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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39년 강원도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유부녀가 남편을 비롯한 4명을 독살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2 상세
1939년 1월 6일, 강원도 선선군에 사는 최산방(50)은 그날 아침 메뉴인 보리죽[1]에 아비산(亞砒酸)을 타서 남편 김호경에게 먹였다. 그리고 마침 집에 찾아온 이웃집 김두성(56)을 비롯한 네 사람에게도 죽을 대접하여, 그중 세 명이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체포된 최 여인은 5월 18일 경성지법에서 코바야시 판사 주재하에 재판을 받았다. 법정에서 최 여인은 16세에 남편과 결혼한 뒤 2남 2녀를 두고 화목하게 살았지만, 자식들이 모두 죽고 난 뒤 남편이 새로이 아들을 얻겠다고 첩을 둔 뒤, 자신에게 이혼을 종용하며 정신적인 학대를 계속해 왔다고 호소했다. 그 때문에 격분하여 남편을 독살한 뒤, 자기도 자살하려고 했다는 것.
이날 공판에는 특별히 이화전문학생들이 방청하러 오기도 했다. 결국 최 여인은 사형을 선고받았고, 훗날 항소했으나 기각되고 말았다.
(1939년 5월 19일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