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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강영숙 |
생년월일 | 1981년 9월 16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학교 | 동주여상 |
포지션 | 파워포워드 |
신체사이즈 | 187Cm |
프로입단 | 2000년 드래프트 10번 (춘천 한빛은행 한새) |
소속팀 | 춘천 한빛은행/우리은행 한새 (2000~2004.9.13, 2014.2.12~2015) 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2004.9.14~2013.1.10) 구리 KDB생명 위너스 (2013.1.11~2014.2.11) |
2010~2011 한국여자프로농구 MVP | |||||
정선민(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 → | 강영숙(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 → | 신정자(구리 KDB생명 위너스) |
WKBL의 떠오르는 파워포워드. 대기만성형의 선수로 입단 후 10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한 선수다. 춘천 우리은행 한새의 포워드. 별명은 종아리가 굵다고 해서 생긴 아리 공주(...) 손예진 닮았다고 하는 여자농구팬들도 종종 볼 수 있다. WKBL의 떠오르는 미녀선수.
키가 크다는 이유로 농구를 시작해 고교 1학년 때는 계약금 1억 원을 미리 줄테니 우리 팀으로 오라는 제안도 받았던 선수였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로 인해 13개나 달하던 실업팀이 5개로 줄어들면서 극심한 취업난이 시작되었고, 그녀도 간신히 2라운드에서 지명을 받아 춘천 우리은행 한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팀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양질의 선수들이 재배치되었다는 뜻이고, 그 말은 곧 신인들이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뜻이다. 강영숙도 우리은행에서는 거의 기회를 잡지 못했고, 2004년 신한은행으로 트레이드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2007년 임달식 감독이 부임한 후, 점차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선배인 정선민의 조언 아래 기량을 급상승시키면서 팀의 블루 워커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2009-10 시즌 생애 첫 두 자리수 득점에 성공한 후, 2010-11 시즌에는 평균 11.3득점 7.6 리바운드를 잡아내면서 팀의 골밑을 책임졌다. 여기에 팀의 주장으로서 활약한 것까지 겹치면서 후배인 김단비를 제치고, 2010-11 시즌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그리고 국가대표에도 발탁되어 활약 중. 2011-12 시즌에는 전년보다 기량이 더 업그레이드되면서 평균 15점을 집어넣고 있다. 하지만 2011-12 시즌 종료 후, 2012 런던 올림픽 예선전에서는 좋은 활약을 하지 못하면서 하락세를 보였고, 이는 2012-13 시즌에서도 이어졌다. 결국 신한은행과 KDB생명이 분위기 반전을 위해 단행한 3:3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KDB생명으로 전격 이적하면서 신정자와 더블 포스트를 이루게 되었다.
2014년 2월 11일, 우리은행의 이정현(+ 1라운드 지명권)과 전격 트레이드되었다. 약 10년여 만의 친정 복귀다.
2004년부터 사귄 남자친구와 2012-13 시즌이 끝난 뒤 중순에 결혼했다.
2015년 4월 15일에 은퇴선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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