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타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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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시절. 타이슨의 목 둘레는 약 20" (50c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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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988년도 시절 WBC, WBA, IBF 벨트를 모두 가진 채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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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계획을 갖고 있다. 아가리에 한 방 쳐맞기 전까지는."

(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이건 그리스 비극이군. 문제는 내가 주인공이라는 거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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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1 개요

Michael Gerard Tyson, 1966년 6월 30일 출생.

미국의 前 복싱 선수.

프로 통산 전적 50승 44KO 6패 2무효.

특기할 만한 대목을 꼽자면, 데 뷔후 38전째인 제임스 더글러스전에서 최초로 패배했다. 즉, 데뷔 직후 37연승. 여기에 20전째 처음 판정승을 거뒀다. 말하자면 데뷔 직후 19연속 KO. 괜히 센세이션을 일으킨 게 아니다.

2 복서로서의 인생

2.1 출생과 성장

2살 때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소년원에 수감되기도 했다. 더 화이팅에도 언급되는 비둘기 사건[2]은 실화로, 사람 패는 맛(...)을 깨닫고는 싸움질을 일삼았던 듯. 하지만 어린 시절에 유약했단 건 사실이 아니며[3] 강도짓을 일삼는 등 폭력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형과 나이프로 찌르며 놀았다(...)고 하니 정상인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타이슨의 회고록이나 일대기를 다룬 뉴스 등을 봤을 때 어린 시절 유약하고 소심한 아이였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맞는 얘기다. 타이슨 본인도 율리우스라 이름 붙인 애완용 비둘기가 동네 불량배에게 죽기 전까진 여자아이한테까지 맞고 다니던 소심한 아이였다고 회고한 바 있고, 본격적인 비행소년의 길로 빠져들게 된 것은 10살의 나이로 브루클린의 흑인 갱단인 졸리스톰퍼에 가입하고 나서부터이다. 12살 때까지 체포된 횟수가 38번이였다고(...)

2.2 핵주먹 타이슨

소년원 복싱 트레이너 바비 스튜어트에 의해 명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와의 만남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복싱을 시작했다.[4]

헤비급 복서로서 매우 작은 신장인 179cm(5 ft 10.5 in)로 헤비급 복서로는 엄청난 언더사이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체력과 맷집, 트레이드 마크가 된 체중 이동을 통한 강렬한 초스피드 연타로 1985년 데뷔 이후 연전연승을 거듭, 결국 1986년 11월 26일 약관 20세의 나이로 트레버 버빅를 쓰러뜨리고 WBC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덕분에 당시 국내에선 핵주먹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미국 링 네임은 아이언맨 Iron Man 로다쥬냐 Iron 마이크 타이슨.

복싱 역사상 강력한 챔피언은 여럿 있지만 그처럼 센세이셔널한 인물은 없어, 아직도 호사가들이 최강 논쟁을 벌일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타이슨의 강점은 양훅의 파괴력은 물론 전무후무한 수준의 빠른 전진스텝 그리고 정말 뛰어난 헤드슬립과 위빙, 페인팅, 풋웍 등 헤비급으로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독특한 인파이팅에 있다. 인파이터라면 당연히 맷집에 뛰어나겠거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위압감 이전에 거의 맞지 않는 복싱을 구사하는 선수였는데,[5] 그를 상대한 대부분의 장신 헤비급 복서들이 대부분 타이슨보다 리치가 길다보니 잽으로 찔러넣고 거리를 유지하는 전법을 구사했지만 타이슨은 종전의 선수들과는 달리 멈춰서 잽을 보는 대신 경지에 오른 헤드슬립[6]으로 광속으로 잽을 무력화시킨 뒤 들이대면서 원투를 치는 선수였기에 아웃복서들은 타이슨의 무시무시한 스피드를 가진 스텝에 추풍낙엽처럼 완파당했다. 헤비급 체중 레벨에서 타이슨처럼 엄청나게 빠른 공격 스피드를 가진 경우는 정말 드물다.[7] 거기다 작은 키에 비해 힘이 좋고 작은 덕에 펀치를 항상 올려치는 궤도였기 때문에 막아도 가드가 들리고 맞으면 턱이 들린다. 게다가 토니 터커[8]하고의 경기를 보면 터커와 타이슨이 잽싸움을 벌이는데, 타이슨의 잽이 터커에게 먼저 닿는다(...) 참고로 타이슨의 리치와 터커의 리치는 26cm가 차이난다.

2.3 몰락

그러나 빠른 성공만큼 몰락도 급히 닥쳐왔다. 트레버 버빅과의 타이틀 매치를 앞두고 양아버지이던 커스 다마토[9] 사망한다.[10] 소년원에서 처음 만나 복싱을 가르치고 출소 후에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복싱 뿐 아니라 글과 예절 등을 가르치면서 타이슨을 머리 빈 복서가 아닌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시키려 했던 아버지 이상의 존재였다. 멘토가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라면 커스 다마토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주었던 존재였다. 타이슨에게 커스 다마토는 단순히 트레이너라든가 멘토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커스 다마토가 타이슨에게 끼치는 영향은 지대했고 커스 다마토 사망 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여 어리숙했던 그를 노리고 사기꾼들이 접근했다. 커스 다마토가 살아 있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당시 타이슨에게는 그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사람이 없었다. 주위에 아부꾼만 가득 차게 되자 점점 타락하여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대중의 이미지도 나빠졌다. 대중의 이미지만 잃게 되었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커스 다마토 사후 타이슨의 기량 역시 후퇴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88년도 전반에 제이콥스가 죽고, 후반에는 제이콥스의 뒤를 이은 매니저와 세컨드 코치 루니와의 연속된 불화 때문에 훈련을 제대로 못하였고, 그 결과 타이슨은 점점 추락하기 시작한다.[11] 이러한 점을 알고 있는 복싱 팬들은 커스 다마토가 몇 년만 더 살았더라도 복싱의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며 아쉬워하고는 한다.[12] 게다가 코치라고 들어온 아론 스노웰과 제이 브라이트였다. 이 둘은 타이슨의 코치였지만 정작 실제로 보이는 모습은 타이슨의 훌륭한 부하(...) 수준이였으니... 그래도 10년 가까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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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대이변

그리고 1990년 2월 11일, 일본 도쿄돔에서 벌어진 WBC, WBA, IBF 헤비급 통합타이틀 전에서 당시 무명에 가까왔던 제임스 더글러스를 맞아 10회에 KO라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13] 이 패배로 그동안 37승 무패로 승승장구하던 타이슨의 커리어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며 권투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보나 인생 전체를 보나 이 경기를 기점으로 몰락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무하마드 알리와 레이 레너드 같은 전설들을 만든 전설적인 트레이너 안젤로 던디는 타이슨이 다마토 사후에 어깨 근육을 보면 연습량이 부족한 게 티가 난다고 언급했고, 크루저에서 헤비로 올라온 홀리필드가 타이슨을 이길 수 있단 말도 했었다.

뭐, 말은 그렇게 했어도 홀리필드는 더글라스를 KO시키고 벨트를 얻었지만 정작 타이슨을 피하였고, 복싱에 복귀한 조지 포먼과 붙었기는 했지만.

2.4 감옥행

이때쯤 발생한 데지레 워싱턴을 강간한 범죄는 돈을 노린 꽃뱀의 소행이라는 게 거의 확실했지만,[14] 이로인해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3년 형을 살기도 했다.

형을 살고 나온 후 다시 재기에 나서서 1996년 9월 6일 WBA 챔피언 자리를 다시 되찾는다. 그러나 헤비급 강자 에반더 홀리필드에게 TKO로 패하며 타이틀을 내주고 기세가 한풀 꺾이게 된다.

2.5 핵이빨


그리고 홀리필드와 리매치를 가지며 타이틀 탈환에 나서는데.. 이 리매치에서 복싱사에 길이 남을, 홀리필드의 귀를 깨무는 사고를 일으키고 Bite Tyson 핵이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15]과 더불어 사실상 은퇴나 다름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후 몇 번을 복귀했으나 루이스전, 윌리엄스전, 맥브라이드 전에서 패를 거듭,[16] 마침내 2005년 6월 12일 케빈 맥브라이드에게 TKO 패배를 당한 직후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이 핵이빨 사건은 보통 타이슨의 아무 이유 없는 정신 나간 돌발행동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발단은 홀리필드의 계속되는 고의 헤드버팅이였다. 물론 이빨로 물어 뜯는 게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홀리필드도 이 경기에서 딱히 매너 게임을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잘 보면 헤드벗 뿐만 아니라 로우 블로우에 은근슬쩍 니킥까지 시전한다. 이만하면 굳이 타이슨이 아니라도 누구나 빡칠 듯(...) 천하의 개쌍놈 등극한 홀리필드.

3 복서로서의 평가

한국에서는 최강자 떡밥의 단골손님이지만 실제 복싱 매니아들 사이에선 잘 봐줘야 프로복싱 전체를 통틀어 역대 top 50 끝자리에 들까말까하는 복서이다.[17] 당대 최고 실력자인 홀리필드, 레녹스와 싸워 모두 패했고 무엇보다 자기 관리를 잘못하여 전성기가 3년이 채 안될 정도로 짧았던 게[18] 가장 큰 이유. 격투 스포츠의 메인스트림인 미국에서도 타이슨의 평가에 대해 마찬가지긴 하지만 신체 능력과 기량만큼은 확실히 인간을 초월한 수준이었고 약물 중독과 수감으로 몰락하기 전까진 무적에 가까웠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 헤비급인 체중으로 라이트급 선수의 스피드를 가짐으로 인해서 나오는 폭발력, 적절한 스위칭에 의한 안정적이면서도 빠른 체중이동[19]은 그 어떠한 선수도 흉내 낼 수없는 그만의 엄청난 강점. 미국에서도 역대 최강의 복서를 꼽을 때, 타이슨의 커리어 전체는 언급되지 않으나 타이슨의 전성기는 반드시 언급되는 수준.

미완성 복서로서는 사상 최강이었음이 확실하기에 팬들은 만약 복서로서 완성 되었다면 권투 역사가 바뀌었을 거라고들 얘기하지만 이미 다 지나간 이야기.

스타성 하나는 대단해서 복귀 후엔 90년대 당시 경기당 평균 대전료가 3000만 달러가 넘었고 홀리필드전에선 한 경기 대전료가 5000만 달러를 넘겼을 정도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흉폭한 카리스마와 화려한 경기 스타일은 물론이고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빨도 대단해서 당시 엄청난 팬(+안티)들을 몰고 다녔다. 인터뷰에서 '공개 자위를 해도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꽉 채울 수 있다'고 장담했을 정도. 사실 지금까지도 복싱 헤비급의 마지막 월드스타이자 플로이드 메이웨더가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 복싱 최고의 슈퍼스타는 타이슨였다. 이때문에 전성기의 나이에 3년 형을 살아 복서로써 치명적인 공백이 있음에도 출소와 동시에 다시 등장했고 WBA 타이틀까지 획득한 것.

아무튼 상기한 카리스마적, 문제아적 행보로 오스카 델라 호야와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 복싱계 최고의 아이콘이였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니 아직도 타이슨이 으뜸인데?

그가 링을 떠난 뒤 헤비급의 흥행력은 비탈리 클리츠코와 블라디미르 클리츠코라는 두 거성이 주도하는 유럽으로 완전히 넘어갔고, 동시에 멕시칸 복서들의 주 무대인 라이트, 웰터, 미들급 등 경중량급이 미국 복싱계 대세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4 은퇴 이후의 삶

성격 탓에 아내를 두들겨 패고 천문학적인 위자료를 지급한다거나 그야말로 엄청나게 낭비하면서[20] 결국 2003년 파산신고했다(...) 참고로, 복싱하면서 번 돈만 3억 달러, 즉 3000억이 넘었다. 예금이 4억 달러였다고... 타이틀 획득 후 16년만에 파산인 셈이니 단순계산으로 1년에 200억씩 펑펑 쓴 셈. 현재는 이벤트에 얼굴 내비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중. 하지만 '내 평생 최고의 펀치는 로빈(마누라)[21]에게 날린 바디 블로우'라고 하는 걸 보면 그 인생에 한 점 후회도 없는 듯하다(...)


앨 고어는 그의 결혼 생활 동안 아내에게 헌신했다고 말합니다. 조지 부시도 결혼 생활 동안 아내에게 헌신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남자들도 하나같이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마이크 타이슨은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하여 진실만을 말합니다.
"난 내 부인과 삐-를 한 지 1년이 넘었어요. 내가 앤드류 갈라다를 신경이나 쓸 것 같습니까? 내 애들도 한 달은 못 봤어요. 그러니까 네가 알 바 아니야, 흰둥이 놈아. 한 달은 못 봤다고."
마이크 타이슨은 그의 부인과 섹스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건 당신들이 알 바가 아닙니다, 흰둥이 여러분.
마이크 타이슨을 대통령으로.

부시와 고어의 선거전이 한창일 당시 코미디언 크리스 락 쇼에 등장한 영상(...)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말썽 안 피우고 사람답게 살아서 많은 팬들이 안도하고 있다. 홀리필드와도 화해한 상태. 토크쇼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고, 홀리필드의 조미료 사업에 대해 서로 개드립을 날릴 정도로 친해졌다.[22]

2010년 1월 12일(한국시각)일자 WWE RAW에 아들과 함께 특별 출연하였다. 자세한 것은 크리스 제리코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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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국의 동물 관련 프로에 출연해서 키우는 법을 강의하기도 했다. 오오 이젠 동물애호가로써 본좌 먹을 기세 사실 타이슨이 원래부터 새를 좋아했고 복싱 안할 땐 늘 새 키우기로 시간을 보냈는데 그 경력이 워낙 길어서 이 분야에선 준전문가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워낙 키우는 새가 많다보니 소음 때문에 가끔 다른 주민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승질 같아서는 그냥 선빵 날렸겠지만 예상과는 달리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양해해달라고 통사정한다고 한다. 물론 타이슨이 찾아와서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새 울음소리에 매일 밤을 새더라도 양해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건 함정

2012년 갑작스레 스파이크 리 감독과 뉴욕 브로드웨이와 라스 베가스에서 자기 자신을 주제로 한 원맨쇼를 진행했다. 공연 직전 그의 극장 앞에서 배트맨 상영관에서와 같이 총기난사를 하겠다는 글이 타이슨의 트위터에 올라오기도 했지만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마이크 타이슨이 있는데 총기난사하겠다고 올리다니... 2013년 토니상 오프닝에 타이슨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

2014년 현재는 쇼프로 단골 손님에 복싱 빅매치엔 빠지지 않고 관전하는 잘 나가는 셀러브리티다. 스토리가 있는 캐릭터에 언변도 좋아서 여러모로 성공적인 방송 연예인의 삶을 살고 있다.

5 기타

그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브래드 피트가 무명 시절에 타이슨의 전처와 데이트를 했다가 그에게 폭행당할 뻔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 타이슨과 그의 전처인 로빈 기븐스는 이미 법적으로 이혼한 상태였으나, 이혼하고도 교류는 있었던 것.[23]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시즌8 16화에서 타이슨 본인 역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우연히 지나가다 우는 아이를 달래주는 부드러운 남자로 나온다.

그의 주먹박진영노래보다 약하다는 말이 있다

록키 발보아의 기획 단계에서 주인공 록키의 시합 상대로 고려되었고 타이슨 본인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으나, 실베스타 스탤론이 보기에 아무리 촬영이더라도 타이슨의 주먹에 맞으면 위험할 거 같아서 무산되었다.

2009년 행오버와 2011년 행오버 2편에서 본인으로 카메오 출연하였다. 짧은 출연이었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3년에 개봉한 실베스터 스탤론과 로버트 드니로의 주연인 영화 그루지 매치에도 카메오로 출연을 하였다. 그루지 매치가 앙숙이었던 두 복서가 30년만에 재경기를 한다는 내용인데, 영화가 끝나고 경기 매니저가 마이클 타이슨과 홀리필드를 불러서 재경기를 시키려고 설득을 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상대편 선수의 어깨를 물어 뜯은 수아레스에 대해서 열정 때문이라는 말을 남겼다(...) 개드립으로 옹호한 것은 아니고 "한순간의 열정과 뜨거운 피, 진정한 경쟁의식 때문"이라면서 "그런 순간이 엄습할 때면 우리는 진짜 경쟁적으로 변하고 나쁜 판단을 내리곤 한다"라는 발언에서 보듯이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해설한 것에 가깝다.

같은해 2014년에 어느 라이브 쇼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타이슨의 성폭행 전과 기록에대해 거론하자 진행자에게 쌍욕을 퍼주었다.
후반에는 진행자가 겁먹어서 타이슨 눈길도 피해고 말도 더듬었다한대맞을까봐 몸사렸을듯보러가기(한글번역판)

어덜트 스윔에서 타이슨을 주연으로 한 애니메이션도 나왔다. 타이슨의 수양딸로 한국계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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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 팬으로 알려져 있다.[24] 레슬매니아 14 시즌 무렵 WWF 얼굴을 들이밀었고 스티브 오스틴은 타이슨에게 뻐큐를 날린 일로 엄청난 유명세를 얻었다. 빈스 맥마흔을 신경쓰면 지는 거다 나름 애티튜드 시대 WWE가 WCW에 반격을 시작할 무렵을 이야기할 때 빼먹으면 서운한 인물. 당시에 오스틴과 사석에서도 같이 다녔는데, 오스틴은 복싱 팬이고 타이슨은 프로레슬링 팬이라 서로 즐겁게 지냈다고. 오스틴은 자서전에서 타이슨에 대해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프로레슬링 팬이라서 그런지 메이웨더가 빅 쇼레슬매니아에서 이겼을 때 "이건 아니다" 라고 의견을 표시하기도 했다.


2016년 영화인 엽문 3에 출연했다.

6 타이슨의 패러디

더 파이팅마쿠노우치 잇뽀는 타이슨이 가진 매력적인 부분을 많이 차용한 캐릭터다. 파이팅 스타일도 비슷하며 일보 역시 타이슨을 롤 모델로 채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커스 다마토와 타이슨의 관계는 압천 관장과 일보의 관계와 많이 닮아있다.

심슨에 나오는 테이텀은 타이슨의 패러디. 매니저인 루시우스는 타이슨의 프로모터인 돈 킹을 모델로 했다. 해댄 전적은 엄마를 계단에 밀어트린 게 전부라 타이슨보다는 업보가 적지만. 극장판에선 아무도 안 볼 때 하반신 부분을 연타해대는 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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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가 나타났다



M.바이슨의 테마곡과 타이슨의 경기 장면을 합친 패러디 영상. 타격음이 어색하지 않다 펄펙

스트리트 파이터 2칙칙이 M.바이슨도 타이슨을 패러디한 캐릭터이다.[25] 이름부터 사실 마이크 타이슨의 적절한 변형[26]. 그러나 기본적으로 무식한 악역이라는 컨셉에 타이슨을 연상시킬 요소가 너무 지나치게 많았던 탓에(이름, 흑인남, 복서, 너무 힘이 셈, 폭력을 남발해서 문제가 됨, 얼굴 모습[27]) 이후 대대로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외수판에서 베가, 발로그와 서로 이름이 바뀌게 만드는 원흉(?)이 되었다. 타이슨의 선풍적 인기와 스트리트 파이터의 흥행 덕에 웬만한 격투 게임의 흑인 복서캐릭터들은 다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랑전설마이클 맥스 같은 경우가 대표적.

바키 시리즈에 등장하는 아이언 마이클 역시도 그의 패러디인데, 여기에서는 꽤나 대우가 안 좋다. 오토바이 몰고 다니는 폭주족이랑 난타전을 벌이다가 매니저가 복서로서 미래를 걱정하여 강제로 판정패를 당하지 않나, 교도소 3인방 콤비 파이터들에게 떡실신을 당하지 않나... 여러모로 안습하다.

이렇게 요약하고 보면 안습인 장면이지만, 실상은 대결하는 두 명 다 간지나게 그려지는 명승부였다. 하드코어한 면만 두고 보면 바키 시리즈 중에 가장 훌륭했다.

수라의 문 3부에서 아리오스 킬레인과 그의 스승의 과거사는 타이슨과 커스 다마토의 관계과 비슷했다. 후에 매니저가 되는 남자도 완전 돈 킹과 판박이. 다른 점이라면 외견은 당연히 다르고 스승이 사망했을 때 타락하지 않고 절대로 패배하지 않겠다라는 맹세를 했다.

무서운 영화 4편에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패러디한 장면에서 타이슨을 패러디한 인물이 나온다. 권투 경기 중에 닥치는 대로 귀를 물어뜯어 뱉어 죽이는 괴수.

로쿠데나시 블루스의 주인공 마에다 타이슨은 프로레슬러 마에다 아키라와 마이크 타이슨 이름을 합친 것.

7 관련 링크

  1. 제임스 토벡 감독의 영화 <타이슨> 을 보고 직접 한 말이라 한다.
  2. 10살일 때 도둑질한 돈 700달러로 새들을 사서 길렀는데, 누군가가 그 중 한 마리를 훔쳐 목을 잘라놓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자 생에 최초로 싸움을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도둑놈 면상은 묵사발 신세로.
  3. 이건 데니스 로드먼의 일화와 혼동된 듯하다.
  4. 비하인드 스토리를 나열하자면, 타이슨은 알리가 소년원에 강의 온 것을 보고 호기심에 복싱을 배우겠다고 스튜어트에게 간청해서 스튜어트는 행동을 똑바로 해야 가르쳐 준다는 조건을 걸고 가르쳐 주게 된다. 그 후에 타이슨이 스튜어트에게 자신이 이길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을 들은 스튜어트는 프로 복서의 내공으로 타이슨을 떡으로 만들어줬다. 하지만 타이슨이 끝까지 달려드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스튜어트가 다마토에게 데려다 주게 된 것이다.
  5. 위의 영상 1분 29초부터 보면 펀치를 바닥에 기는 수준의 낮은 위빙으로 피한다. 물론 그걸 무리해서 따라가려는 상대의 자세는 흐트러지고...
  6. 머리만 살짝 돌려서 잽을 무력화하는 방법. 만화에나 나오는 종잇장 한 장 차이로 피하는 수준의 반응이 필요하다. 거의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의 V-ism 코디 트래버스가 보여주는 회피와 동급. 그 덕에 제로 3의 V-ism 코디는 손꼽히는 개캐다.
  7. 다른 헤비급 복서보다 같은 시간에 한두 스텝은 더 밟을 정도니 미들급에서도 나오지 않는 공격 스피드를 가졌다고 봐도 된다.
  8. 레녹스 루이스 전 세대 아웃복서, 전 IBF 챔피언. 타이슨과 경기 당시 34전 34승 29KO의 전적을 가지고 있었음. 타이슨과 경기를 가지고 1패를 적립한 후 90년도에 복귀, 하지만 15파운드가 쪄버리는 바람에 예전 기량을 보여주지는 못했음.
  9. 타이슨이 16살 때 어머니를 잃자, 그를 양자로 받아들이면서 이끌어주었고 당시 타이슨을 유일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타이슨의 어머니는 커스 다마토가 타이슨을 돌보면 사람 구실은 하고 살 거란 희망을 가지고 타이슨을 맡겼으며, 타이슨 역시 자신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가족을 버린 건달인 친부보다 커스 다마토를 아버지로 따랐다.
  10. 마이크 타이슨은 당시 아버지를 잃었다고 크게 상심했다.
  11.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김대환의 6부작 칼럼 참조. 아름다운 사제지간.
  12. 일단 지미 제이콥스는 타이슨의 '서양식 친구'이자 사실상 대부, 즉 다마토 다음으로 타이슨을 잘 조절했고, 루니는 타이슨의 장점을 최대한 녹슬지 않게 연마해 주었다. 하지만 돈킹, 기븐스와 얽히기 시작하고, 88년 3월에 제이콥스가 죽고, 루니까지 주변의 농간에 의해 반강제 해고 당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자 타이슨은 재능이 급속히 추락했다. 실제로 90년도 2월 경기를 가지기 전 스파링을 하는 동영상이 있는데 타이슨이 카운터 맞고 다운되는 동영상이였다. 마이크 타이슨 스파링 도중 다운.
  13. 당시 제임스는 진짜 '떡밥'이었다. 실제로 타이슨을 역전 KO로 이긴 다음 에반더 홀리필드와의 1차 방어전에서 3R KO를 당하고 타이틀을 바로 반납하였다.
  14. 아이러니하게 타이슨의 폭언으로 인하여 불리한 판결을 받았는데 그년과 그년의 어미를 죽였어야 했다라고...
  15. 그 무렵에 타이슨 비슷한 모델이 권투 선수 차림으로 나와 어느 특정 회사 가방을 물어뜯는데, 핵이빨에도 끄떡 없다던 광고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애플 로고마냥 물어뜯긴 귀 모양의 초콜렛이 나온 건 덤. 이건 홀리필드의 굴욕인데...
  16. 대니 윌리엄스전 때는 한창 다시 정신 차린답시고(사실 파산해서 돈 벌어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파퀴의 코치인 프레디 로치를 영입해서 한창 훈련 중이였다. 그러나 너무 몰아치는 바람에 무릎 인대가 찢어졌고, 결국 역전패한다. 그 후에 몇 달간 휠체어 타고 지냈었다고 한다.
  17. 모든 체급 역대 50위 순위는 결코 낮은 게 아니다. 이 top 50 순위는 ESPN에서 뽑은 건데, 이건 19세기 후반의 근대복싱까지 포함한 전 체급을 대상으로 매긴 순위다. 현대 복싱이라고 할 수 있는 1950년대 이후의 헤비급 복서 가운데 타이슨은 전체 9위에 랭크되어 있다. 참고로 로이존스 주니어는 46위, 조지 포먼은 20위, 무하마드 알리는 2위. 최근 자료는 아니지만 메이웨더는 48위로 평가되어 있다.
  18. 첫 챔피언이 된 시기가 86년도이고, 더글라스에게 패한 때가 90년도이다. 데뷔에서부터 전성기로 잡으면 수감까진 6년.
  19. 이 정도면 (물론 필사적 노력을 하긴 했겠지만) 단순히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천재적 재능의 영역이다.
  20. 어느 파파라치는 그를 따라다니면서 돈을 그야말로 물 쓰듯 펑펑 쓰던 걸 봐서 머지않아 망한다고 예상했다(...)
  21. 전처 이름이 로빈 기븐스이다.
  22. 홀리필드가 만드는 조미료가 있다면 홀리필드 귀때기도 먹을 만 했을 거라는 드립을 쳤다. 거기에 홀리필드가 먼저 자기 귀때기맛을 타이슨에게 물어보라고 개드립을 날렸다.
  23. 2012년 12월 야후스포츠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로빈 기븐스와 이혼소송 중에도 수시로 성관계를 맺곤 했다고 한다. 로빈 기븐스가 자신 외에 브래드 피트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안 후로는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
  24. 특히 WWE 2대 월드 챔피언이자 최장기 챔피언인 브루노 삼마르티노의 팬이라고 한다.
  25. 사실 스트리트 파이터 1에 나온 복서 마이크도 타이슨의 패러디이다. 2편에서 사천왕으로 나온 복서와는 동일인물이 아닌 복서라는 것을 제외하면 전혀 다른 인물이다.
  26. M은 마이크의 약자.
  27. 예외인 건 바이슨은 거한이지만 실제 타이슨은 작은 체격이었다는 점. 그리고 바이슨은 모으기 캐릭터지만 타이슨은 러시형 파이터라는 것. 그런데 바이슨은 기술들이 죄다 모으기 커맨드인 주제에 주제에 러시 플레이가 주가 되는 캐릭터이다. 이건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