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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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容均
1895년 02월 25일 - 1984년 07월 06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호는 백봉(白峰)이다. 그의 아들 나종일은 김대중 정부 때 국가정보원 차장을 역임하였다.

1895년 전라북도 정읍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하고 있던 중인 1918년, 미국 대통령 토머스 우드로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 원칙 발표와 제1차 세계대전 종결로 인한 식민지 국가의 독립분위기에 따라 도쿄에서 김도연 등 다른 유학생들과 3.1 운동 직전에 2.8 독립선언을 발표하였다. 같은 해 4월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속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귀국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민주당 후보로 전라북도 정읍군 갑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하였다.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 구파에 속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뒤이어서 대한민국 국회에서 대통령 간선제에 따라 치러진 제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같은 해 9월부터 1961년 1월까지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전라북도 정읍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부터 1965년까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그의 호 백봉을 따서 대한민국 국회에서 백봉신사상이 수상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원래 성은 인데, 두음법칙 때문에 사전에는 씨로 나오는 것이다. 이분의 아들들은 본인의 성을 씨로 표기한다.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인 라종억 씨가 대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