점프)를 한다.
  6. 화해콘서트에서 곡 연주 전에 퍼포먼스로 무대에 쓰러져 있는 멤버를 보고 오오츠키 켄지가 '니가 요시키님이냐?' 라고 하는 등, 대놓고 저격한다.
  7. 오오츠키 켄지 개인에 관해서는 항목 참조.
  8. 다소 여성스러운데, 상술한 것처럼 오오츠키가 근소 초창기에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던 게 이런 여성스런 예명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9. 이 이전에도 크레딧에 실리진 않았지만 '춤추는 다메닌겐(踊るダメ人間)'의 작곡에도 참여했다.
  10. 키츠타카 후미히코 曰 "근소의 드럼은 오타로 영구결번"
  11. 케이온!아즈냥나카노 아즈사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테루냥(…)
  12. 풀 네임은 '케라리노 산드로비치'. 어차피 이것도 예명이다. 참고로 남자.
  13. 즉, 공영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