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일렉트로니카

대한민국일렉트로니카 음악에 대한 개괄과 역사를 다루는 문서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기계에서 원음이 들린다고 믿는것이다. 원음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기계의 왜곡을 사랑하라. 기계의 잡음을 사랑하라. 그것이 결국 우리가 말하는 음악이다."

- 모하비 3집, Machine Kid 중 #

1 개요

1.1 1980년 이전

http://www.arko.or.kr/zine/artspaper86_11/19861105.htm
최초의 한국 전자 음악 시연은 작곡가 강석희의 <원색의 향연>이라고 한다. 이것은 흔히 알려진 일렉트로니카 음악이라기보다는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등으로 알려진 서양고전음악의 한 갈래인 전자 음악이다.

1.2 90년대 이후 테크노 무브먼트(1세대 일렉트로니카)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국 최초로 테크노의 이름을 달고 앨범을 발표한다. 자신들의 1집을 리믹스한 'Live & techno mix'인데 이 안에는 환상 속의 그대가 여러 버전으로 테크노화 시킨 음악이 담겨있다.



1992년 환상 속의 그대 Part 4. '수시아'와 더불어 우리나라 테크노 전자 음악의 시초격 음악. 5분 50초 경에 사물놀이 사운드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후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 2집 수록곡 '수시아'는 본격적인 우리나라 최초의 테크노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1997년 후반 삐삐밴드 출신 이윤정의 솔로 명의로 <진화>라는 본격적인 전자 음악 음반이 출시되었고, 해를 넘겨 1998년 봄에는 모하비의 <테크노전자음악잡동사니=타나토스>가 발매된다. 이 음반은 한국에서 발매된 첫 테크노 음반으로 여겨진다. 한편 대중 음악 판도에서는 신해철의 1998년작 <Crom's Techno Works>나 윤상의 작업물 등 테크노 음악의 작법을 부분적으로 도입한 가요들이 등장하였다.

90년대 후반 한국에서 일렉트로니카 음악에 대한 담론은 주로 PC통신을 통해 이루어졌다. 특히 하이텔의 '21세기 그루브'라는 동호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999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일렉트로니카 컴필레이션 음반인 <techno@kr>이 독립 레이블인 DMS TRAX를 통해 발매되었다. 앨범 리뷰 이 시기에는 음악 뿐만 아니라 레이브 파티 등 클럽 문화에 대한 저변이 확대되기도 하였다.

1999년에 들어 이정현의 도리도리 춤을 비롯한 소위 '테크노' 음악의 열풍으로 많은 이들에게 테크노와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알려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단순한 댄스 음악으로 여겨지는 등 일렉트로니카가 잘못 알려진 측면이 없지 않았다. 또한 마약, 문란한 성관계 등 클럽 문화에 대한 왜곡된 시각으로 인해, 일렉트로니카 음악까지 싸잡혀서 퇴폐 문화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당시의 테크노 문화를 기록한 KBS 현장르포 제3지대의 영상. 달파란, 트랜지스터헤드, 모하비 등 1세대 한국 일렉트로니카의 거물들이 등장한다.

어쨌든 좋은 방향으로 지속될 것 같던 한국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흐름은 2000년대에 들어서자 거품처럼 꺼져버렸다. 이에 대해 추가설명을 하자면 상기 말한 DMS TRAX를 비롯해 펌프기록, E.F.O Groove K.E.M.F, 벌룬 앤 니들 (엄밀히는 노이즈 기반의) 등 일렉트로니카 전문 음반사들이 있었고 이너테크와 101레이버스, 02 프로덕션, 열반화 등 이벤트를 전문으로 하는 프로모터 집단들도 생겨나는 추세였다. 다만 문제는 이들 파티 프로모터, 혹은 디제잉 라인과 아티스트 라인의 교류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정현 혹은 이윤정으로 테크노를 처음 접한 이들에게 달파란이나 모하비, 가재발, 트랜지스터 헤드 등의 정통 테크노는 낯설었고, 전문 디제이 라인과 아티스트 라인의 교류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두 집단 모두 '노는 사람만 노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당시 데이트리퍼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아티스트 류한길은 소음인가요의 인터뷰를 통해 이정현 등의 대중매체가 가져온 '테크노 이미지'의 여파가 너무 심해, 당시에 활동하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대중의 인식과 반대되는 (원래 자신들이 하던) 음악을 하기 힘들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박국 : (...) 그 후에 아우라소마, PLUR 등 클럽도 몇개 생기고 그러다 갑자기 뭔가 슉하고 사라졌죠.

류한길 : 제가 기억하기는 사라지는 원인 중 하나가 일단 이정현씨의 '와'.. 그 여파가 너무 심했어요. 그 때 무대 의상이랑 부채 기억하세요? (하박국: 아 예,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 그 게 '테크노'란 이름으로 히트를 치면서 저희들은 완전히 도적놈들 같은 입장이 되어버린 거죠. 대중의 인식이라는 게.. 실제로 잘 알려지지 않은, 언더그라운드 기반의 다채로운 것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 외국에서 테크노 붐이 인다고 하니까 갑자기 기획사 사람들이 하나둘 공연장에 오기 시작한 거에요. 그러다가 분위기가 어떻게 됐냐면 '지금 여기서 활동하는 언더그라운드 테크노 뮤지션을 대중음악쪽으로 끌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면서 기존 대중음악 쪽에서 프로듀싱을 하던 분들이 해외의 스타일리즘을 가요 스타일에 적용시키고... (후략) - 소음인가요 : 아티스트토크_류한길(Ryu HanKil) 편에서 발췌함


이와 함께 2000년대에 들어서며 테크노의 주 무대였던 홍대 댄스클럽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문을 닫는 경우도 생겨났다. 한국 클럽문화 분석 국산 일렉트로니카 음반의 수가 줄어든 것은 레이블의 존속 문제도 있지만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매우 부족했다는데 있었을 것이다. 아우라소마와 같은 레이브가 국내에서도 시도되었지만, 국내에서 생소한 이 문화는 특히나 월드컵전후 미디어에서 레이브 음악을 약물과 연관지으며 #, # 논란이 심해졌고 결국 미디어의 철퇴를 맞고 시들시들해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일렉트로니카 음악가들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였는데, 정확히 말하면 평가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은퇴하였다. 대표적인 한국 일렉트로니카 1세대 뮤지션인 모하비는 음반을 내다가 파산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2011년까지만 해도 공사판에서 육체 노동을 하다가 그나마도 폐렴으로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기타 음악가들도 활동을 접거나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1.3 200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2~3세대 일렉트로니카)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 하우스/라운지 음악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들 음악가들이 많은 인기를 끌면서 마치 하우스나 라운지 음악이 일렉트로니카의 전부인양 여겨지는 풍조를 낳기도 했다.

그나마 일렉트로니카의 시선이 바뀌게 된 시기는 2010년 이후로, 이 시기는 해외에서도 기존의 전자음악에 EDM이라는 태그가 새로 달리며 댄스음악을 다시 조명하는 때였다. We No Speak Americano와 Party Rock Anthum의 흥행시기 이 두 곡은 과거의 666 - Amok에 버금가는 만큼 흥행을 거두었으며 이를 통해 클럽 음악의 장벽이 낮아지며 사람들이 댄스음악을 더 쉽게 접하게 되었고, 글로벌 게더링과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 넥스트 플로어 08 등의 페스티벌이 전자음악 매니아들을 결집시키며 전자음악 커뮤니티의 부흥이 일어났다. 2012년 경 Seoul Electronic City라는 라디오쇼가 지역방송인 마포FM에서 송출되어 국내 전자음악을 소개하였으며, 비슷한 시기 언더그라운드 미디어&레이블인 영기획의 창단과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의 등장으로 인해 사람들의 전자음악에 대한 접근성이 조금 더 높아졌다. 2013년에는 와트엠이라는 라이브 전자음악을 위한 공연 무대와 대안적 음원 유통 플랫폼인 오디오로그가 등장하여 아티스트의 접근성이 더욱 높아졌고 전자음악 세미나 - 이매진, 디제잉/프로듀싱 특화 교육과정을 전수하는 SEMC도 생겨나게 되었다. 대중적으로도 무한도전에서 EDM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고, 전자음악이라는 장르 내에서 가장 많은 앨범이 발매된 해이기도 하다. 이 현상은 페이스북과 사운드클라우드, 밴드캠프를 비롯한 SNS 페이지가 아티스트에 대한 소개 및 작업 정보를 더욱 쉽게 정리하고 공개할 수 있게 됨으로써 대부분의 아티스트가 이를 활용한 것으로 보이며 2014년 현재까지 이런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한국에선 일렉트로니카란 장르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예를 들면 클럽 DJ는 그냥 동네 양아치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든지 단순히 클럽에서 추는 댄스음악으로 생각한다든지, 일렉트로니카는 그냥 컴퓨터로 뚝딱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든지. 이것은 실제로 한국에 알려진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대부분 EDM 위주의 댄스 음악인 탓이 크다. EDM 아티스트 가운데서도 훌륭한 음악을 만드는 이들이 있지만, 클럽에서 몇 번 틀고 버리려고 만드는 양산형 음악이 많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4년 현재 국내의 전자음악은 사운드아트, 미디어아트와 결합된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WeSA라는 사운드아티스트 네트워크의 창립 및 MAX/MSP의 사용, 소리왕, 소음인가요, 무잔향 등의 전시로 전자음악, 혹은 그 작법이 미디어아트와 결합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한편 EDM쪽에서는 인터넷의 발달로 국내의 아티스트가 해외 레이블에 데모를 보내거나 비트포트에 곡을 등록하며 해외 매체에 노출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는 기존 클럽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무대와 활로를 모색하던 중 예술과 관련이 있는 갤러리와 연이 닿아 좀 더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며 이런 형태로 변하게 되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전자음악 커뮤니티 중 하나인 ESCAPE의 서비스 ESC WIKI에서 각 사건들을 타임라인 형식으로 정리하고 있기도 하다. 다음 링크를 참고. #

2 한국의 일렉트로니카 음악가들

국내에 발매된 앨범의 목록은 다음 페이지에서 확인해볼 것 # - by loop-o-matic

활동명은 최대한 가나다(영어)[1]-영어만 있는 것 순으로 표시합니다. 범위를 정하기 모호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오직 일렉트로니카로만 앨범을 내고 활동하는/한 적이 있는 뮤지션들만 있습니다.

3 한국의 일렉트로니카 레이블/크루

동인음악 성향에 가까운 서클/레이블은 동인 음악문서 참조.

4 참고 자료

  • 한국 테크노 음악의 '정돈되지 않은' 연대기, 장호연, 웹진 weiv #
  • 디시인사이드 일렉트로니카 갤러리 '잃어버린 한국의 소리를 찾아서' 연작#
  1. 몇몇 뮤지션 등은 대중음악 작곡이나 리믹스에 참여하면서 한글명이 아닌 영어이름으로 넣는 경우가 많다. 참고.
  2. 국내에서는 드물게 IDM을 프로듀스했던 아티스트.
  3. DJ 바가지. 본명에서 유래한 별명이라 한다. 어느날부터 Viphex 13으로 이름을 바꿔서 밀고있는데 애석하게도 별로 호응이 없는 듯.
  4. 익스페리멘틀 아티스트. 국풍81을 패러디한 자켓의 국풍 13 앨범이 있으며, 신촌에 주파수라는 작업실도 있고 영등포에는 다소유라는 LP음악카페/바를 운영중이다. 단순 카페뿐만 아니라 인디즈 공연 대관도 한다는듯.
  5. 일렉트로니카의 틀을 쓰는 키치 아티스트. 그의 정체가 SSS라는 인디밴드 멤버중 한명이라는 설이 있다.
  6. 과거에는 miao, AID 등의 명의로 동인 음악 씬을 넘나들며 활동했지만 예의 그 커리어를 기점으로 非동인 씬으로 진출한듯.
  7. 전 DJ silent
  8. BMS 제작시에는 보통 KHTP라는 명의로 활동.
  9. THERIOTZ!의 멤버 중 한명. 데뷔하기 전에는 일렉트로니카 갤러리에서 고정닉급으로 활동했었다 한다.
  10. 원래 영쿡과 하두리의 2인(+2인)그룹이었으나 하두리 탈퇴후 사실상 영쿡의 다른명의 취급. 힙합에서는 오버클래스에도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