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검선도(劍禪道)
대한검도회의 창립자인 고 서정학(徐廷學) 9단이 1997년 1월 창시한 무도 단체이다. 창시자의 호 '창암(暢巖)'에서 따와서 '창암류 검선도'라고도 부른다. 그 동안 익히고 깨우친 검리에 바탕을 두며, 선(禪)을 정신 수양으로서 도입하였다고 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몇몇 기술은 일본 고류 무술 신카게류(신음류)에서 나온 것도 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본부도장이 서울특별시가 아니라 대전광역시에 있다.
한국검선도연맹 홈페이지
창암류 검선도 카페
검선일여 카페
2 역사
1996년 12월 10일 한국검선도 본원이 개원되었고, 1997년 1월 28일 무도단체로 창립됐다.
검도가 근본적으로 일본 무도이기 때문에 이를 안타깝게 생각해 협회 내부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했지만 이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아 그냥 따로 무도 단체를 새롭게 창립했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검선도는 해동검도 같은 다른 무술과는 다르다는 독자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검선도 역시 크게 '검술'의 영역에 포함되는 하나의 '검술 유파'로서 의식하고 있다.
초대 회장인 서정학이 2005년 사망한 후 그 아들이 자리를 이었다.
3 판정제
검선도는 검도의 한판제와 달리 점수제를 쓰고 있다. 머리, 허리, 목(찌름/베기)은 각각 2점, 손목, 어깨, 허벅지는 1점씩이며 합계 3점 이상이 되면 승리한다. 다시말해 손목 득점을 두 번이나 했어도(검도였으면 끝났을 상황) 머리 한 방으로 동점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
이는 진검이라고 가정했을 때 베이면 즉사하는 부분은 2점으로, 그렇지 않은 부분은 1점으로 책정한 것이다. 좀 더 실전에 입각하여 짜여진 판정체계라고 볼 수 있다.
4 특징
4.1 시합
검선도는 기본적으로 검도와 유사하나 격자부위가 더 많고 다양하다. 또 검도에서는 사장된,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방식의 격자법 및 사선으로 내려긋는 격자법 등이 허용된다.
호구는 기본적으로 검도의 호구와 비슷하나 유효격자 부위에 표식이 붙어있다.검선도 호구의 특징
4.2 연무
기술면에 있어서 검도의 본을 빼버리고[1] 서정학이 정리한 '염상이합도' 라는 검술이 수련체계에 들어가 있다.
염상이합도는 가상의 적과 상황을 상정하여 혼자 연무하는 검술 형태로 거합도와 외형적으로 비슷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세세히 보면 보법, 발도 시 행하는 기술들, 좌우손을 바꾸며 베는 파지법, 베는 부위 등... 많은 부분들이 전혀 다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정좌하는 일이 잦았던 일본과는 문화적 시대적 상황이 다른 것을 고려하여 거합도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 연무한다
서로 합을 맞추는 쿠미타치도 새롭게 짰다. 검도의 형(型)이 유급자, 유단자 구분없이 7가지만 있는데 비해 검선도의 형은 수련자의 레벨에 맞추어 유급자용 5개, 유단자용 5개로 나누어 편성했다.
4.3 참선
또한 기술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을 중시하여 참선을 도입하였다.
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은게 일단 창시자인 서정학 선생의 무도 기원이 일본의 검도라는 점과 선(禪)의 수련이라는 것도 이것이 딱히 왜색과 한국색을 구별하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다.
4.4 봉술
서정학이 검도 수련을 바탕으로 정립한 단봉술과 쌍봉술을 창암봉술이라는 이름으로 교습하고 있다.
4.5 결론
검선도는 검도 항목에서 볼 수 있는 현재 검도에 대한 비판점을 받아들여 개선한 수련 체계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론 검선도가 한국색을 크게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딱히 한국적인 검도라기보다는 왜색만 배제시키고 공통된 검리를 발전시킨 성향이 크다고 평하기도 한다.
5 기타
월단(단증 남발)이나 단기 지도자연수가 일절 없기로도 유명하다. 검선도 창립 초기에 많은 해동검도, 합기도 사범들이 단기 지도자연수를 받으려고 찾아왔다가 백띠부터(...) 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말에 고개를 휘휘 젓고 돌아갔다고... 극 초기에는 검도 단증 만은 검선도 단으로도 인정해줬지만 지금은 그런 거 없다. 검선도의 보급이 더딘 이유이기도 하다.
검선도내 고단자 사범들은 세력 키우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상태이며, 검선도의 전파보다는 창암류 검선도의 맥을 잇는 것을 중요시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위에도 서술했듯이 속성 단기 지도자 연수 등이 일절 없어서 지도자 양성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큰 원인 중 하나이다. 서민석 총사는 단기연수나 월단으로 인한 사범육성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절대 서두르지 않고 어디까지나 원칙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방침을 확고히 하고 있다.
- ↑ 대한검도회가 까였던 것이 전통무예라고 선전 하면서 승단 심사에 대일본제국형 대도 7본과 소도 3본을 본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