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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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정민혁(鄭敏爀 / Min-hyuk Chung)
생년월일1983년 9월 13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대전광역시
출신학교대전신흥초 - 충남중 - 대전고 - 연세대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3년 한화 이글스 2차 9순위(전체 69순위) 지명[1]
소속팀한화 이글스 (2007~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46번
김태완(2006)정민혁(2007~2008)허유강(2009~2011)
한화 이글스 등번호 19번
전근표(2010)정민혁(2011)송신영(2012)
한화 이글스 등번호 27번
이희근(2010~2011)정민혁(2012~2013)이희근(2014~ )
한화 이글스 등번호 16번
한상훈(2011~2013)정민혁(2014~2015)하주석(2015~ )

1 개요

한화 이글스의 우완 언더핸드 투수. 구질은 비교적 묵직하게 미트로 꽂히는 게 매우 좋아 보이지만, 언더핸드 치고는 공의 무브먼트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듯. 어찌 보면 공은 좀 가벼워 보여도 무브먼트가 더 좋은 신주영과 조금 반대되는 모습이다.

2 프로 입단 전

1983년생으로 원래는 2002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어야 하나, 대전고 시절에 투구 폼을 바꾸는 과정에서 1년 유급하였다.[2] 그 때가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가던 시기였고, 이 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잠재성 때문에 한화에 2차 9순위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바로 입단하지 않고 연세대학교에 진학했다.

연세대 진학 후에도 투구폼을 바꾸는데 전력을 다하여 3학년때 마침내 투구 폼 교정이 완료되었다. 원래 오버핸드 투수였는데, 투구 폼 교정 끝에 언더핸드로 바꾼 것이다. 이후 언더핸드의 위력을 대학 리그에서 보여주며 3, 4학년 시기 2년 연속 대학 리그 0점대 평균자책점을 선사했다. 대학 대표팀에도 늘 선발되어 대표팀의 핵심 선수가 되었다.

이런 호성적을 바탕으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의 유일한 아마추어 멤버로 선발되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대학리그의 호성적을 바탕으로 2억 5,000만원이라는 류현진과 같은 액수의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국가대표까지 선발되어 병역면제도 유력하니 경사났네 경사났어!

그러나 현실은 도하 참사.아시발꿈 가장 중요한 대만전과 일본전에서 대선배후배가 삽을 펐으니, 아마인 정민혁이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동메달만 들고 귀국.

기혼자며, 자녀는 1남.

3 프로 입단 후

결국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팀에 합류하였으나, 2007 시즌에는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였다. 1군 13경기에 등판해 18과 2/3이닝 동안 1승 1패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다.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했으니 좋은 성적이라 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기회 자체도 적었고…. 2008년에는 아예 시즌 내내 2군에만 있었다가 어깨 수술을 받았다. 같은 시기, 팀의 감독 밑에서 동기인 안 모 투수윤 모 투수가 혹사당하며 망가졌던 걸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이라 할 지경.(…)

어깨 수술 이후 선수들 군대 안 보내기로 소문난 한화에선 드물게 입대를 결심, 2009년부터 2010년까지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생활을 보냈다. 동기인 안 모 투수, 윤 모 투수가 당시에 모두 미필이고, 군대 다녀오는 동안 새로운 감독이 부임했다는 것은 확실한 이점.

3.1 2011 시즌

소집 해제 후 2011 시즌에 팀에 복귀하여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1군 불펜 투수진이 전멸하고, 그나마 쓸만한 불펜투수는 선발 로테이션으로 빠지고, 가장 믿음직한 불펜투수는 혼자 고군분투하다가 무너지는 등 악조건 속에서도 2군 내 다른 경쟁자에 밀려 1군 콜업의 기회가 없었다.

그래도 2군에서 꾸준히 던지며 방어율 4점대의 평이한 기록을 남겼다. 이걸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든게, 정민혁은 불펜 투수고 1경기에서 던지는 이닝이 많지 않은 편이다. 실제 그의 2군 기록을 보면 상당수의 경기를 잘 막으나 갑자기 어느 경기에서 신나게 쳐맞는 모습이 나온다. 즉, 가끔 털리는 날을 감안하면 비교적 준수한 성적.

이후 2군에서 1군으로 올라갔다 뺑소니 사망사고 내고 증발한 어느 투수와, 끝내 영점이 안 잡혀서 2군으로 도로 쫓겨난 투수 등으로 불펜진에 자리가 생기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사실상 1군 붙박이던 계약금 5억 5천만원짜리 분식점 사장님이 마침내 야왕의 분노를 사 2군으로 쫓겨나면서 그 자리에 전격적으로 콜업되었다.

1군 콜업 직후인 6월 14일 KIA전에서 9회초에 등판에 3타자를 범타로 처리하며 시즌 첫 1군 등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점수차가 크게 벌어져서 세이브는 기록하지 못했고, 또 KIA 타자들이 의욕을 상실해 아무 공이나 막 건드린 점은 감안해야 하겠지만, 한화 팬들의 반응은 유전어보다 나으면 무조건 괜찮다!!!이니…. 불펜진 사정도 안 좋으니 당분간 중간계투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화 팬들은 2011 시즌 갑작스레 시작된 한화 투수진의 화수분 야구의 또 다른 열매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보았지만, 콜업되자마자 1주일 연속으로 등판하더니 도로 2군으로 사라져 버렸다. 킬민철 비긴즈

3.2 2012 시즌

3경기 연속 등판 등으로 신흥노예라고 추앙받고 있다. 6월 3일 잠실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9차전에서 7:7로 비기던 9회 말에 등판, 4이닝동안 16타자를 상대로 67개의 공을 던지며 1피안타 3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 팀이 역전패하는 것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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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거 같아요..

특히 12회말 2아웃 상황에서 박용택이병규를 차례로 고의4구로 걸러 만루를 채운 후 윤요섭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경기를 마무리짓는 장면은 이 날 경기의 백미.[3] 믿음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던 마무리 데니 바티스타를 대신해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다시금 재조명받고 있다.

하지만 한대화 감독과 정민철 투수코치는 2011시즌부터 정민혁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지 연투는 기본에 오랜 이닝까지 소화하게 하면서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

3.3 2013 시즌

4월 3일 KIA전 8회에 등판했으나 이미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이었고, 팀은 12:1로 대패했다. 이 해에는 1군 3경기에 그쳤다.

3.4 2014 시즌

시범경기 명단에 들었지만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자 무릎 수술을 받아 재활했다. 서산에서 재활에 힘쓰고 있으나, 김성근 감독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선수로 낙점받았다.

3.5 2015 시즌

1월 고치에서 열린 스프링캠프 기간에 열린 홍백전에서 2이닝 퍼펙트를 기록하며 희망을 밝혔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1군에 오르지 못했고, 2군에서 7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좋지 못했다. 결국 시즌 전 육성선수로 등록됐던 임익준이 정식 선수로 전환되면서 2015년 6월 28일에 웨이버 공시됐다.[4]

3.6 방출 이후

방출 이후 그간의 소회를 담은 인터뷰가 나왔다. 박동희의 야구인 -'전력 외 통보'를 받은 남자, 정민혁

이후 뚜렷한 거취가 보이지 않다, 충남중학교 코치로 속초 전지훈련을 지휘한 것이 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인되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7한화 이글스1318⅔11000.5003.861611215881.286
20081군 기록 없음
2009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10
2011129⅔00000.0008.38203231192.276
20122530⅔11020.5006.1634681924211.337
20133300000.00012.005063442.667
20141군 기록 없음
2015
KBO 통산(7시즌)536222020.5006.107510284047421.532
  1. 연세대 진학으로 데뷔는 2007년에 했다.
  2. 때문에 나이가 1살 어린 팀 동료 안영명, 윤규진과 동기다.
  3. 참고로 이 날 정민혁의 3볼넷은 모두 고의4구였다.
  4. 5월말 정식선수 규정 정원을 채워 웨이버 공시됐던 추승우와 같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