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림(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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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현역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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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No.71
김광림(金光林 / Gwang-lim Kim)
생년월일1961년 3월 9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대전광역시
출신학교공주고 - 고려대
포지션외야수[1]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1984년 OB 베어스 1차 지명
소속팀OB 베어스(1984 ~ 1993)
쌍방울 레이더스(1994 ~ 1997)
현대 유니콘스(1997 ~ 1998)
쌍방울 레이더스(1999)
지도자두산 베어스 1군 타격코치(2004 ~ 2009)
두산 베어스 2군 감독(2010)
두산 베어스 2군 타격코치(2011)
NC 다이노스 2군 타격코치(2011 ~ 현재)

1993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응국(롯데 자이언츠)
이순철(해태 타이거즈)
이정훈(빙그레 이글스)
김광림(쌍방울 레이더스[2])
이순철(해태 타이거즈)
전준호(롯데 자이언츠)
김재현(LG 트윈스)
박노준(쌍방울 레이더스)
윤덕규(태평양 돌핀스)

1995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재현(LG 트윈스)
박노준(쌍방울 레이더스)
윤덕규(태평양 돌핀스)
김광림(쌍방울 레이더스)
김상호(OB 베어스)
전준호(롯데 자이언츠)
김응국(롯데 자이언츠)
박재홍(현대 유니콘스)
양준혁(삼성 라이온즈)
1996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정경훈(한화 이글스)김광림(쌍방울 레이더스)유지현(LG 트윈스)
1995년 한국프로야구 타격왕
이종범(해태 타이거즈)김광림(쌍방울 레이더스)양준혁(삼성 라이온즈)

1 개요

KBO 리그의 선수 및 지도자. 왼손 외야수로 교타자로서 명성을 날렸고, 타격왕에도 오른 적이 있다. 1993년과 1995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두산 베어스의 코치를 거쳐, 2012 시즌부터는 NC 다이노스의 타격코치로 활동하게 되었다. 전주의 첫 타격왕!!독종의 왼손타자, 김광림

2 선수 생활

공주고등학교 출신으로 1학년 때, 공주고 역사상 최초의 전국 대회 우승 멤버였다. 그 때 인연을 맺인 2년 선배가 바로 김경문.[3] 여하간 공주고의 전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활약하면서 고려대학교에 진학했고, 1984년 연고지 팀인 OB 베어스[4]에 1차 지명되어 입단하게 되었다. 다만, 고교 시절에 비해 대학 시절에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한 편.

프로 초년 시절에는 널뛰기 활약을 보였지만, 4년차인 1987년부터 3할 타율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1989년 도루하다가 스파이크에 손가락이 찍히면서 탈골 부상을 입었고, 이 때문에 고생하게 된다. 이 부상의 후유증으로 1990년에는 0.167의 타율을 기록하며 완전히 망쳤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극복하면서 마침내 1993년 생애 첫 골든 글러브 수상의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5]

그런데 골글 수상 직전, OB 베어스는 그를 쌍방울 레이더스선발 투수 강길용을 상대로 최동창과 함께 트레이드해 버린다.[6] 사유는 그의 부족한 클러치 능력 및 낮은 장타력. 물론 실제로 김광림은 프로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두자리 수 홈런을 기록한 적이 없었고, 50타점 이상 기록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유가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 교타자를 잡지 않은 것은 분명 실수였다. 특히 강길룡이 OB에 합류한 후 겨우 6승에 그쳤고 강길룡의 프로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9년에는 평균자책점이 10점대로 치솟는 등 OB 역사에 남는 실패한 트레이드가 되었다.

그렇다면, 쌍방울로 간 김광림은 어땠길래? 한 마디로 완전히 날아다녔다. 애당초 매일 야구 비디오를 보면서 공부하고 훈련한다고 평판이 좋던 사람이 독기까지 품었으니. 1994년에는 트레이드 충격 탓인지 부진했지만, 1995년 0.337의 타율로 생애 첫 타격왕에 올랐고, 홈런도 생애 최다인 7개(...)를 때렸다. 타점 역시 생애 최다인 49타점을 기록하면서 일약 쌍방울 공격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그 결과 1995년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고, 그 해 열린 한일 슈퍼게임에서도 맹활약하면서 대한민국 쪽의 MVP가 되었다.

그러나 1997시즌 기량이 상승한 조원우, 심성보가 외야 주전을 차지하면서 자연히 김광림은 밀려나게 되었고, 때마침 3할 타율을 치는 교타자를 현대 유니콘스가 눈독들여 1997년 6월 외야수 강영수, 공의식을 상대로 한 명목상의 1:2 트레이드로 데려갔고, 여기서 한 시즌을 뛰면서 1998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시즌 후 현대는 코치제안을 했고, 이를 거부하면서 자유계약 선수로 풀렸다. 결국 쌍방울로 돌아가서 1년을 있다가, 1999 시즌 막판에 은퇴를 선언하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그의 은퇴와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은퇴 경기는 하고 떠났다. 만일 쌍방울이 남았다면 쌍방울에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겠지만, 현실은(...)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현역 시절에는 악바리로 유명했다. 다른 선수라면 당연히 경기에 빠질 정도의 부상도 참고 뛰었다고 한다. 투수와의 기싸움에서도 절대 지지 않았다고.

3 지도자 생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04년 고교 및 대학 선배인 김경문의 두산 감독 취임 이후, 11년만에 두산으로 컴백했다. 타격 코치를 맡았는데, 전반적으로 두산 팬의 평가는 호의적인 편. 특히 김현수를 발굴하고, 그의 재능을 키우는데 일조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두산 베어스 2군 감독으로서는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10년 두산 베어스 2군 감독으로 임명되었지만, 1시즌만에 박승호가 2군 감독으로 임명되고, 그는 다시 2군 타격코치가 되었다.

김경문NC 다이노스 감독으로 임명되자, 두산 2군 타격코치였던 그도 스캔들 등으로 어수선했던 두산의 2011 시즌 후 NC 다이노스로 옮겨 2012년부터 NC 다이노스의 타격코치로 활동하게 되었다. NC 팬들은 그를 광림매직이라 한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84OB 베어스83151.245377122118413.344.305
198591165.30951401152397.357.337
1986101256.2466310012321630.297.323
1987102342.32711297
(2위)
21759
(2위)
1344.412.403
1988101311.3129721
(3위)
4
(3위)
22845831.424.372
198972211.2755865
(4위)
113291419.365.333
199082188.165316312116121.245.246
1991108361.307111196336492038.418.372
1992119383.287110163131451333.352.340
1993117430.300129183332491342.377.358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4쌍방울 레이더스119388.24093154431562040.330.311
1995119419.337
(1위)
141
(3위)
171749601653.432.406
(4위)
1996126449.303136196
(2위)
249691548.385.368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7현대 유니콘스117346.292101145
(5위)
23243940.379.362
1998102216.255558232126431.352.347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9쌍방울 레이더스71144.229335001211515.264.298
통산16304760.285135819450
(3위)
35431619170505.369.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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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B시절에는 중견수로 주로 출장했고, 좌익수 수비도 보았다. 현대에서는 좌익수 전준호,중견수 박재홍이 있기에 자동으로 우익수로 출장하는 등 전 외야 포지션을 다 봤다.
  2. 1993년의 성적은 OB에서 기록했지만, 골든글러브 시상식 전에 쌍방울로 트레이드되는 바람에 공식 기록에는 쌍방울로 되어 있다.
  3. 김경문은 1958년 생이긴 하지만 1년 유급한 전력이 있다. 동갑내기인 김시진에게 형이라 부르는 이유도 그것.
  4. OB는 1985 시즌 이동 전까지는 대전이 연고였다. 1986년부터 빙그레가 연고지로 들어왔다.
  5. 이 부상을 제외하면 선수 생활 내내 이렇다 할 중상을 입은 적이 없고, 규정타석에서 빠진 적도 없었기 때문에 한때 고무인간이라 불리기도 했었다
  6. 박동희 기자의 말로는 집에서 전구를 갈고 있다가 그의 팬에 의해 트레이드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구단이 아니고 팬에게... 김광림은 처음 들었을 때 만우절인 줄 알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