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숭

조위의 추존 황제
고황제 조등태황제 조숭태조 무황제 조조

曹嵩
(?~193)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조조아버지. 자는 거고(巨高).크고 높다

출생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인물로 중상시 조등의 양자로 들어갔다. 장개에게 살해당할 당시 재산을 실은 수레만 100여대에 달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정말로 엄청한 부자였던 듯하며, 이 재산을 바탕으로 영제 에게 뇌물로 매관매직해서 태위직을 샀다. 태위가 비록 명예직이라지만 승상, 어사대부와 함께 삼공중 하나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엄청난 사건이다. 고위직을 돈 받고 파는 영제나, 고위직을 돈주고 사는 조숭의 재산이나 둘다 엄청나다.[1] 이러한 그의 엄청난 재산은 뒷날 조조가 다시 재기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동탁 집권 중 동탁이 서도로 천도를 강행하며 낙양성에 방화하여 낙양이 초토화되자, 조숭은 도겸 치하의 서주로 떠나 전란을 피해있었다. 그 후 초 지역을 안정시킨 조조가 조숭을 모시고자 하여 조조에게로 가던 중 도겸이 호위무사로서 보낸 부장 장개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죽음은 서주 대학살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것에는 두가지 상반된 기록이 존재한다.서주대학살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나중에 손자 조비가 조숭을 태왕에 추존했고 조예가 황제가 된 후에는 태황제로 추존되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가 진류로 와서 의병을 일으킬 계획을 얘기하자 조숭은 조조에게 위홍(위자)을 소개해주며, 조조가 연주를 차지할 때 도겸이 잘 챙겨 조조에게로 보내주려고 했다가 호위무사로 붙여준 장개가 본래 황건적 잔당 출신이었던 본성을 드러내어 재물을 빼앗고 죽인 뒤에 도망가는 이야기로 그려지는데 작가는 조조가 여백사의 일가를 죽인 것에 대한 업보라고 평가한다.

2 조숭은 하후씨인가?

정사 삼국지 무제기의 배주에서 조만전의 “조숭은 원래 하후씨로 조등의 양자가 되었다”라는 말을 인용했다. 이 때문에 조숭을 하후씨라고 하는 것이나, 어쩌면 원래 조씨였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조조의 딸 금향공주가 나중에 하후돈의 아들 하후무와 결혼하는데 하후돈과 사촌지간이었다면 어느 정도 근친혼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고대 때부터 이미 부계, 모계를 포함한 동성동본 결혼을 금지했는데, 조숭이 하후씨라면 이를 어긴 것이다.

다만 이 때문에 진수가 동성동본의 혼인을 대놓고 쓸 수 없어서 조숭이 하후씨라고 쓰지 않고 그렇다고 이를 안 쓸 수는 없어서 종실전 대신 제하후조전을 마련해 하후씨가 위나라 종실임을 암시했다는 의견도 있다. 하후씨가 조씨와 인척관계에 있을 뿐이라면 굳이 위나라 황실의 종실들만이 들어갈 자리인 '종실전'을 따로 두지(촉은 종실이랄 사람이 없어서 '종실전'도 없지만 오에는 '종실전'이 있어서 손권의 작은아버지와 사촌 형제와 그 자손의 전을 묶어두고 있다), '제하후조전'이란 이름으로 하후씨와 조씨를 묶지 않았을테니까.

그러나 왕침 등이 쓴 위서에 따르면 조등은 조절의 막내 아들로 위로 백흥, 중흥, 숙흥이라는 를 가진 세명의 형이 있었다고 한다. 조등은 환관이 되었지만 위로 세 명이나 되는 형들이 있고 그만큼 조카들이 많았을 것인데, 굳이 가까운 곳에서 자손을 찾지 않고 혈연도 없는 하후씨를 양자로 들였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물론 정황상 추측하는 것으로 사료나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아니다.

2013년 중국 상하이 푸단 대학교 연구진이 조참의 후손들과 조조의 후손들, 하후돈의 후손들의 DNA를 비교한 결과 세 가문은 서로 혈연관계가 아니다라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상하이저널:조조 DNA 확정..다른 인물 연구에 응용 다만, 이들이 정말로 조참과 조조, 하후돈의 후손인지는 별개의 이야기. 실제로 유비의 후손이나 관우의 후손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각각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다 다르게 나온다. 고대인의 DNA를 직접 얻어서 확인하면 정확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엔 어려우니. 일단 연구진은 조사 대상이었던 이들이 조조의 후손이 아닐 확률은 매우 낮다고 주장했다.

이전 버전에서는 진수가 조숭의 내력에 대해 숨겼다는 글을 누가 써놨는데 진수가 모르겠다고 한 것은 조숭의 내력이 아닌 출생이며 진수는 왕침의 위서에 있는 조숭의 내력에 대해 숨긴 적이 없다. 조숭의 양부가 조등이라는 사실은 무제기에도 나와 있는 기록이다.

3 미디어 믹스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조숭이 죽기 직전에 조조가 죽인 여백사(조숭의 친구기도 하다)의 귀신을 보는 호러 연출이 나온다.

배한성,배칠수의 고전열전 삼국지에서는 조숭과 다른 가족들이 라면을 먹던 도중 조숭의 실수로 장개에게 라면 국물이 튀자,이에 격분한 장개의 부하들이 [2] 이성을 잃고 칼부림을 저지른다.하긴 조숭 일가가 라면을 끓여먹기 전에 배한성과 배칠수가 라면 먹을 때 지켜야 할 에티켓 세 가지를 시범 삼아 알려줬건만...

창천항로에서는 조조가 의병을 일으킬 때 사재를 털자, 조숭은 금괴에 대하여 조조가 삼공에 올랐을 때 조부(조등)이 물려준 것이라 하거나 이 재산으로는 모아봤자 5천 밖에 안 된다면서 그런 작은 힘으로 무엇을 하냐면서 만류하는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물론 이는 창천향로내의 허구이다. 기록을 보면 조숭이 장개에게 살해당할 당시 재산을 실은 수레만 100여대에 달했다고 하니, 그런 작은 힘 어쩌고 운운할 수준의 재산이었을 리가 만무하다. 이 기록이 아니어도 조숭이 당시 삼공에 준하는 태위직이라는 최고 작위를 살 수 있었다는 것은 최소한 작위 사는 데 관심이 있는 부자들 중에서는 가장 부자였다는 추측이 가능하며 이로 보아 조숭의 재산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당대의 재벌이었던 듯 하다. 재벌 2세 조조

평설 인물 삼국지에서는 굉장한 바보로 묘사된다. 영제시기에 매관매직이 성행했는데 각 관직마다 소비자가격(...)이 정해져 있었다.

  • 태수 - 2천만전
매관매직을 하는 관직 중 가장 비싸다. 그 이유는 백성들을 여러모로 다양하게 착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사같은 작위는 사실상 명예직과 같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태수가 백성들을 가장 많이 착취할 수 있었다.
  • 삼공 - 1천만전
계급은 태수보다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고혈을 빨 수 없는 관직이었기 때문에 보다 저렴했다.
  • 현령 - 4백만전
현령이 저렴한 이유는 착취할 수 있기는 하지만 고혈의 일부를 태수에게 헌납해야 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복불복이며 특히 악질 태수가 오면 뜯어먹는 것보다 뜯기는 게 더 많을 수도 있는 아주 위험천만한 관직이기도 했다. 유비가 조정으로부터 현령자리를 맡게 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현령직을 버렸던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는 이렇게 관직을 사고팔며 작위를 이용해 백성들의 고혈을 빨고 그 중 일부를 헌남해야하는 이러한 권력 구조에 회의를 느꼈던 것이 아닐까?

조숭은 정가 1천만전짜리 관직으로 분류된 태위 관직을 1억전을 주고 샀다. 더 높이 불렀어야 된다면서 후회하는 영제는 뭐지 그것도 삼공 중 최하위인 태위직을 이 돈을 주고 샀다. 차라리 그나마 실권이라도 있는 승상을 이 돈주고 샀으면 바보로 평가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인데 조숭이 워낙 돈이 남아돌고[3] 귀찮거나 부담스러운 나머지 실권이 있는 태수나 승상직은 마다했을 수도 있다. 즉 그때 당시 상황을 모르고서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또한 그의 최후가 진행되는 과정은 삼국지연의와는 아주 다른데 삼국지연의를 증오하는 저자답게 도겸장개에게 조숭을 납치하라고 시켜서 도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장개에게 저항하다가 죽는 걸로 묘사된다. 이후 도겸은 고기방패로 조조에 맞서지만 조조는 서주대학살을 일으키며 도겸의 목을 따려고 발악했고 결국 도겸은 유비에게 모든 걸 떠넘기고 야반도주했다.
  1. 영제는 나중에 '더 비싸게 불러야 했다.'며 후회하였다 한다.
  2. 사실 라면을 끓여먹을 때 조숭이 자신의 식구들만 챙겨 먹여서 분노가 폭발한 상태였다.
  3. 죽기 직전에도 재보를 가득 실은 수레가 100여대 있었다고 하니 절대로 무리한 지출을 하여 관직을 산것은 아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