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애나폴리스 콜츠

American Football Conference
남부지구 소속 구단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Indianapolis Colts)
잭슨빌 재규어스
(Jacksonville Jaguars)
테네시 타이탄스
(Tennessee Titans)
휴스턴 텍산스
(Houston Tex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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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워드마크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Indianapolis Colts
창단1953년[1]
NFL 가입1953년
현재 연고지로 이동1983년
연고지인디애나인디애나폴리스
구단 연고지 변천볼티모어(1953~1983)
인디애나폴리스[2](1984~)
구단명 변천볼티모어 콜츠(1953~1983)
인디애나폴리스 콜츠(1984~)
홈 구장메모리얼 스타디움(1953~1983)
후지어 돔(1983~2007)
루카스 오일 스타디움(2008~)
구단주 겸 사장짐 어세이(Jim Irsay)
단장라이언 그리그슨(Ryan Grigson)
감독척 파가노(Chuck Pagano)
약칭IND
홈페이지
우승: 5회
슈퍼볼 우승
(2회)
V(1970), XLI(2006)
NFL(3회)1958, 1959, 1968
컨퍼런스 우승: 7회
NFL Western(4회)1958, 1959, 1964, 1968
AFC(3회)1970, 2006, 2009
디비전 우승: 15회
NFL Coastal(1회)1968
AFC East(6회)1970, 1975, 1976, 1977, 1987, 1999
AFC South(9회)2003, 2004, 2005, 2006, 2007, 2009, 2010, 2013, 2014
플레이오프 진출: 27회
NFL1958, 1959, 1964, 1965, 1968, 1970, 1971, 1975, 1976, 1977,
1987, 1995, 1996, 1999, 2000,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2, 2013, 2014

Baltimore Indianapolis Colts

NFL미식축구팀. AFC 남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인디애나폴리스.

1 상세

역사상 NFL이 인정하는 콜츠의 창단은 1953년인데 원래는 AAFC라는 독립리그가 NFL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AAFC의 팀과 선수들을 NFL이 넘겨 받을때 3개의 구단이 통합이 되었다. 브루클린 타이거스와 MLB 야구팀과 동명이었던 뉴욕 양키스, 그리고 댈러스 텍산스[3] 3개 프랜차이즈를 합병해 볼티모어에 창단하는 것으로 결정하여 1953년 볼티모어 콜츠로 창단하였다.

3개 팀을 합쳐서 NFL에 등장한 볼티모어 콜츠는 위브 유뱅크라는 헤드코치와 1956년 시즌부터 NFL에 등장한 레전드 쿼터백 조니 유나이타스의 지휘아래 빠르게 강팀으로 성장했고, 1963년 취임한 NFL을 대표하는 레전드 헤드코치인 돈 슐라의 지도가 합쳐지면서 NFL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물론 슈퍼볼 3에서 조 네이머스를 앞세운 뉴욕 제츠에 일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1970년 5회 슈퍼볼에서는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레전드 헤드코치 돈 슐라가 1970년 시즌을 마치고 마이애미 돌핀스로 이적하여 거기서 전설적인 팀을 만드는 동안 돈 슐라와 조니 유나이타스를 잃은 콜츠는 3년의 리빌딩을 거쳐 리델 미첼을 앞세운 공격으로 75~77년 3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했지만 전부 1라운드 탈락했다. 그러는 동안 팀의 전력은 쭉 약체로 내려갔고 78년 이후로 6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고, 그동안 볼티모어 시와 맺었던 메모리얼 스타디움의 임대 계약만료가 다가오고 있었다.

2 원조 야반도주

1972년 시카고 출신의 사업가이자 원래 로스앤젤레스 램스의 소유주였던 로버트 어세이는 램스를 매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볼티모어의 구단주였던 캐롤 로젠블룸에게 1900만 달러와 램스의 소유권을 주고 볼티모어 콜츠의 소유권을 가져오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캐롤 로젠블룸은 메모리얼 스타디움의 임대연장시 임대료를 올려 받으려는 볼티모어 시측과 대립이 있었고, 이 때문에 로젠블룸은 자기 부인이 서부로 가고싶다는 요청에 따라 램스를 소유한 로버트 어세이와 구단 소유권을 트레이드 한 것.

볼티모어 시 역시 볼티모어의 오래된 풋볼구장이자 콜츠와 임대계약 만료를 앞두고있던 메모리얼 스타디움 대신 볼토돔이라는 7만석 규모의 돔경기장을 조성하여 팀을 크게 키워볼 생각이었다. 여기에는 당연히 시장을 비롯한 정치가들과 구단 오너들간의 대화가 있었고 당시 메모리얼 스타디움을 같이 쓰고 있던 야구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구단주와 같이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이너 하버, 그러니까 현재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홈구장 캠든 야드의 위치에 건설할 생각이었고 그를 위해 자금을 모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7만석 규모의 돔경기장이라는게 미국에서도 그렇게 간단하게 뚝딱 지어지는게 아니라서 구장 건설계획은 현재 많은 광역시와 한국 프로야구팀이 겪고 있는 갈등 그대로 누가 돈 더내라, 돈이 얼마가 더든다 같은 문제로 인해 최종협의가 연기되고 있었고, 그동안 볼티모어 콜츠의 팀 성적은 떨어지고 있었으며 메모리얼 스타디움 역시 노화되고 있었다. 그렇게 협의가 늘어지는 동안 1979년 오리올스의 구단주는 팀을 워싱턴 D.C출신 변호사 에드워드 베넷 윌리엄스에게 매각하고 결국 볼토돔 건설건은 사실상 백지화 된다.

로버트 어세이는 이런 결정에 실망하고 그 와중에 메모리얼 스타디움 리모델링하니 2500만 달러를 건축비로 내놔라는 볼티모어시의 요구에 반발해 그때부터 팀을 싱싱한 새 구장이 생기는 지역으로 팔아버릴 계획을 세웠다. 자신이 원래 소유했던 램스의 연고지인 LA나 풋볼팀에 관심이 많던 남부지역 도시들인 멤피스, 잭슨빌, 피닉스 등이 후보에 올랐는데 NFL팀 매각의 떡밥을 문 도시는 인디애나주의 인디애나폴리스.

당시 인디애나폴리스 시장인 윌리엄 허드넛이 1979년부터 풋볼팀 유치를 위해 6만석 규모의 돔경기장을 세울거라는 정보를 입수한 로버트 어세이는 기회는 이때다 하고 인디애나폴리스 시와 협의를 해 1983년 완공된 인디애나폴리스의 RCA 돔(처음 이름은 후시어 돔이었다.)이 입주가능하게 되고, 메모리얼 스타디움의 임대계약이 끝나는 1984년 NFL 사무국과 입을 맞춘뒤 007작전을 방불케하는 보안유지를 통해 아무도 몰래 인디애나폴리스 연고이전을 결정한다.

baltimore_colts_moving.jpg

콜츠의 연고지 이전 루머가 확산되자 분노에 찬 볼티모어 팬들은 콜츠의 이사트럭 앞에 드러누워서라도 못 가게 하겠다라고 협박을 했고, 메릴랜드주 의회측은 콜츠의 이전을 놓고 콜츠의 소유권이 볼티모어 시에 있으며 콜츠의 이전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률까지 통과시키려 했다(...). 콜츠 구단 측은 그 법률이 통과되기 하루 전인 1984년 3월 29일 새벽 2시에 구단 사무실의 모든 집기를 컨테이너 트럭에 빼돌려서 도망을 갔다. 그것도 메릴랜드 주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트럭들의 진로를 각각 다른 루트로 통하게 하는 꼼수까지 썼다(...). 한술 더 떠서 트럭들이 인디애나 주 경계선에 진입할 때 인디애나 주 경찰이 경계선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이사트럭을 호송하는 등 리얼월드에서 첩보영화를 찍어댔다. 이 사건은 미국 프로팀의 연고이전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회자되는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당시 콜츠의 구단주였던 로버트 어세이는 볼티모어 주민들에게 거의 을사오적급 취급을 받는다. 일부 옛날 팬들은 "죽어도 용서못한다"고 이를 득득가는 정도(...).

결국 1984년 9월 정식으로 콜츠는 인디애나폴리스 콜츠가 된다. 당연히 볼티모어 콜츠팬들은 멘탈붕괴에 빠져서 콜츠의 이전을 무효화하려 했지만 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집단고소정도. 하지만 법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3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새출발

그렇게 새로운 프랜차이즈에서 출발한 콜츠는 볼티모어 시절 망가진 전력 복구하느라 몇년을 리빌딩에 들어갔다. 그리고 LA 램스의 스타 러닝백이자 지금도 단일시즌 최고 러싱야드 기록을 보유중인 에릭 디커슨을 영입해 전력 상승을 노렸지만,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정도는 되지 않고 5할 승률의 중간급 팀으로 남았다. 디커슨의 시대가 가고 90년대에 돌입했을때는 1994년 전체 2위로 입단한 마셜 포크라는 명예의 전당 러닝백과 시카고 베어스에서 이적한 쿼터백 짐 하보[4]를 중심으로 전력을 재편한다. 이때인 1995년,1996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두번 모두 피츠버그 스틸러스에게 패해서 탈락한다.

이렇게 아쉬운 플레이오프 탈락을 뒤로하고 팀의 스타 러닝백 마셜 포크는 FA가 되어 더 큰 몸값을 요구하고 있었고, 1997년 구단주 로버트 어세이는 1995년부터 앓아온 뇌졸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다. 구단주 자리는 아들인 짐 어세이에게 돌아가며 짐 어세이는 팀의 구단주가 되자마자, 슈퍼볼 4연속 진출에 빛나는 86~93년 최전성기 버팔로 빌스를 만들어내고, 신생팀 캐롤라이나 팬서스를 거친 명 GM 빌 폴리안을 팀에 앉힌다.

4 페이튼 매닝 시대

빌 폴리안의 첫 드래프트는 버팔로 빌스가 짐 켈리를 지명했던 것처럼 뛰어난 쿼터백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침 그의 구미에 딱맞는 최고의 쿼터백유망주로 꼽히던 테네시대학교 출신의 페이튼 매닝을 전체 1순위로 지명하고, 뉴올리언스 세인츠에서 성적부진으로 해임되었지만 수비를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던 헤드코치 짐 모라를 영입한다. 그리고 페이튼 매닝은 데뷔와 동시에 주전 쿼터백으로 1998년 시즌을 시작한다.

그리고 빌 폴리안은 젊은 유망주를 뽑아 팀의 체질을 개선하는데 주력했다. 팀의 스타 러닝백이지만 고액연봉을 요구하던 마셜 포크를 세인트루이스 램스[5]에 트레이드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러닝백 에저린 제임스를 지명해 젊은 피를 수혈하고, 와이드 리시버 레지 웨인, 타이트엔드 댈러스 클락을 뽑아내고 수비에는 수비엔드 드와이트 프리니, 세이프티 밥 샌더스등 젊고 능력있는 선수들을 뽑았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빌 벨리칙과 톰 브래디를 앞세워 슈퍼볼 3회 우승을 거둘동안 콜츠 역시 페이튼 매닝을 중심으로 전력을 상승시켜 AFC의 치열한 상위권 경쟁에 끼어들었다.

2002년 시즌부터는 90년대 후반부터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를 강팀으로 변모시켰지만 결국 우승에 실패해 성적부진 이유로 벅스에서 해임[6]되었던 흑인 헤드코치 토니 던지를 영입하여 팀을 완전히 페이튼 매닝, 토니 던지의 팀으로 바꾸고 끊임없이 전력 보강에 힘쓴 끝에 강력한 우승후보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꺾고 2006년 41회 슈퍼볼에 진출해 NFC 우승팀인 시카고 베어스를 대파하고 인디애나폴리스 이주후 첫 슈퍼볼 우승을 거머쥔다. 버팔로 빌스에서 끝내 우승에 실패한 폴리안이나 항상 톰 브래디에 비교당하던 페이튼 매닝이나 모두에게 의미있는 첫 우승.

5 앤드류 럭 시대

페이튼 매닝이 리그에 들어온 이래 콜츠는 98년과 2001년 딱 두시즌만 빼면 매년 10승 이상을 거두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며 2002년부터 2010년까지 9년 연속 10승+플레이오프가 포함되어있었다. 그야말로 AFC 최강팀의 면모. 하지만 주축선수들의 연장계약을 위해 많은 돈을 뿌린 콜츠는 샐러리캡문제에 봉착했고 샌디에이고 차저스를 포함한 라이벌들의 등장으로 점차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를 페이튼 매닝의 뛰어난 리더쉽과 실력으로 막아내던 상황. 거기다 2009년 페이튼 매닝의 맹활약으로 44회 슈퍼볼에 진출했지만 드류 브리스를 앞세운 뉴올리언스 세인츠에 통한의 패배를 당하면서 이제 리빌딩을 준비해야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2006년 우승이후 페이튼 매닝은 팀과 연장계약을 하여 NFL 최고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지만 2008년 무릎부상이 악화되어 수술을 한 이후 점차 몸상태가 나빠지더니, 2009년 아쉽게 두번째 슈퍼볼 도전에 실패하고, 2010년 오프시즌 목부상으로 큰 수술을 하게 되어 2011년 시즌을 완전히 결장했다. 당연히 페이튼이 없는 콜츠는 리그 최하위 2승 팀으로 전락했고 꼴찌로 전체 1위 드래프트지명권을 받는다. 그리고 빌 폴리안은 콜츠의 GM을 사임한다.

공교롭게도 그해의 전체 1번으로 신인시절 페이튼 매닝에 비견되던 스탠퍼드 대학교쿼터백 앤드류 럭이 등장했다. 그리고 큰 수술을 두번이나 한 페이튼 매닝은 30대 후반의 노장으로 점점 기량이 쇠퇴할 것이 눈에 보이는 상황. 거기다가 이미 맺어놓은 5년 9천만달러의 거액 계약에 달린 로스터 보너스가 수천만달러에 달해서 럭과 페이튼은 공존이 불가능했다.

이 리그 최고의 노장 쿼터백 vs 리그 최고의 유망주 쿼터백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고민에 빠진 콜츠는 수많은 이슈거리와 막말을 남기며[7]결국 팀의 미래와 페이튼에게 지불할 거액의 로스터 보너스를 지불할수 없다는 이유로 페이튼 매닝을 포기하고 앤드류 럭을 1순위로 지명하고 98년도처럼 그를 중심으로 리빌딩의 길에 들어갔다.

앤드류 럭의 첫 시즌인 12-13시즌 11승 5패로 반등에 성공했다. 앤드류 럭도 리그 7위인 4374야드를 던지면서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인터셉션이 18개로 공동 3위에 오른것이 흠.[8]

5.1 2013년 시즌

지난시즌 플레이오프에 깜짝 진출하더니 올 시즌은 그게 플루크가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이고 있다. 앤드류 럭은 프로 2년차에 이미 리그 정상급이란 소리 들어도 좋을 만큼 큰 선수로 성장했고, 데뷔 이후 20경기가 조금 넘는 시점에서 10번이 넘는 역전승을 일궈내 베테랑급 경기운영 능력을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빈약했던 러싱공격을 책임져줄 드래프트 동기 러닝백 트렌트 리차드슨 까지 브라운스에서 얻어왔으니 이제는 여러모로 되는 집안의 모습을 착착 갖춰 나가고 있는 셈. 페이튼 매닝이 떠난지 단 2년만에 리빌딩을 완성시켜버렸다. 8주차까지 5승 2패로 지구 선두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지구 라이벌 텍산스가 자멸하고 있는 걸 보면 올해도 플레이오프 진출은 무난할 듯.

하지만 팀의 넘버원 타겟이자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인 리시버 레지 웨인이 무릎부상으로 시즌아웃되면서 공격진에 빨간불이 켜졌다. 거기다 기껏 1라운드 지명권까지 내주고 데려온 트렌트 리차드슨은 먹튀의 모습을 보이며 팀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다행히 첫해 적응에 실패했던 2라운더 타이트엔드 코비 플리너(쿼터백 럭과 스탠포드 동기)가 자기 기량을 회복했고 수비진이 선전하면서 11승 5패로 남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와일드카드 플레이오프에서는 캔자스시티 칩스를 맞아 인터셉트 3개에 펌블 1개를 범하면서 28점차까지 점수가 벌어지면서 패배하는 듯 했으나... 칩스 선수들이 부상으로 줄줄이 빠졌고 후반들어 럭이 맹활약하면서 45 대 44 극적인 대역전승을 거두면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다.

그러나 디비전 플레이오프에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상대로 앤드류 럭이 4개의 인터셉션을 기록하고 후반전에 수비도 무너지면서 대량실점, 22-43으로 대패하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패트리어츠는 쿼터백 톰 브래디가 단 하나의 터치다운 패스도 기록하지 못 했으나 러닝만으로 콜츠를 박살을 냈다. 이로써 럭은 새가슴 쿼터백 계보를 잇는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전임자의 능력뿐만 아니라 새가슴까지 후계자가 되었다

5.2 2014년 시즌

일단 지구 타 팀이 역대 최악 수준으로 못하고 있어서 쉽게쉽게 가고 있다.

개막전에서 페이튼 매닝이 이끄는 브롱코스를 상대로 패했지만 막판 7점차까지 추격하는 모습으로 끈질김을 보였고 이후 앤드류 럭이 이끄는 공격진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작년 망가졌던 수비진 세컨더리가 살아나면서 무난하게 지구 1위를 순항중이다. 앤드류 럭은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AFC 탑 쿼터백으로 성장했고, T.Y 힐튼이라는 확실한 타겟 리시버가 이끄는 패싱 공격진과의 호흡도 잘 맞고 있다.

하지만 너무 쉬운 스케줄때문인지 방심해서인지 현시대 고득점 경기에 맞지 않는 보수적인 운영으로 후반에 괜히 추격을 허용하는 등 척 파가노의 게임 운영능력은 영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지구에 소속된 팀 중에서 이 리그의 승점자판기 노릇을 하며 일찌감치 디비전 레이스에서 탈락하고, 남은 한 팀도 지난 해의 충격적인 몰락에서 반등은 했지만 승률 5할 언저리의 지지부진한 성적에 머물러서 비교적 손쉽게 15주차에 2년 연속으로 AFC 남부지구 우승을 확정지었다.

플레이오프 1회전은 신시내티 벵골스를 가볍게 이기면서 2회전으로 진출하고 2회전은 바로 이전의 팀 레전드가 있는 팀인 덴버 브롱코스였지만 이번에도 이기면서 앤드류 럭은 청출어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AFC 챔피언십 라운드에서 만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톰 브래디에게 럭은 힘 한번 제대로 못써보고 7-45로 탈락하는 좌절을 맛보게 된다. 럭은 이날경기 40%(12/33)에도 못미치는 패스 성공률에 패싱야드도 고작 126야드, 터치다운 패스 하나없이 인터셉션만 두개를 기록하며, QB 레이팅 28.0이라는 최악의 부진을 보이며 슈퍼볼 문턱 앞에서 무너졌다. 바로 전 라운드에서 전임자를 넘었지만, 그 전임자의 라이벌은 못넘는다. 위에 얘기한것처럼 플레이오프 울렁증도 전임자에게서 물려받은게 확실하다!! 2012년 럭의 데뷔 이후 콜츠는 패트리어츠와 네 번 맞붙어서 모두 20점차 이상의 대패를 당하며, [9] 팀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패츠와의 이러한 천적 관계를 청산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어째 팍스보로에서 전임자의 라이벌한테 호구잡힌거까지 전임자와 똑같다(...) 이런거까지 계승할 필요는 없단말이다!!!

참고로 경기후에야 공이 바람이 규정보다 낮게 채워져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디플레이트 게이트라는 큰 스캔들이 일어났었다. 경기중간에 콜츠의 선수가 친하게 지내던 구단 직원에게 경기에 쓰인 공 한개를 선물해줬는데, 이 직원이 공이나 여러 물품을 다루던 사람이라서 공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처음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하프타임에 공이 규정보다 낮게 바람이 채워졌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지만 경기는 속행되었다. 그리고 슈퍼볼 이후에 조사 결과 패트리어츠의 톰 브래디가 구단 직원에게 자신의 입맛에 맞게 공에 바람을 채워달라고 부탁한게 밝혀졌고 아마도 공에 바람이 낮게 주입된 것은 의도적이었을 것이란 분석 결과가 나오면서 패트리어츠는 매우 많이 까였다. 파가노 감독은 사실 원했다면 정말 끝까지 질질 물어잡고 있을 수 있었지만 "공이 아니라 비누로 경기했어도 패트리어츠가 우리를 가지고 놀았을 것이다."라고 평가하면서 준비를 제대로 못한 자신과 팀의 잘못이라고 밝히면서 대인배가 되었다.

5.3 2015년 시즌

막장 드라마

파가노는 암투병 중에도 팀을 이끌며 앤드류 럭과 함께 성과를 냈지만, GM 케빈 그릭슨의 생각은 달랐다. 파가노는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수비진을 보강해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그릭슨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와이드리시버에 드래프트 픽을 던지거나 휴스턴 텍산스의 안드레 존슨을 영입하는 등 공격진 보강에 열을 올렸다. 계약기간 마지막 1년 남은 파가노는 자신의 요구가 정반대로 돌아오자 팀에 연장계약 거부를 선언하고 반쯤 태업을 하고 있고, 팀의 갈팡질팡하는 행보에 흔들린 앤드류 럭이 뒤늦게 소포모어 징크스찾아오듯 커리어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다. 게다가 이번 시즌 두 번째 부상으로 뛰지도 못하는 중. 다행히 백업 쿼터백인 노장 맷 해슬벡이 팀을 잘 이끌었다. 아직도 살아있었냐...[10]

그럼에도 지구가 워낙 널널한 AFC 남부지구라 14주차 현재 6승 7패를 거두고 있음에도 지구 1위를 지키고 있는 중. 단지 2위 텍산스가 6승 7패로 동률로 따라붙은 것이 불안 요인이다. 결국 15주차에 있는 휴스턴 텍산스와의 홈 경기에서 패하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먹구름이 끼었다. 다행히 16주차에서 신시내티 벵갈스가 패하며 간신히 플레이오프 탈락은 면했지만 [11], 여전히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하다. [12]

결국 테네시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AFC 남부지구를 놓고 경쟁하던 휴스턴 텍산스의 승리로 4년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나마 4년 전에는 페이튼 매닝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고 가망이 없는 상황에서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따서 앤드류 럭을 지명하기 위하여 거의 고의로 시즌을 포기한 결과라 실질적으로는 2001년 이후 14년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 것이나 마찬가지. 여기서 똘똘한 쿼터백을 뽑는 게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6 홈구장


루카스 오일 스타디움 항목 참고

7 기타

  • 여러모로 리그 최초인 것이 많은 팀. 미식축구 최초로 치어리더를 도입하기도 했으며, 1958년 뉴욕 자이언츠와의 리그 챔피언쉽 경기는 NFL 역사상 최초로 TV중계가 되었다.
  • 아직도 볼티모어 시절의 역사를 놓고 레이븐스와 갈등이 있다. 특히 조니 유나이타스를 놓고 갈등과 대립이 심한데 콜츠 측은 콜츠를 대표하는 레전드이므로 자기들이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레이븐스 측은 볼티모어를 대표하는 레전드이므로 자기들이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구단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고 볼티모어 시절의 역사를 계승하는 콜츠에게 유나이타스를 자기 팀의 레전드로 기념해야할 권리가 있지만 위에서 콜츠가 볼티모어에게 저지른 짓 때문에 볼티모어 팬덤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상황. 정작 인디애나폴리스의 팬들은 볼티모어 시절의 스타라서 그다지 감흥이 없는 것도 콜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도 뭐가 되었건 조니 유나이타스는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레전드이다. 콜츠를 편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팬들이다(...)
  • 1983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위 지명권을 얻었지만[13] 그 지명권을 "서부지역 팀이 아닌 다른 팀을 가느니 차라리 뉴욕 양키스에 가서 야구를 하겠다"[14]고 엄포를 놓은 존 엘웨이를 강행지명하는 데에 썼다. 존 엘웨이는 끝끝내 콜츠 입단을 거부했고, 할 수 없이 콜츠는 덴버 브롱코스와 3대1 트레이드로 애써 행사한 드래프트 전체 1번 픽을 놓아줄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존 엘웨이의 활약에 대해서는 본인의 항목을 참조. 어쨌거나 이 일로 존 엘웨이는 한동안 풋볼 팬들에게 까임의 대상이 되었으나 그 까임을 본인의 실력으로 극복해서 마침내 레전드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존 엘웨이와 트레이드 된 3명의 선수는 쿼터백 마크 허만과 공격라인맨 크리스 힌튼, 다음해 1라운드 지명권이었는데, 마크 허만은 볼티모어에서 주전 획득에 실패하고나서 2년 뒤에 트레이드 되었다. 크리스 힌튼은 프로볼에 7번 출전할 정도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으며, 1라운드로 지명한 공격 라인맨 론 솔트는 프로볼 1번 선발된 가드였다. 완전히 손해를 본 트레이드는 아니었지만 전체 1번 픽을 날리고 그 쿼터백으로 덴버의 거의 15년 이상을 책임졌다는 걸 감안하면 왜 쿼터백이 미식축구를 대표하는 포지션인지 상징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는 이미 팀 레전드로 취급받는 페이튼 매닝의 동생 일라이 매닝이 있다. 거기에 대해서는 일라이 매닝 항목을 참조. 페이튼 매닝을 지명할 때도 혹시나 페이튼이 콜츠를 맘에 안 들어해서 존 엘웨이와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15] 염려하여 차라리 라이언 리프[16]를 선택할까 고민도 할 정도였다. 그 때 그랬으면 콜츠는 완전히 망했겠지. [17] 하지만 성실한 페이튼은 순순히 자신의 진로를 받아들였고 콜츠를 강팀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밀려 콜츠를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페이튼의 진로는 또다시 덴버 브롱코스였고, 페이튼이 덴버로의 이적을 결정하게 한 건, 콜츠를 버린 덴버 브롱코스 단장 존 엘웨이였다. 뭔가 기묘한 인연으로 얽히고 섥힌 관계.
  • 2012년 11월에 당시 감독이었던 척 파가노가 암에 걸려서 투병 중일 때, 치어리더인 크리스탈 앤과 매간 M이 버팔로 빌스와의 경기에서 하프타임 때 마스코트인 블루의 도움을 받고 삭발(!)받았다. 인디애나 치어리더 팀은 지난 12일 구단 홈페이지에 "26일까지 백혈병 치료와 연구기금 1만 달러가 모이면 버팔로전에서 치어리더 메간이 삭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이미 선수들은 삭발한 채로 경기를 뛰고 있는 상태. 약속을 정한 날까지 목표 기금의 2배가 넘는 2만 2천달러가 모이자 메간과 크리스탈은 약속대로 머리를 밀었는데 이들은 삭발을 하면서도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노력 덕분인지 파가노는 완쾌 가능성이 높다는 희망적인 진단이 나왔다.
  1. AAFC 소속 세 팀, Boston Yanks,Brooklyn Tigers, Dayton Triangles 의 합병을 통하여 창단.
  2. 밑의 내용들을 보면 알겠지만, 조금 불편하게 연고이전이 이루어졌다.
  3. 캔자스시티 칲스의 전신이었던 그팀과 무관.
  4. 前 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헤드코치, 現 미시간 대학교 헤드코치.
  5. 램스로 간 마셜 포크는 쿼터백 커트 워너,와이드 리시버 토리 홀트,아이작 브루스, 공격태클 올랜도 페이스등 역대 최고의 공격진의 축이되어 맹활약하고 1999년 34회 슈퍼볼에서 테네시 타이탄스를 꺾고 우승한다.
  6. 공교롭게도 던지가 떠난 2002년 탬파베이 버캐니어스는 존 그루덴을 헤드코치로 영입한뒤, 그 그루덴이 4년동안 지도해온 오클랜드 레이더스를 37회 슈퍼볼에서 대파하고 첫 우승을 거둔다.
  7. 특히 구단주 짐 어세이가 트위터에서 무리수를 많이 넣어서 욕을 엄청 먹었다.
  8. 뉴욕 제츠개그맨 쿼터백 마크 산체스와 같은 수치이고 공동 1위인 드류 브리스 - 토니 로모와 한개차이다. 근데 마크 산체스 말고 나머지 셋은 패싱 야드 순위권이고 특히 드류 브리스는 5천야드를 넘기면서 전체 1위이니 어쩔 수 없는 면이라고 봐도 뭐...4600야드를 던지면서 11개밖에 안 뺏긴 페이튼 매닝 같은 양반이 괴물인거다. 그리고 신인인 걸 감안하면 앤드류 럭은 인터셉션이 많다고 할 수는 없다. 그 페이튼 매닝조차 신인 때 28개의 인터셉트를 당했다.
  9. 24-59(2012년 정규 시즌), 22-43(2013-14 플레이오프 디비저널 라운드), 20-42(2014년 정규 시즌), 7-45(2014-15 플레이오프 챔피언십 라운드).. 처절하다 직전 2경기까지 합하면 패츠를 상대로 2010년 이후 6연패를 기록하고 있는 중.
  10. 2006년 하인스 워드가 MVP를 따낸 제40회 슈퍼볼(Super Bowl XL) 당시 상대팀인 시애틀 시호크스의 주전 쿼터백이었다.
  11. Stength-of-victory(쉽게 얘기하면 팀이 얼마나 어려운 상대와 붙었느냐를 따지는 상황. 시즌 동안 상대했던 팀들의 총합승률이 높을수록 같은 성적이라도 어려운 팀들을 상대로 했다는 얘기가 되므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문제 때문에 관련 없어 보이는 경기가 관련이 있게 된 상황
  12. 콜츠가 진출하는 경우의 수는 딱 한 가지이다. 17주차에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승+휴스턴 텍산스 패+뉴올리언스 세인츠 패+신시내티 벵갈스 패+뉴욕 제츠 패+애틀랜타 팰컨스 승+마이애미 돌핀스 승+덴버 브롱코스 승+피츠버그 스틸러스 승. 저 중 한 경기만 어긋나도 텍산스가 플레이오프 올라가고, 콜츠가 플레이오프 탈락한다. 이는 정말로 일어나면 기적같은 일로 간단하게 각 결과가 나올 확률을 2분의 1이라고 가정해도 512분의 1이다...그냥 포기하고 만다.
  13. 즉 전년도 시즌에 리그 전체에서 최하위를 차지했다
  14. 존 엘웨이는 야구선수로서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우익수 겸 투수로 활동했다. 고등학교때도 야구실력을 인정받아서 1979년 드래프트 18라운드에 캔자스시티 로열즈에 지명받았고, 대학 진학후인 1981년 드래프트에서는 뉴욕 양키스에 2라운드 지명되었다.
  15. 일라이 매닝 항목에 있지만 이들 형제의 배후에는 과거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명쿼터백이었던 아버지 아치 매닝이 있었고 아치 매닝은 자신의 아들들이 진로를 정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둘째아들인 페이튼에게는 그다지 관심도가 덜 했는지 대학부터 프로까지 진로선택에 큰 간섭을 하지 않은 반면 막내인 일라이의 진로에 대해서는 상당수준으로 간섭을 했다.
  16. 미식축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미국 스포츠에서 손꼽히는 먹튀 오브 먹튀다. 깽판까지 치고 나갔다는 점에서 질이 가장 나쁜 먹튀로 미국에선 먹튀/스포츠에 나와있는 송은범, 에스마일린 카리대 뭐 이정도 취급받는다. 아니 그러고 잘리고 나서 범죄자까지 된 점을 생각하면 그 선수들보다도 더 질이 나쁜 먹튀이다.
  17. 그러나 뚜껑열어 보니 정작 콜츠에서 뛰기 싫다고 깽판놓은 것은 라이언 리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