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남일기

1 개요

鳳南日記. 조선 고종 31년, 1894년부터 일제강점기인 1923년까지 30여년간 변만기(邊萬基)가 쓴 일기. 현재는 10년분 분량만 남아 있으며, 110종의 고문서와 봉서일기, 회사일기 등과 함께 묶여 장성 손룡정사 소장고문서 및 전적류(長城巽龍精舍所臧古文書─典籍類)라는 명칭으로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99호로 일괄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전라남도 장성군 장안리에 살았던 유학자 변만기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쓴 일기로, 1894년부터 약 30여년간 당대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그러나 훗날 6.25 전쟁이 벌어지던 당시 일기의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고 지금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던 1894년부터,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던 1903년까지의 10년 동안의 일기만이 남아 있다.

특히 제2차 동학농민운동 봉기 당시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군에 대한 구체적인 상태를 기록하고 있으며, 농민군과 관군, 일본군과의 접전 상황,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라남도 지방민들의 동향 등을 상세히 기록해 놓은 1차 사료로서 그 가치를 매우 높이 평가받고 있다. 또한 개인적인 생활사로는 일기에 당시 10여년간의 물가 시세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대 민간인들이 체감하던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그 외에도 을미사변, 아관파천, 단발령 등 역사적인 주요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의 민간 분위기에 대해 알아볼 수 있으며, 일기의 마지막 부분엔 인천 부두에서 러시아군와 일본군이 격돌하던 시기의 백성들이 처한 상태까지 소상히 기록되어 있어 조선 말기 소시민들의 미시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

변만기의 할아버지인 변상철의 봉서일기, 남동생인 변승기의 회산일기와 함께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봉남일기 항목을 참조.

3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99호

1997년 7월 15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324-1번지의 손룡정사에 소장되어 있다. 수량은 110종이다

고문서류는 1584년(선조 17) 예조에서 발급한 변철생(邊哲生)·변경윤(邊慶胤)의 양자 관련 문서인 계후예조입안(繼後禮曹立案), 1886년(고종 23) 예조에서 발급한 김기태(金基泰)의 양자 관련 문서, 1875년(고종 12) 장성부 구폐완문(변상진 등), 1902년 흥덕군 삼남면 완문, 1714년(숙종 40) 위토 마련에 관한 문중완의 등완문·완의·입안류 7건, 1553년(명종 8) 변처정(邊處楨)이 변제(邊濟) 등 5남에게 내린 허여문기, 1655년(효종 6) 이귀(李貴) 9남매의 화회문기(변경윤) 등 재산문서 5건이 있다.

또한 1776(정조 1)년 전답 매매에 관한 문서 등 매매문기 3건, 1584년 여주목사가 참봉 김의손(金義孫)에게 발급한 준호고 1매, 1672년(현종 12)·1678년(숙종 4)·1699(숙종 25)년에 각각 한성부에서 발급한 유학(幼學) 변광재(邊光載)의 준호구 등 호적 관련 문서 39건, 변경윤의 문과시권(연대미상), 변명익(邊命益)의 시권(연대미상) 등 시권 2건, 1603년(선조 36)의 변경윤 홍패(紅牌) 등 교지와 임명장 2건, 변경윤 초배장씨신노비질(初配張氏新奴婢秩) 등 노비문서 2건, 노직(老職)에 관련된 전라도 관찰사 겸 순찰사의 관문초(關文抄) 1건, 1822년 변기태(邊基泰)가 전의현감에게 올린 단자 등 소지·상서문 21건 등이다.

전적류는 일기 3종이다. 사료로서 중요하여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엮어 간행하였다.

《봉서일기, 변상철 기(鳳棲日記 邊相轍記)》 (17행 28자:24×19.5㎝:사본 1책)는 본래 1858년(철종 9)~1886년(고종 23) 대략 28년 동안의 향사에 관해 전라남도 장성군 변상철이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부분이 6·25전쟁으로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것은 1873∼1877년 5년 동안의 기록만 남아 있다.

《봉남일기, 변남기 기(鳳南日記 邊萬基記)》(17행 24자: 23.7×20.7㎝:사본 1책)는 1894년부터 대략 30년 동안의 전라남도 장성군 변남기의 기록이다. 그러나 역시 6·25전쟁으로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고 지금은 1894~1903년 10년 동안의 일기만 남아 있다.

《회산일기, 변승기 기(晦山日記 邊昇基 記)》(12행 22자:21×17.5㎝:사본 1책)는 1907(광무 11) 1∼3월까지의 변승기의 기록이다. 짧은 동안의 일기에 불과하나 당시의 조세 및 화폐제도의 문제점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한말의 국채보상운동의 확산과 관련된 기록이 있어 당시의 경제상이나 사회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손룡정사에 소장된 고문서류와 필사본 일기 등의 전적류는 조선시대와 한말의 향토사, 사회사를 이해하는 데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