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역사
海東劍道 haidong gumdo[1]
해동검도는 한국의 현대 창작 무술로, 1980년대 경에 배우 겸 무술인인 나한일과 김정호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주 근본이 없진 않고 토대가 되는 여러 무술, 무서를 통합, 변형시켰다. 하지만 광고하는 것처럼 고구려 무술은 아니다.
해동검도 측에서는 고구려의 사무랑(士武郞)이란 무사단체에서 만들었다,[2] 장백산의 스승에게서 배웠다 등의 기원 주장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현대에 만들어진 창작 무술이다. [3][4] 나한일 오프라인 사건
실제로 서라벌고등학교 동창이던 나한일과 김정호는 고등학생 시절 1970년경에 서울 신당동에 있던 심검도 호법총관에 입관하여 심검도 창시자 김창식 관장에게 심검도를 배웠다. 심검도는 김창식 관장이 창안한 유파이고, 김창식 관장은 당시 화계사 주지였던 숭산스님의 제자였다. 김창식 관장이 미국으로 이민가자 나한일은 심검도 도장을 인수하는데[5], 운영 부진으로 1977년경 폐관한 뒤 김정호의 소개로[6] 기천문 문주 박대양으로부터 기천문을 배운다. 나한일은 1980년 초 현진영화사 김두원 회장의 후원으로 서울 서초동에 도장을 개관하는데, 박대양이 건물 임대 계약자로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기천문' 간판을 달겠다고 주장해서 갈등이 생긴다. 결국 박대양이 떠나고 도장은 '심검도 체육관'으로 개칭한다. 안양에서 도장을 운영하던 김정호는 1982년 경 서초동 도장에서 다시 나한일과 합류, 도장 운영에 참여하고 나한일은 방송국 일에 전념하기 시작한다. 1983년 경 최태민 목사[7] 가 심검도 도장에 참여하는데 이 사람이 나중에 해동검도라는 도장 이름을 지어준 인물로 이야기된다. 현진영화사의 후원으로 운영되던 심검도 체육관은 현진영화사의 부도 위기로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처했고, 김정호는 나종균의 도움으로 1986년 서울 삼성동에 해동검도도장을 세우고, 나한일은 해동검도연구소장이라는 직함으로 나한일과 함께 해동검도 보급에 나선다.
해동검도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각자가 말이 다른데, 1982년에 경기도 안양시에서 김정호가 운영하던 도장이 "해동검도체육관"이었다는 주장, 1984년 경 서초동 심검도 도장에서 배우던 최태민 목사의 제안에 따라 해동검도를 상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주장, 삼성동 해동검도도장이 조금씩 엇갈린다. 하지만 김정호가 1961년경 소위 장백산 스승으로부터 우리 전래의 검법을 전수받았으며 이 검법을 해동검도라고 통칭한다는 주장은 김정호의 나이를 생각하면 당연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2 대한검도와의 대립
해동검도는 1989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일반에게도 검도계에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신생 도장이었다. 그런데 드라마 무풍지대가 인기를 끌던 시절, 탤런트 나한일은 무풍지대의 주인공 유지광 역을 맡았다. 드라마 상에서 방영된 체력단련과정이나 검도 장면이 바로 해동검도였다. 이것이 알려지자 해동검도에 찾아오는 사람이 늘게 된다.
뿐만아니라 나한일은 방송에서 자신이 검도 7단의 유단자라고 소개했는데, 유사검도에 대해 이전부터 신경질적인 대응을 해오던 대한검도회에서 1989년 6월 경 나한일을 사이비검도교습소운영 및 검도 7단 사칭으로 고소했고, 나한일은 자신이 해동검도협회 소속이고 검도는 보통명사인 데다가 해동검도 7단이므로 대한검도회와는 무관하다고 맞고소 및 대한해동검도협회에서 발급한 단증을 제출하여 혐의 없음으로 수사 종결되었다. 오히려 이 일로 인해 해동검도가 홍보된 감이 없지않아 있다(...). 웃기는 것은 대한해동검도협회가 조직된 것이 1989년 5월이라는 점. 협회 시작하고 한달만에 7단인 셈이다.창시자는 보정되나?
3 현황
1989년 대한해동검도협회가 조직되고 탤런트 나한일의 이름값 덕분에 전국의 여러 도장이 해동검도도장으로 간판을 갈고 대한해동검도협회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전국에 난립하던 유사검도 도장들과 협회들은, 원래 검도를 간판으로 걸고는 싶었으나 유서 깊고 그만큼 도장 인가도 쉽게 내주지 않는 깐깐한 대한검도회 밑에서는 몇 년을 해도 장사판(도장)을 벌일 수가 없으니 너도나도 자기네 유사검도 도장과 유사검도협회를 차린 것인데, 해동검도가 드라마 무풍지대 덕분에 인기폭발이었으니 그 쪽으로 상호교체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대한검도회가 쉽게 수를 늘리지 않아서 유사단체를 난립하게 만들었다면, 해동검도는 너무 쉽게 수를 늘려서 문제가 되었다. 협회에 수많은 도장들이 가입을 해오자 가입비용과 협회 운영을 놓고 대한해동검도협회의 수뇌부끼리 분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1991년 경 나한일은 '해동심검도협회'를 만들어 분열해나갔다가 1992년 다시 대한해동검도협회로 복귀, 하지만 또다시 1992년 경 분열되어 나간 도장끼리 한국해동검도협회를 차리자 나한일이 한국해동검도협회의 회장으로 취임한다. 이러한 협회의 난립과 밥그릇 다툼은 부실운영을 초래, 여러 병폐들을 가져오게 된다. 아래의 사건항목도 이와 연관이 없다 할 수 없다.
크게 나한일의 한국해동검도협회과, 김정호의 대한해동검도협회(1996년에 이를 모체로 국제단체인 세계해동검도연맹도 출범)로 나뉘어졌다가, [8] 이후 분리가 계속되어 국제해동검도연맹, 도법해동검도회, 한국전통해동검도협회, 해동심검도협회 등등 수십개의 단체로 사분오열되었다.
혼란과 밥그릇 싸움에 병폐[9]가 있었지만 한국해동검도가 일련의 사건[10]과 운영의 허술함으로 몰락하면서 세계해동검도 위주로 교통정리가 되어가는 중.
이들로써는 다행스럽게도 각종 병폐는 사라졌지만 이미 해동검도 자체의 파이가 많이 줄어든 상태이다[11]
4 해동검도의 수련
한마디로 나한일과 김정호가 심검도 도장에서 배운 심검도의 검술을 기반으로, 기천문의 수련법을 따와서 창작한 것이 해동검도다.
더불어 무예도보통지 등의 무서와 기타 등등
비공식적으로는 중국쪽이나 일본쪽 기술들도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 이것은 추정으로써, 하다보니 비슷한 점이 있는 건지 해동검도에 맞는 요소를 차용한 건지 확실치 않음. 하다보니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하기엔 맞아떨어지는게 많고 일부러 차용했다고 보기엔 안 맞는게 많다.
해동검도에서 수련하는 검법은 시대가 흐르고 협회가 갈라서면서 자주 바뀌는데, 1984년 출간한 ≪해동검법개론≫에서는 심상검법, 쌍수도, 예도, 본국검법, 장백검법, 쌍검, 격검이 나와있다. 이것이 해동검도의 기본으로 보면 된다. 해동검법개론은 나한일 편저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김정호가 쓰고 직접 시연을 해보인 것이며 나한일은 이름만 올린 것으로 보인다.
적잖은 이들이 '해동검도가 진검을 쓰니까 최고다' 혹은 '짧은 역사에 대련도 안 하니까 똥이다' 하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생각하는데 굳이 진지하게 생각해보자면 칼을 잘 쓰게 되는 건 맞다, 하지만 칼싸움을 잘하게 되느냐 라고 묻는다면 글쎄올시다. 단순히 칼을 잘 쓰는 걸로 칼싸움을 잘하게 되는 건 한계가 있다. 비유를 해보자면 '취미가 사격인 사람과 서바이벌인 사람이 총싸움을 한다면?! '과 비슷할 것이다. 답은 군인이 이긴다.
4.1 세계해동검도연맹(대한해동검도협회), 총재 김정호
4.1.1 유급,유단자별 검법과 과정
현재 세계해동검도에서는 쌍수검법 1~12, 심상검법 1~4, 예도검법 1~9, 본국검법 1~7, 장백검법 1~7, 음양검법 1~7, 태극검법 1~7, 해동검법 1~7, 쌍검검법 1~7을 가르치고 있는듯 하다.
유급자-초단 : 기본동작, 쌍수검법1-8 (1~2년이상)
착실히 기본기를 쌓으면 된다곤 하지만...많은 봐주기로 불행히도 2,3단 정도까지의 학생들은 실력이 못미치는 경우가 매우많다. 물론 초단은 더많다.
초단-2단 : 쌍수검법9-12, 심상검법 (1~2년이상)
성실한 수련의 결과가 초단이라면 2단다운 실력을 갖추게 되면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성실함+ 잘하기 가 필요하기 때문, 물론 실력이 못미치는 사람이 많다.
굳이 대단한 동작을 안하더라도 어린 수련생들의 발도 착검만 봐도 한숨이 나온다. 성인도 그런 경우가 있는데 제발 해동검도 욕 먹이지 말고 제대로 하자. 이런것 아니더라도 비판받을 일이 많으니 검 다루는 실력이라도 좀...
성인들은 기본적인 진검수련과 대나무 베기를 시작한다.(꽤 재미있는 놀이거리다. 이것때문에 해동검도 하는 성인도 있을정도.)
2단-3단 : 예도검법 (1년반~3년이상)
3단쯤 실력이되면 자기만의 뭔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실력이 못미치는 사람들도 이때쯤되면 5~10년은 수련했기 때문에 짬밥빨로 보통사람과는 다르다. 물론 그래도 좀 다르다는거지 그 사람들이 못하는건 못하는거다. 잘하는 사람들은 이때부터 소위 날라다닌다. 물론 진짜 날진 않는다(...)
3단-4단 : 본국검법 (2~4년이상)
4단심사쯤 되면 봐주기가 거의 없다. 아무리 장사가 중요하다지만 4단은 4단이니까. 그래도 고단자답지 못한 이들이 있긴 하지만 크게 줄어든다. 그저 단이나 따려고 해동검도를 시작한 사람들은 3~4단쯤되면 시들해져서 나가떨어지기 때문인 점도 있다. 이런저런 무술을 진지하게 하면서 해동검도 3~4단이면 볼만큼 봤다 하고 떠나는 실력자들도 있긴하지만 이쪽은 비중이 매우, 많이, 엄청나게 적은 관계로...
이때쯤되서 4단답지 못한 사람들은 열심히 하는데 정말 재능이 없거나...더 해보고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이전의 봐주기로 인해 개판으로 실력을 쌓은 사람들 정도이다.
4단-5단 : 장백검법
지도자들은 심사를 따로보게 되는데 체육관 운영한다고 운동이 부족해져서 안습의 모습을 보이는 관장들이 소수 있는듯 하다. 본격 수련생이 더 잘하는 상황?!다행히 자정노력을 보이고 있다.
사실 이정도 까지 온 수련생들은 언뜻 보기엔 지도자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허접한 일부 관장들보다 이론적으로나 실력적으로 나을정도(본격 수련생이 더 잘하는 상황?!). 한가지 운동을 최소 십수년 이상 한 사람들이다. 못하는게 이상한거다.
위와 같이 가르치고 있으며 장백검법부터, 혹은 그 이후로는 지도자들의 전유물에 가깝다.
4.1.2 격검
이름은 대련일 것 같지만 대련은 아니고, 검법과는 달리 짤막하고 실용적인(아닌것도 있다) 기법을 교육한다.
4.1.3 발도,착검
제대로 운동했다면 필요없는 교육과정이지만 어린 수련생들의 경우 발도, 착검이 개판인 경우가 많아 최근에 커리큘럼을 만든 것으로 추정.
아마 목도를 발도, 착검하면서 검집에서 빼내는 느낌이 아닌 검집에서 뜯어내는 느낌으로 발도, 착검을 했으리라 추정된다.
말그대로 발도착검만 하진 않고 뽑아서 베거나 막거나 한다음 착검하는 몇가지 경우의 수를 만들어 놓았다.
4.1.4 물체 베기
성인은 매우 재미있는 놀이인 대나무베기(정말 재미있다, 대나무 베기나 짚단 베기에 너무 빠져 도장을 말아먹은 관장도 있을 정도)를 하고, 미성년자는 목검,가검,죽검(대나무로만든 얇은검)등으로 종이베기를 한다.[12]
대나무베기의 경우 자기 검만 있다면 들이는 돈 대비 시간이 준수하고 재미있기까지 하므로 해동검도를 그만두고도 하는 사람이 많다. 반대로 대나무베기가 하고 싶어서 배우는 사람도 있다. 사실 대나무베기를 배울 땐 전문적으로 베기만 하는 동호회나 작은협회 등에서 배우는게 빠르긴 하지만 마음이 급해 그렇게 배우더라도 해동검도도장이나 검도도장 혹은 기타 검을 다루는 무술도장에서 해당무술과 병행해서 배우는게 자기 자신에게나 검에게도 좋다고 생각한다.(이건 검 가진 사람만 공감할지도...)
종이베기의 경우 아무리 날이 없는 검들이라지만 쉬울거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어찌보면 짚단베기랑 비슷한 느낌이랄까.(대나무베기는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베냐 못베냐의 문제에 가깝지만 짚단베기는 잘!베기가 어렵다)본 위키러는 종이베기를 많이 해 봤지만 진짜 종이에 검이 닿는 순간 '찌익'소리보다 '퍼석'하고 종이가 통째로 뜯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경우가 많다.
4.2 한국해동검도협회, 총재 나한일
1994년 한국해동검도협회에서 출간한 ≪해동검도-검도의 원류와 검법≫에는 쌍수검법, 심상검법, 예도검법, 본국검법, 장백검법, 선방검법, 선공검법, 좌방검법, 좌공검법, 와검법, 몽복검법, 비연검법, 쌍검법, 참선검법이 등장,
1999년 한국해동검도협회의 서적≪ 해동검도교본≫에는 쌍수검법 1~12, 심상검법, 예도검법 1~9, 선방검법 1~20, 본국검법, 선공검법, 쌍검법, 좌검법, 천강검법, 명상검법, 해동검법이 등장.
2005년 한국해동검도협회 정관에는 쌍수검법 1~12, 심상검법 1~4, 예도검법 1~9, 선방검법 1~20, 선공검법 1~16이 나와있다.
2016년 기준으로 유급자는 쌍수 1~12번 심상검법을, 1단은 예도검법과 선방검법 1~5번, 2단은 예도검법과 선방검법 6~9번, 3단은 선방검법10~20번을 수련한다.
4.3 기타 사항
기타 군소 협회들의 수련은 대한해동검도협회나 한국해동검도협회와 유사하고 +-@를 한 정도이며 한국해동검도협회의 몰락과 도장사업 자체의 사양길로 인하여 대한해동검도협회 위주로 교통정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적지 않아도 될듯하다,
참고로 세계심검도협회의 술기로 선방검법 1~20, 선공검법 1~16, 좌방검법, 좌공검법, 와검법, 와우검법, 와좌검법, 와복검법, 참선검법, 몽복검법, 몽검법, 비연검법, 도검법, 검투검법, 심검법이 있다. 이로 미루어볼때 해동 일부 계파(한국해동검도 계열)에서 하고 있는 선방검법, 선공검법, 좌검법, 천강검법, 명상검법 등은 심검도의 것이라고 보면 된다. 심검도는 중도 크기의 칼을 한손으로 사용하는 검술이며 양손으로 검을 다루는 기법은 없다. 나한일의 법정 증언에 따르면 심상검법, 본국검법은 나한일과 김정호가 함께 만든 것이며, 쌍수검법은 나한일이 만들었고, 본국검법은 무예도보통지를 보고 김정호와 나한일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해동검도의 본국검법은 대한검도회의 본국검법과 그 기원은 같으나 실제 내용은 다르다. 무예도보통지 복원 검술이 다 그렇듯이 단체마다 해석과 재현이 다르기 때문에 누가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실은 본국검법의 재현도에 있어서는 대한검도회 측의 재현 또한 제대로 된 것이라고는 말못한다. 대한검도회는 자신들이 하는 일본 검도의 검리에 맞춰 왜곡하는 경향이 몹시 강하기 때문이다.
해동검법개론을 보듯이 해동검도의 주요 술기는 김정호가 만들었으며 처음 만들었을때 심상, 쌍수, 예도, 본국, 장백, 쌍검 등인데, 초창기에 갈라져나간 나한일의 한국해동검도 계열에서는 김정호의 해동검도의 검법을 전부 익히지 못했다보니 모자라는 기술을 심검도의 선방검법, 선공검법, 좌검법 등으로 메꾼 것 같다.
내가신장, 소도세, 복호세, 대도세, 개운기공 같은 수련법들은 기천문의 수련법이다. 검술 자체는 심검도를 기초로 쌍수검술로 창작해낸 것이고, 수련기법은 기천문에서 따왔다고 보면 되겠다.
대한검도가 대련과 타격을 중요시 여기는 반면에, 해동검도는 검법 형 수련 위주로 한다. 신문지 베기나 촛불끄기 같은 퍼포먼스도 많이 한다.
탤런트 나한일 씨의 촛불끄기 시범. (2015년 현재 동영상 엑박)
해동검도는 형 수련을 중심으로 하고 대련 시스템이 없다보니, 대련 노하우가 없어서 칼은 잘 쓸지언정 싸움은 못하는 상황. 검도측과 대련으로 붙으면 질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근래에 대련 시스템 없이는 검술에 발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해동 쪽에서도 호구[13][14]와 죽도 대련, 혹은 기타 대련방법을 도입하려다 말았다. 이처럼 해동검도 일선 관장들도 자신들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다양한 부분에서 타 무술의 체계나 기술을 흡수하여 보완하려는 시도가 많다.
현재의 해동검도는 진검 대나무, 짚단베기를 많이 하는 것으로도 죽도 위주의 검도와 비교우위를 내세우는데, 사실 해동검도 초창기의 베기는 형편없었다고 한다. 해동검도의 베기 기술이 좋아진 것은 대한도법협회의 이영식 씨와 교류하면서 이영식 씨로부터 베기를 배운 제자들이 해동검도에 합류하면서부터다.
이영식 씨는 진검 베기를 추구해서 검도계의 원로들로부터 검술을 배우고 나카무라 다이사부로의 책을 독학으로 연구하다, 결국 나카무라 다이사부로와 직접 만나고 초빙해와서 배우는 등 베기술 쪽으로 연구가 깊은, 한국 검도계에서 보자면 매우 기이한 경력의 인물이다. 그래서 이영식씨의 베기 기법은 호산류와 나카무라류 발도도를 원류로 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영식 씨로부터 배운 노대래, 김은정 씨 등의 해동도법검도회나 싸우라비도법연구소 쪽 사람들이 해동검도에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해동검도의 짚단베기가 일본식 시참, 타메시기리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나카무라 다이사부로라는 인물은 2차대전때 중국에서 일본 토야마 육군병학교의 군도 사용법을 기반으로한 거합도, 즉 후대에 토야마류(戸山流)라고 불리는 것을 가르치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격하게 말하자면 토야마류는 2차대전때 난징대학살 하던 왜놈 검술이고[15] 나카무라 다이사부로는 중국 민간인을 시참하면서 자신의 토야마류의 실전베기 기법을 닦아 나카무라류 팔방베기 발도도(中村流八方切り抜刀道)를 창시했다. 한반도 전통 검도를 자칭하는 해동검도가 대일본제국시대 검술의 정수랄수 있는 토야마류, 나카무라류의 진검베기술을 충실히 흡수한 셈이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현재는 거합을 배워 포함시키거나, 아주 일부이지만 프랑스에서 지팡이술인 깐느를 배워온 경우도 있고, 스포츠 찬바라를 도입하거나 나카무라류의 방계인 발도도 용성검 등과 교류하기도 한다. 그외 여기저기서 다양한 무술들을 참고해서 부족한 컨텐츠와 검리의 보완에 매진하는 듯. 제대로 운동하려고 한다니 긍정적이긴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초기 해동의 컨텐츠 자체가 부실했다는 반증인 셈이다(...).
4.4 검도와 해동검도의 차이점
해동검도의 수련 항목에서 보다시피, 검도와 해동검도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름에 검도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검도는 무술의 갈래라기보다 그 단어 자체가 하나의 스포츠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으므로 해동검도를 검도에 포함시키기는 힘들다. 그냥 해동검도는 해동검도, 검도는 검도. 각각 별개의 무도 스포츠로 받아들이는게 바람직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검도를 해동검도와 구분해서 이야기 할 때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단체명에서 따와서 '대한검도'라고 부른다. 대한검도 측에서는 검도라는 단어 자체가 고유명사라고 주장하는데, 그 주장에 따르면 일본에는 검도 이외에도 도도(刀道), 거합도 등 검술을 중심으로 하는 무술이 많고 고류검술도 아직 남아 있는 실정인데 검도가 보통명사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단정적으로 말하기 힘든 것이,검도 항목에서 보듯이 검도라는 단어 자체는 한자문화권의 공통된 표현이고, 고유명사였다가 보통명사가 된 사례들은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근거로 든 일본과는 달리 국내에서 검도라는 단어가 이미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원에서 검도라는 단어를 독점적인 고유명사로 보기 힘들다고 판결을 내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어도 대한민국 한정으로는 검도라는 단어가 반드시 고유명사라고만 단정하기는 힘들다고 봐야 할 것이다.
4.5 정통성 논쟁
대한검도회 검도 수련인들이 매우 싫어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해동검도가 대외적으로 고구려 타령 하면서 사기를 친다는 것이 그 이유. 그런 대한검도회도 역사왜곡 쩌는 곳이라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건 함정.
역으로 해동검도 측에서도 대한검도회를 일본 검술, 왜놈 검술이라고 공격하며 자신들이 전통 무술 행세를 하기 때문에 마찰이 끊이질 않는다.
민족 감정에 호소하는 해동검도의 대단한 마케팅 때문에 대한검도회가 그 세력을 많이 잃어버리고 체육관 수입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초딩을 많이 빼앗겼다고 한다. 초딩은 상상 이상으로 수입을 많이 안겨주는데, 도복과 목검 등의 기초 장비부터 해서 매달 꼬박꼬박 수련비를 내고, 승급심사를 볼 때마다 추가로 수입을 안겨주는 꿀단지(?) 같은 존재다. 태권도장이 동네 곳곳에 있는것도 이런 원리. 사실 이렇게 시장을 빼앗겼기 때문에 대한검도가 해동검도를 곱지 않게 보는 것일지도. 그러나 대한검도는 아저씨, 아줌마로 이루어진 중년층이 압도적으로 많기에 그리 신경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점이 깨져서...
하지만 위에서 말했다시피, 해동검도의 역사는 이미 법정에서 증명이 완료되었다. 현대에 만들어진 창작 무술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통 무술이라고 주장하기는 곤란하다. 처음부터 신흥 무술이라고 주장했다면 모를까.
애초에 정말로 저들이 주장하는대로 고구려의 검술을 복원해낸 것이라면 카타나를 사용하는데에 큰 의문을 가져야 한다. 정말로 해동검도가 고구려의 검술이라면 카타나를 사용지 않고 환두대도를 써야 함이 옳다. 왜냐하면 환두대도와 카타나는 패용 방식부터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발도법이 다르고, 검의 모양부터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검 파지법 또한 완전히 다르다. 거기에 수련복도 일본의 하카마에서 따온 것은 덤.
4.6 실전성 논쟁
최소한의 제대로된 대련방법 체계도 잡혀있지 않는 해동검도이기 때문에 실전성에 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해동검도는 검도가 죽도 검술이고 베기에 쓸모가 없으니 실전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검도는 제정 거합과 같이 수련하도록 권하고 있어서 원래 그정도는 아닌데, 대한검도회에서는 거합도를 왜색이 짙다고 금하는 바람에…
물론 진검대결의 벌어질 경우 누가 이기는지 알 수 없다. 법적인 문제는 둘째치고 목검이나 죽도를 사용하는 대련과 실전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띄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검이나 죽도 대결의 경우, 해동검도의 수련자는 거리 조절 감각자체가 잡혀 있지 않기에 상대방에게 십중팔구 두들겨 맞게 될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오랜기간 갈고 닦고 내려온 대련체계의 부재 때문이다. [16]
심지어 전통도 없고 창시자가 현대인이라 실전 경험 따위는 있을 수가 없으니, 무술이 아니라 그저 칼춤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현재는 폐간된 무술전문 잡지인 마르스는 2002년 7/8월 호에 의하면 해동검도는 몸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지 않고 팔만 움직이며 엉덩이는 뒤로 빠지게 되는 즉, 어린 아이들이 칼싸움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17]
해동검도 도장에 견학을 가보면 알 수 있겠지만 대부분이 BB탄총 준다고 해서 온 초, 중학생인데다가 칼은 든 상태에서의 구르기, 주먹질 등을 가르친다. 자기네들은 칼이 없을 때도 싸울 수 있다고 실전성이 좋다고 하지만 대부분 초등학생 해동 유단자 검 실력의 깊이는 스포츠 찬바라만도 못하다. 다만 일부 학생들이나 성인관원들은 칼 쓰는 실력을 보여주긴 하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교육 자체가 돈벌이가 되는 어린 친구들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본인이 따로 노력하지 않으면(개인연습 혹은 사범이나 관장을 귀찮게 하기)정규 운동시간만으로는 좋은 실력을 갖추기 힘들다. 타 무술 도장들도 잘하려면 따로 노력이 필요한게 사실이지만 해동검도와 태권도는 그게 더 심한편.[18]
검도를 까느라 혈안이 되었던 해동이 검도vs해동 삼대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5 관련 사건
2000년 7월 1일 10시 10분, 서울시 마포구 성산2동에서 술에 취한 해동검도 사범(박모씨, 21, 해동검도 4단)이 부인과 통화를 하면서 욕설을 하던 행인 이모씨(41)가 자신을 욕하는 줄 알고 진검을 휘둘러서 이모씨의 팔을 잘라버린 (정확히는 오른쪽 손목과 왼팔을 자르고 머리와 복부에 20cm가량의 상처를 입힘.) 사건이 있었다. 이후 박모씨는 해외로 도주하려다가 9일 경찰에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되었다. 워낙 임팩트가 컸던 사건이라 일명 '해동검도 월아천충사건' 이라고 불리면서 해동검도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혔다. 부부싸움하다가 팔잘린 이모씨 지못미...
이 사건에는 애프터 스토리가 있는데, 검도사범 박모씨는 평소부터 자기과시욕과 피해망상이 심각하여 평소에 자동차에 진검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주변에 벨만한 것이 있으면 아무거나 베고다닌다고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결국 정신병으로 판결났고, 팔을 절단당한 이모씨의 부인과 합의금으로 합의를 보았는데, 그 부인은 합의금을 받자마자 잠적했다고 한다.
이모씨는 팔의 봉합수술까지는 했는데 신경이 전부 죽었고, 그게 다시 썩어들어가서 결국 다시 절단했다고 한다.
양팔을 절단당하고도 합의금으로 합의를 보려 한 이유는 이모씨의 생계가 매우 안좋았기 때문인데, 아내가 합의금 갖고 도망간데다 자식 둘을 혼자 키워야하니 참으로 안습.
그리고 2010년 1월 9일, 한 해동검도계열 관장이 자신의 여제자가 남자친구와 교제하다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 남자를 도장으로 불러 훈계를 하다 진검을 뽑아 배를 찌르고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참고로 여제자와 남친은 둘다 당시 17세 미성년자였다.
2010년 3월 18일, 한국해동검도협회의 수장인 나한일은 불법 대출과 자금 횡령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나한일은 6월 16일 5억원 갈취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2015년 5월 법원은 5억원을 갈취한 나한일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관련기사
이런 난리들이 잇따라 벌어지는 바람에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해동검도의 이미지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사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해동검도 측도 책임이 없다고 할수 없는게,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아무나 도장차리게 해주었기 때문에 칼가지고 다니다 사람 팔자르고 홧김에 처음보는 아이의 배나 찌르는 정신병자 혹은 정신수양 덜된 사람들이 관장이랍시고 아이들을 가르치다 저런 사단을 냈기 때문이다. 난립하던 협회가 교통정리되면서 이런 부조리는 정리가 조금씩 되어가지만 엎질러진 물은 어찌할런지.
2013년 6월 28일 해동검도 수련자가 진검을 들고 시민을 추격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다행이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해동검도 수련자의 진검으로 인한 공격사고라는 점에서 저번 사건과 유사한 점이 있다
관련: 격투기 무술 관련 정보- ↑ 세계해동검도에서의 정식명칭이지만 해외에선 haedong kumdo 쪽이 더 널리쓰인다.
- ↑ 당연히 역사적 근거가 없다. 사무랑은 싸울아비와 마찬가지로 현대에 만들어진 조어에 불과하다.
- ↑ 나한일과 김정호가 벌이던 이권다툼이 법정 싸움으로까지 번지면서 결국 해동검도가 자신들의 창작물이었음을 다 폭로하였다.
- ↑ 이러한 사실을 한국어 위키백과 항목에서도 기술하고 있지만 해당 문서에서 가끔 반달리즘이 일어나기도 한다.
- ↑ 이무렵은 김정호와 떨어져있던 상태
- ↑ 김정호는 나한일에 앞서 기천문에 입문한 상태였다.
- ↑ 항목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바로 그 한국의 라스푸틴이라 불리는 바로 그 인간이다!
- ↑ 두 단체가 가장 큰데 세계해동검도가 부조리가 일찍 정리된 편이고 운영과 관리가 좀 더 나은 관계로 교통정리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 단체의 힘을 위해 주먹구구식 확장을 하거나 단체내외부의 알력다툼이라던가
- ↑ 나한일 구속
- ↑ 다만 이는 다른 무술도장들도 마찬가지로써, 체육관 사업자체가 사양길이다
- ↑ 도장에 따라서 미성년자는 유단자 승급심사 및 승단심사 때에 테니스공이나 탁구공(시범시에는 가검으로도 베어지는 사과를 쓰기도 한다) 등을 던져 가검으로 베기도 한다. 이 바리에이션 또한 도장마다 달라서 공을 던진 후 두 발 나가면서 검을 뽑고 낮은자세로 사선베거나 제자리에서 공을 던진 후 횡으로 발도하며 베는 등 난이도나 베는 방식 등이 다양하다. 움직이는 물체를 베는 만큼 난이도가 있는 편이나 대나무베기나 짚단베기에 비해 접근성은 좋다. 일단 고가의 장비+살상위험이 있는 진검을 쓰지 않아도 되고.
- ↑ 일본 검도의 호구가 아니라 좀 기묘한 신소재 호구를 개발했는데 디자인이 참 묘하다. 어찌보면 전통을 살린 멋이 있는듯도 하고 또 어찌보면 병맛이 흐른다. 보는 사람이 판단하자.
- ↑ 더 큰문제는 이 호구 문제조차도 협회마다 제각각이라는 것. 일본검도 호구를 그대로 사용하는 도장도 있다.
- ↑ 이는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이, 본격적인 보급은 1940년대 부터 이루어졌다. 자세한건 토야마류 문서 참조.
- ↑ 칼은 잘쓰는데 왜 싸우질 못하니...
- ↑ 과장된 내용일 가능성이 높은게 실제 수련을 봐도 그렇고 상식적으로 검을 쓰는데 보법이나 무게중심 이동의 비중이 큰 편이라 수련생들이 모두 바보가 아닌 이상 저렇게 될 수는 없다. 가르치는 사람이 애들 칼싸움을 가르쳐도 배우는 사람이 상식이 있다면 결과물이 그렇게 될리가 없다는 이야기. 더군다나 해동검도 초기 관장들 다수가 다른 무술들과도 인연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칠 리도 없다.
- ↑ 다만 모든 도장이 그렇지않다는것은 숙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