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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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Keith Emerson
1944년 11월 2일 ~ 2016년 3월 10일

영국키보디스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멤버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왠지 낮은 편인데, 영미권 국가에서는 대개 록 음악계에서 가장 파급력이 큰 키보디스트하면 가장 먼저 이 사람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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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유년기/나이스 시절 (1944~1969)

1944년 11월 2일, 영국에서 태어난 키스 에머슨은 일곱살 때부터 부모에게 선물받은 피아노로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 어른이 된 후 여러 그룹에 들어가 보지만 자기의 음악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아서 금방 탈퇴하였다. 그러던 중 피피 아놀드(P.P. Arnold)라는 가수에게서 빅밴드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오고 키스 에머슨은 리 잭슨(Lee Jackson, 베이스), 브라이언 데이비슨(Brian Davison, 드럼), 데이빗 오리스트(David OList, 기타)와 함께 피피 아놀드의 빅밴드로 활동하다가 나중엔 독립하여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나이스를 결성한다. 이 당시 키스 에머슨은 오르간에 칼을 꽂고 뒤집어 연주하는 등의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이 덕분에 나이스는 금방 유명해진다.

나이스의 첫앨범 The Thoughts of Emerlist Davjack 커버
왼쪽부터 브라이언 데이비슨(드럼), 데이빗 오리스트(기타), 리 잭슨(베이스), 키스 에머슨(키보드)

얼마 뒤 데뷔 앨범 "The Thoughts of Emerlist Davjack"[1]을 발표하여 "바흐와 비트와 블루스의 혼합체" 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앨범 발표 후 데이빗 오리스트가 키스와의 불화로 밴드를 떠나고 그룹은 트리오가 된다. 결국 기타 파트가 없는 상태에서 밴드의 무게 중심은 키보드 파트로 쏠리게 되었고, 키스의 재능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렇게 "Ars Longa Vita Brevis" 라는 음반을 내었고, 수록곡 중 "America [2]은 영국 차트 23위에 머무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셀프 타이틀 앨범 "Nice" 를 발표 하는데 발라드 곡 Hang on To A Dream 과, 밥 딜런의 곡을 편곡한 She Belongs To Me,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때도 자주 연주되는 Rondo 등이 수록 된다. 이때부터 키스 에머슨은 제 2의 바흐를 꿈꾸며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Five Bridges Suite"를 발표한다.

하지만 이 앨범을 끝으로 나이스는 해체되고 만다. 키스 에머슨은 1969년 샌프란시스코의 필모어 웨스트에서 함께 공연한 킹 크림슨의 그렉 레이크와 함께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를 만들어 활동한다.

2.2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시절 (1970~1978)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항목 참조.

2.3 솔로 활동 (1980~1986)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해체이후 각각 밴드에 들어가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키스 에머슨은 영화 음악 작곡가로 활동한다.
1979년 당시 인페르노를 촬영하고 있었고, 고블린(Gobiln)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다른 작곡가를 찾고 있었던 영화감독 다리오 아르젠토는 키스 에머슨을 찾아가 영화 음악 제작을 부탁했고 키스 에머슨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모아 이탈리아에서 녹음을 진행한다. 그렇게 영화는 1980년, OST는 1981년에 발표되는데 다리오 아르젠토 팬들에겐 극찬을 받았지만 평론가들에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아무튼 인페르노 OST를 맡은게 인연이였는지 1년뒤에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을 맡은 "나이트 호크(Nighthawks)"의 OST를 맡은다. 이 당시 키스 에머슨은 첫 솔로앨범인 "Honky"를 발표하는데 평론가들에게 "지루하다"라는 혹평을 받는다. 이후 1982년엔 "Best Revenge"라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맡는데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1년 뒤인 1983년엔 좀비 2로 유명한 루치오 풀치(1927~1996)가 감독한 "모던락(Murder Rock)"의 사운드 트랙을 맡는데 예전과 달리 팝 음악적인 사운드를 들고 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안습

2.4 새 밴드 결성과 해체(1986~1990)

1985년 결국 ELP 시절이 그리워진 키스 에머슨은 그렉 레이크를 불렀고[3] 칼 파머 대신 당시 호평을 받던 드러머 코지 파웰과 함께 "에머슨 레이크 앤 파웰"을 결성 하여 1986년 앨범을 발표하고 투어를 진행하였으나 그렉 레이크와 키스 에머슨과의 마찰 등의 이유로 밴드는 해체된다.
이후 에머슨은 당시 아시아가 해체됐다는 소식을 듣고 칼 파머와 그렉 레이크에게 ELP의 재결성을 제의한다. 파머는 당연히 승낙했지만 당시 솔로활동으로 바빴던 그렉 레이크는 거절한다. 결국 에머슨과 파머는 당시 GTR에서 세션 기타를 맡던 "로버트 베리"를 대신 영입해 밴드 "3"를 결성한다.
그렇게 1987년에 녹음을 시작해서 88년에 To The Power Of Three라는 앨범을 발표 했는데, 기존에 프로그레시브 록을 연주 하던 키스, 칼과는 전혀다른 멜로딕 락(AOR)를 연주했던 로버트 베리가 주도권을 잡아서 결국 ELP의 기존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팝 록 앨범이 되고[4] 결국 "3"도 음반 판매 저조 등의 이유로 해산된다.
1988년 "3" 해체 이후 에머슨은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을 내다가 이태리 프로그레시브 밴드 고블린(Gobiln)과 함께 미켈레 소아비가 감독하고 다리오 아르젠토가 제작,각본을 쓴 "La Chiesa"(한국판 이름은 데몬스 3)의 OST를 담당 한다.

2.5 재결성과 그이후 (1991~2016)

1991년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를 재결성해 활동 하다 1994년 잠시 활동을 중단 했는데 이유는 손에 신경을 주는 부분에 큰 압박을 받아 4,5번째 손가락이 잘 안움직이고 팔목에도 문제가 생겨 큰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1996년다시 컴백해 1998년까지 이어오다가 다시 해체하고 나서 잠시 활동을 접었다가 2002년 나이스의 전 멤버들을 모아서 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2004년에는 고지라 파이널워즈스코어를 맡기도 하다가 2005년부터는 "키스 에머슨 밴드" 라는 그룹을 결성해 2008년에 정규앨범을 발표한다. 이후 2010년에 다시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를 재결합해 공연하다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한다.
2015년 말에 페이스북에서 키스 에머슨이 2016년의 키스 에머슨 밴드 투어를 연다고 했지만.............

2.6 자살

2016년 3월 10일 키스 에머슨의 오랜 연인인 마리 가와구치가 새벽 1시 30분에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 해안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키스 에머슨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에머슨의 머리에서 총상이 발견됐다며 자살이 확실해 보인다고 밝혔다. 왜 자살했지는 아직 의문이다.

칼 파머는 "키스는 음악을 사랑하고 키보디스트로서 공연에 열정을 가진 부드러운 사람이었다"며 추모했다.

3 디스코그래피

3.1 스튜디오 앨범

  • Honky (1981)
  • The Christmas Album (1988)
  • Changing States (aka Cream of Emerson Soup) (1995)
  • Emerson Plays Emerson (2002)
  • Keith Emerson Band featuring Marc Bonilla (2008)
  • The Three Fates Project (with Marc Bonilla, Terje Mikkelsen) (2012)

3.2 사운드 트랙 앨범

  1. Emerlist Davjack는 멤버 4명의 성의 일부를 떼어다가 하나로 합친 거다(Emerson, O' List, Davison, Jackson).
  2.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의 삽입곡 이다.
  3. 칼 파머는 당시 아시아 활동 등의 이유로 불참
  4. 그래도 키스 에머슨이 주도한 "Desde La Vida"라는 곡에선 프로그레시브 적인 성향이 나타나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