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든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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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1]

1 개요

스포츠 징크스 중의 하나.

일렉트로닉 아츠(EA)의 스포츠 비디오 게임인 매든 NFL의 표지모델로 등장했던 선수들은 해당년도에 성적 저하, 또는 부상에 시달린다는 도시전설급 징크스. 단지 비디오 게임 표지모델을 했다는 이유로 이런 설명불가한 슬럼프를 겪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 대체 무슨 한이 서려있는지 이렇게 처절한 징크스에 걸리게 된 것인지 그 이유조차 알 수 없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2 저주의 상세

2.1 1999 - 개리슨 허스트(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1997년 포티나이너스에 입단, 1998년 러싱 1,570야드에 터치다운 7개를 기록하면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당해 애틀란타 팰콘스와 가진 디비전 시리즈에서 발목부상을 당해 경기도 지고말았을 뿐 아니라 2001년도 까지 선수생활을 하지 못했다.

참고로 허스트의 커버는 미국 버전으로 출시된 것이 아니라 유러피언 PAL 버전으로 출시됐다.

2.2 2000 - 배리 샌더스(디트로이트 라이언스)

1998년 시즌을 1,491 러싱야드로 마친 배리 샌더스는 표지모델로 선정된 1999년 스프링캠프 개시 3주를 앞두고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만다. 당시 샌더스는 월터 페이튼[2]이 기록한 NFL 통산 러싱야드 1위 기록인 16,726야드 기록을 깰 수 있는 선수로 점쳐지고 있었는데 돌연 은퇴를 선언한 것. 여기에 팀이 워낙에 호구였다보니 슈퍼볼 우승도 못 해본 것은 덤.

여담으로 유러피언 PAL 버전의 커버보이였던 그린베이 패커스의 러닝백 도지 레븐스(Dorsey Levens)도 1998 시즌 무릎 부상 이후 1999년에 다시 1,000야드 이상의 러싱야드를 기록했으나 2000 시즌 이후 무릎 부상의 재발로 좆망 테크를 타며 예전과 같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혹자는 레븐스가 '매든의 저주'의 최초의 희생자라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2.3 2001 - 에디 조지(테네시 타이탄스)

2000년 출시된 매든 NFL 표지모델로 선정된 이후, 볼티모어 레이븐스와 가진 디비전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패스를 제대로 받아내질 못해 레이븐스의 레이 루이스에게 인터셉트 당해 경기까지 패했다. 참고로 2000년 시즌에 조지는 403번의 러싱 시도에 1,590야드, 야드 평균 4.1야드 러싱을 기록,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었으나 이 플레이오프의 삽질 한 번으로 그대로 묻혔다. 그리고 그는 두번 다시 야드 평균당 3야드 이상 전진은 하지 못하는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만다.

2.4 2002 - 단테 컬페퍼(미네소타 바이킹스)

2000년 바이킹스의 주전 쿼터백으로 지명되어 그 해 플레이오프에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면서 명성을 날렸다. 2000년 첫 데뷔 성적이 3,970패싱야드, 33개의 터치다운에 인터셉션을 불과 16개로 최고의 해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매든 NFL 2002 표지모델로 선정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1년 시즌, 23개의 인터셉션에 팀은 5승 11패로 플레이진출도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따라다닌 무릎 부상 때문에 2004 시즌 이후에는 데뷔 때와 같은 리즈시절의 기량은 회복하질 못한다.

2.5 2003 - 마셜 폴크(세인트루이스 램스)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 지명되어 괴물같은 활약을 펼친 그는 1999년 램스로 이적하면서 더욱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1999년 램스로 이적한 첫 해에만 무려 1,381 러싱야드, 시도당 평균 5.5 야드 러싱을 기록하여 슈퍼볼 34에서 램스가 우승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후 2000년과 2001년 이 두 해 동안 무려 1,000야드 러싱을 연속으로 기록하면서 스타 플레이어로 발돋움 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매든 2003 커버 모델로 나오면서 급반전이 일어난다. 2002년 시즌 총 953야드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단 한번도 시즌 1,000러싱야드 기록을 올리지 못한다. 여기에 야드 평균당 3야드에 불과한 저조한 기록을 올리면서 그대로 시망. 결국 2005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2.6 2004 - 마이클 빅(애틀랜타 팰컨스)

천재 흑인 왼손잡이 쿼터백. 2001년 전체 1번 픽으로 애틀랜타 팰컨스에 입단하여 쿼터백이지만 러닝백처럼 보이는 러싱플레이로 각광을 받아 단숨에 스타가 됐다. 그의 러싱플레이는 마치 NBA 선수의 화려한 드리블을 보는 것과 같았다고. 발재간에만 의존하는 공격 때문에 기복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NFL을 대표할 스타 쿼터백으로서는 장래가 촉망됐던 선수였다. 그러나 커버 보이로 나왔던 2003 시즌에 오른쪽 종아리뼈 골절로 단 5경기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후 2004 시즌~2006 시즌 동안 매 시즌 2,300야드 이상의 패싱과, 2004 시즌과 2006 시즌에 900야드 이상의 러싱을 기록하여 그럭저럭했으나, 2007년 투견 도박집단에 가세하여 투견장을 제공하는 등의 주범으로 걸려 NFL 자격정지는 물론 징역 1년의 실형을 최종 판결받으면서 감옥행. 단번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나마 출소 이후에는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명 헤드코치이자 듀얼 쓰렛 쿼터백을 잘 다루는 앤디 리드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이글스에 입단하여 이글스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1년만에 잘리고 백업 쿼터백으로 피츠버그 스틸러스로 가는 등 저니맨 신세가 되었다.

2.7 2005 - 레이 루이스(볼티모어 레이븐스)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전설적인 라인배커 레이 루이스도 매든의 저주를 피할 수는 없었다. 커버 보이 이후 2005 시즌에 심각한 부상으로 6경기만 출전했다. 하지만 2006 시즌부터는 준수한 라인배커로 돌아왔다.

2.8 2008 - 빈스 영(테네시 타이탄스)

대학시절 텍사스 대학교의 주전 쿼터백으로서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USC를 로즈 볼에서 꺾고 팀이 내셔널 챔피언의 타이틀을 획득하게 한 주역이었다. 드래프트에서도 도노반 맥냅, 마이클 빅의 뒤를 잇는 차세대 스타 듀얼스렛 쿼터백 후보로서 많은 기대를 받았고 스티브 맥네어와 호흡을 맞춰 듀얼스렛 쿼터백의 운용에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당시 감독 제프 피셔가 있던 테네시 타이탄스가 1라운드에서 지명을 했다. 그리고 신인으로서 선발로 나선 경기에서 8승 5패를 기록하는 등 괜찮은 활약을 보이면서 NFL에 불과 1년밖에 뛰지 않은 신인이 게임의 표지모델이 되는 영광도 누렸다. 그리고 표지모델이 된 그 해에도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끄는 등 드래프트 당시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듯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인성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고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 함량미달인 모습을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2009년 시즌 초반에 부상을 당하자 제프 피셔는 영을 백업 쿼터백으로 강등시켰고 2010년 시즌에는 헤드코치인 제프 피셔와의 갈등이 깊어지더니 라커룸에서 헤드코치와 한판 붙는 등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시즌 후 방출되었다. 그 이후로는 이팀 저팀을 전전했지만 53인 로스터에도 들지 못하고 방출을 반복하다가 불러주는 팀이 없어서 강제은퇴의 길을 걷게 됐다. 테네시 시절 성적은 30승 17패로 그리 나쁜 편은 아니지만 본인의 인성문제로 입단 당시의 기대치에 한참 못미치는 성적으로 조기에 선수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1. 표지모델은 99년판부터 순서대로 개리슨 허스트(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도시 레이븐스(그린베이 패커스, 00, 사진은 유럽판으로 미국판에는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러닝백 배리 샌더스가 표지모델 이었다.), 에디 조지(테네시 타이탄스, 01), 단테 컬페퍼(미네소타 바이킹스, 02), 마셜 포크(세인트루이스 램스, 03), 마이클 빅(애틀랜타 팰컨스, 04), 레이 루이스(볼티모어 레이븐스, 05), 도노반 맥냅(필라델피아 이글스, 06), 숀 알렉산더(시애틀 시호크스, 07), 빈스 영(테네시 타이탄스, 08), 브렛 파브 (그린베이 패커스, 09), 트로이 폴라말루 (피츠버그 스틸러스), 래리 피츠제럴드(애리조나 카디널스, 이상 10), 드류 브리스(뉴올리언스 세인츠, 11), 페이튼 힐리스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12)
  2. 시카고 베어스의 레전드 러닝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