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릿집

1 개요

기생[1]을 두고 과 요리를 파는 집. 한자로는 요정(料亭)이라고 한다.요정이 아니다!

예전에 정치인들은 여자를 끼고 이곳에서 정치에 관련된 비밀스런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일명 '요정정치'라고도 불린다.현대의 룸살롱에 비견되는 곳. 꼭 여자를 끼지 않더라도, 이전부터 이런 고급 요릿집이 일종의 안전가옥역할로 정치판의 고급 정보 및 위험한 정보들이 오가는 곳이기도 해서 역사적으로도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아무래도 전통 문화를 유지한다는 이미지도 있는지라, 접대부들이 한복을 입고 일한다는 것도 특징 중 하나.

전성기 시절엔 국악전공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 장소로 각광받던 곳이다. 물론 접대부 말고 말 그대로 국악기 연주하는 일을 말한다. 70년대 기준으로 3,4 시간정도 연주하면 십만원씩도 받을 정도였으니.현대에도 이런 아르바이트는 남아 있지만 요릿집이 아닌 일반 고급 한식당에서 하는 편.

근래에는 룸살롱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고급 한식집으로써의 이미지 변신을 시작, 상당 부분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음식이 아무리 고급이고 맛있다고 하더라도 일반 서민들 주머니로는 살떨리지 않을 수가 없다. 뭐 가격 좀 비싸더라도 질 높은 서비스와 고급 한식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서울의 고급 요정에서 성매매를 한 것이 무더기로 적발되어 새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딴거 잇지 마 결국 그간 쌓았던 고급 한식집 이미지가 단숨에 성매매업소로 뒤바뀌게 생겼다.

일명 '기생관광'의 육성을 위해 세금 해택을 받기도 했는데, 이 것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관련기사.

내부자들(영화) 에서도 등장.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올 예정이다. 근데 언제일지는 모른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이므로 물론 일본에도 비슷한 것이 여전히 존재한다. 진짜 요릿집뿐 아니라 토비타신치 같은 집창촌도 요리조합과 요릿집의 구색을 갖추고 장사한다.

2 역사적으로 유명한 요릿집들

  • 대원각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 있으며 1951년 개장. 시인 백석의 연인이었던 김영한[2]이 운영했던 곳으로, 1997년법정 스님에게 시주해서 길상사란 절로 바뀌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 청운각
1956년 조차임이 이시영의 사저인 종로구 청운동 자택[3]을 빌려서 개장. 청운각의 전성기에는 다른 요정은 다 아래에 있었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이 이곳에서 맺어졌다. 이러던 와중에 조차임이 암에 걸리자 자산을 정리해서 '우산육영회'란 이름의 장학재단을 만들면서 없어졌다.
  • 삼청각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으며, 1972년 개장해서 1980년대 전까지 청운각이 없어진 서울 최고의 요정이었으며, 요정 정치가 이루어지는 장소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나름 괜찮게 사용된 것이라면 7.4 남북 공동 성명 만찬장으로 사용되었다거나 1970년대 남북적십자회담 장소로 쓰였다거나 하는 등의 일도 있다.
하지만 현대로 오면서 룸살롱 시대가 열리자, 요정은 고급 중국요릿집이 되었다가 망해가다가, 서울시의 문화시설 지정을 받은 것을 계기로 요정 이미지에서 탈피해 전통 문화 공간의 이미지로 변하려 노력 중이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 중 하나로 전통 혼례 공간으로도 거듭났다. 활옷에 사모관대를 갖추고 전통 혼례 방식대로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 다만 옛날 삼청각의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는 어른들에게는 기생집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생각해 싫어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 선운각
서울시 성북구 우이동에 있으며, 1980년대까지 밀실정치 3대 요정하면 대원각, 삼청각, 그리고 선운각이었다. 원래 김재규와 관계된 인물로 알려진 첫번째 주인이 1967년 개점했는데, 당시 한옥 몇채를 뜯어와서 그 부속품으로 건물을 지었는데 이 건물중 일부가 안국동에 있던 '궁궐로 보인다. 태화관도 그렇고, 도대체가 당시 대통령 박정희를 포함해서 정치계 인사는 물론이고, 외국 국빈 대접용으로도 써먹었다고 한다. 유명한 정치사건인 정인숙 살해사건의 정인숙이 근무했던 곳으로도 유명했다. 이 때문에 10.26 이후에 격동이 벌어지면서 중앙정보부와 연결고리가 끊어져서 다른 사업자가 구입해서 한정식 집을 열었다가 망했다. 그 자리의 일부를 '할렐루야 기도원'에서 구매해서 기도원과 사택으로 쓰고 있고, 다른 일부는 다시 고깃집이 되었다가 이곳도 다시 망한 상황이다. 그래서 서울시가 삼청각을 문화시설로 지정한 것처럼, 강북구가 이곳을 문화시설로 지정하려는 듯한 모습이 가끔 보이는 상황.
  • 오진암
1953년 개장했으며, 서울시의 첫등록 식당이기도 하다. 3대 요정이라느니 하는 유명세는 다소 떨어지지만 그 바로 다음으로 언급될 정도의 위치에 있으며 요정정치하면 여기도 그렇게 밀리지 않는다. 김두한의 단골집중 하나였으며, 이후락이 북한의 박상철과 만나서 7.4 남북 공동 성명을 사전 논의한 곳이기도 하다. 만찬장은 앞서 언급한 삼청각이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완전히 몰라서, 2009년 성매매 알선하다가 적발되었다는 대표적인 곳이 여기다. 결국 2010년 망했고, 2014년 종로구가 여기 이름을 안평대군의 자택터인 무계정사로 옮겨서 무계원이라고 해서 전통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원래 종로구 익선동에 있었는데, 무계정사는 부암동이라서 그냥 이름만 가져다 붙인 형태일 뿐이다.
  • 명월관
1909년에 안순환이란 자가 현대의 동아일보 사옥 근처에 세운 요정으로, 밑의 태화관의 본점 격인 곳이다. 1918년에 화재로 한차례 소실되었다가 종로구 돈의동(현재 피커디리 극장 자리)에 다시 세웠다. 경성부의 고위층 인사들이 단골[4]이었으며 6.25 전쟁 때 파괴되었다. 야인시대에서는 김두한설향이 만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시트콤 오포졸에서 나오는 기방의 이름도 명월관이나, 작품 설정상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 관련이 없다.
  • 태화관
명월관의 분관인데, 아주 복잡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원래는 중종이 딸인 순황공주를 위해서 세운 순화궁이라는 궁궐로, 헌종 시기 경빈 김씨의 사저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토지조사사업 과정에서 총독부가 국유재산을 몰수하면서 일제에 넘어갔다가, 고종의 강제퇴위에 불만을 품은 민중에게 집이 불탄 이완용에게 일제가 선물하면서 이완용의 사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걸 이완용에게서 명월관이 대여를 하면서 붙인 이름이 태화관이다. 그런데 이 태화관에서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역사적인 아이러니가 존재했다. 그래서 아주 골치가 아파진 이완용은 이 건물을 감리교 교단에 매각해버렸다. 기존 임차인이었던 명월관 기생들이 이것에 항의하면서 밖에서 노래를 부르니, 이번엔 감리교 교인들도 맞받아서 찬송가(...)를 부르는 노래 시가전이라는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소유권이 넘어갔기 때문에 1921년부터 이 건물은 이후 '태화 여자관'이라는 이름으로 감리교 포교지이자 여성 복지 사회재단이 되었고, 이후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이라는 이름으로 변했다. 다만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했던 본래 건물은 1935년에 개축을 위해서 헐렸고, 태화복지재단으로 변한 재단이 1995년 강남구 수서동으로 이전하면서 완전히 역사가 종료되었다. 이 태화재단에 이 건물에 대해서는 순화궁이었고 독립선언서 발표되었다는 소리는 있지만, 이완용에게서 구매했다거나 기생집이었다는 이야긴 없다고 카더라.
  1. 조선시대 부터 전해져 내려온 전통적인 기생의 개념과는 약간 다르다. 구한말의 근대화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기 때문.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2. 백석의 시에서 가끔 등장하는 '자야'라는 여인이 바로 그녀이다.
  3. 이것도 원래 일본인 땅이었던 것을 적산불하를 받은 것이다.
  4. 간송미술관의 설립자인 전형필도 중요한 거래 등을 할 때 이곳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