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무협소설 군림천하에서 등장하는 검초, 진산월이 가진 최강의 절학이다. 필살기
2 시작/곽일산
군림천하를 겉핡기로 읽은 사람들은 진산월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만든 무공으로 오해하고 있는데[1][2] 결론적으로 검정중원은 진산월 혼자서 만든 무공이 아니다.[3][4]
검정중원의 시발점이 된것은 유운검법의 창립자인 종남파 7대 장문인 풍운무적검 곽일산이다.[5]실제로 곽일산은 당시 유운검법을 창시한 이후 이를 종남파 제자들앞에서 선보였는데, 끝임없이 변화무쌍하는 유운검법의 18초식에 제자들 모두 넋을 잃고 말 정도였다.[6] 유운검법을 제자들 앞에 선보인후 곽일산은 이 유운검법 18초를 단숨에 관통할 수 있다면 능히 검으로 중원무림을 평정할수 있다고 선언하였다[7]
그후 곽일산은 자신의 유운검법이 아직 미진하다는 것을 깨닫고 은거하여 자신이 언급한 유운검법 18초를 단숨에 관통할 검결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검의 기재이자 평생 검도에 헌신한 그조차도 유운검법을 일통하는 미완성의 검초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3 발전/정립병
이후 종남파는 11대 장문인 유백석[8]에 의해 천하에 다시 없을 5명의 기재 종남오선을 배출하면서 천하제일문파로 불리게 된다.[9][10]
종남파가 천하제일문파로 중원무림을 내려다보는가운데 종남파의 천하제일문파로서의 전성기가 종결된 시발점이 발생하였다. 검객으로서 경쟁하던 종남오선중 천하제일고수로 자타가 인정하는 검선 매종도와 그의 경쟁자이자 같은 종남오선인 혈선 정립병이 결국 비선 조심향과의 삼각관계가 기폭선이되면서 격돌하게 된것이다. 정확히 80초만에 혈선 정립병이 매종도에게 왼쪽 가슴을 검에 찔리면서 패배하게 되고 혈선 정립병은 그후 몇달간 검을 놓고 폐인이 되었다.[11][12] 하지만 자신에게 남은 길은 매종도를 꺾는것임을 자각[13][14], 다시 검술을 연마하며서 검선을 꺾을 절학을 창립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얼굴을 복면으로복면가왕 가린채 비무행을 떠나게 된다[15][16] 그후 이대로 비무행을 지속해도 검선을 꺾을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면서 검선과 재결투하기 위해 종남산으로 귀환하였지만 종남파는 혼란속에 빠져있었으니 훨씬 예전에 검선도 행방불명된 상태이며 심지어 같은 종남오선인 소선 우일기와 비선 조심향조차도 실종된 상태였다. 종남오선중 4선이 한꺼번에 실종되면서 종남파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 상태였고 이를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정립병은 허탈감속에 종남산으로 귀환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돌아가던 도중 잠시 누관의 경치를 보고 가려고 들렸던 중봉 정상에서 종남파 선대 고수 곽일산이 남긴 유진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정립병 또한 곽일산과 같은 행로를 밟으며 미완성의 유운검결의 마지막 부분[17]을 연구한다.[18][19][20]
4 완성/진산월
그후 기나긴 세월이 흘러 200년 이후 진산월이 두명의 기재 곽일산과 정립병이 연구해 놓은 수백 수천가지의 연구 성과들을 중봉 석실에서 발견해 3년동안 미완성 상태의 유운검결을 정리/완성해낸것이 바로 검정중원이다. 무엇보다도 검정중원이란 이름 자체도 곽일산이 남긴 미완성 유운검결의 마지막 유언인 검으로 중원을 평정해줄 것을 당부한 말에서 따온것이다
하지만 진산월에 의하면 아직도 미진한 구석이 남아있으며 추가로 보충이 더 필요하다고 언급된다.군림천하 아직 안끝났다 갈길이 멀기만 하다
5 결론
누차 강조하는데 실제로 검정중원은 결코 진산월 혼자서 이루어 낸것이 아님이 작중묘사됨에도 진산월보고 금수저라는 무작정 까들이 난립하는 상황이다.[21][22] 종남파의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더냐[23] 태을검선 이전 종남파 사상 최고의 고수 곽일산[24][25] + 종남파 최고의 기재 종남오선이자 천하제일고수 매종도가 인정한 경쟁자[26] 혈선 정립병이란 두명의 검의 천재들이 연구했음에도 끝내 완성하지 못했으며 진산월이 이후 검결을 완성헀지만 아직도 검정중원은 부족하기만 할 뿐이다.
여담으로 진산월이 배운 유운검법은 기존 종남파에 있던 유운검법이 아닌 곽일산이 유운검법 18초를 관통할 검초를 연마하면서 많은 부분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27][28]
6 그외
검정중원의 뼈대는 유운검법이지만 실제 검정중원의 밑바탕에는 유운검법외에 선대의 절대고수 곽일산과 정립병에 연구한 셀수도 없이 많은 무공들의 초식들이 자양분임이 묘사되고 있다.[29]
검정중원이 수백 수천의 검초를 정립볍 본인이 를 일일이 연구하여 대상이 공격하고 방어할 것까지 모두 계산하여 그 모든 방위를 차단하고 뚫어낼 수 있도록 주변 전체를 장악하는 수많은 초식들을 단 한초에 모두 연결하여 시전하는 기술이라면 [30]
아마 매종도가 남겼다고 여겨지는 취와미인상의 절초는 깊은 깨달음이 담긴 현기 실린 공격으로 상대가 절대로 못막고 못피할 한방을 날리는 것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검정중원이 절진을 펴서 상대가 빠져나갈 모든 방위를 포위한다음 총을 난사하는 것이라면, 취와미인상은 최첨단 레이더와 감지장치가 장착된 유도탄을 발사하는 것이다.
6.1 아직도 미흡한 이유
검정중원이 만들어 지는과정에서 곽일산[31]/정립병[32]/진산월[33]이란 3명의 검의 기재들이 관여했음에도 아직도 미흡한 상태이다.
- 우선 검정중원의 근간인 유운검법 자체가 천하에서 가장 변화가 많고 익히기힘든 검법중 하나이다.
시작부터 고행난이도[34][35]
- 게다가 검정중원은 그 변화무쌍한 유운검법 18초식을 관통하는 하나의 초식이다.[36]
- 3년간 완성했다곤 하나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37]그럼에도 진산월은 중봉석실에서 나와 무림행도를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원래 목적이 검정중원의 완성이 아닌 유운검결의 완성이었기 때문이다. 검정중원은 유운검법 18초를 관통하는 유운검결을 완성한 결과 나온 것일 뿐이며 그렇기에 아직도 보완할 부분이 많은 것이다. 실제로 5성도 안된 낙일방의 구반장법을 상대로 대련하면서 우랑장의에 이은 천손직금의 연계기로 용영검을 놓칠뻔했으며 그때 비로소 검정중원이 아직 보완할 구석이 많음을 절실히 깨달았고 종남파 무공의 근간인 권법과 장법에 대해서 소홀히 했음을 실감하였다.
↑ 무적의 검학을 3년만에 만든 희대의 무공기재로 알고있다. 하지만 진산월은 무공에 대한 안목이 탁월한 것은 자주 기술되나 기재로 불리진 않았다. 오히려 임영옥이 종남파 최고의 기재로 묘사된편.
↑ 정확히는 임영옥이 눈에 띄는 기재쪽이라면 진산월은 드러나지 않는 기재다. 실제로 누구도 기재라 하진 않았으나 모용봉만은 제대로 된 무공만 익힐 수 있다면 자신의 호적수가 될 수 있다고 봤다.
↑ 진산월이 3년 만에 만들었다는 오해와 달리 검정중원의 개념 형성은매우 오래되었다. 단순히 계산해봐도 400년이다진산월에게 정립병은 200년 전 인물, 곽일산은 정립병에게 200년 전 인물
↑ 사실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게 진산월은 명문정파인 종남파 소속이므로 어떤 무공을 만든다고 한다면 종남파의 무공을 기반에 두고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 단, 검정중원은 엄밀히 말하면 진산월이 창시한 것이 맞다. 예로 든다면, 종남파의 천하삼십육검을 기반으로 누군가가 새로 천하칠십이검을 만들었다면 천하칠십이검의 창시자는 그 누군가지 천하삼십육검을 만든 이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 검정중원의 근간을 이루는것 또한 유운검법이며, 검정중원의 시작또한 곽일산이 선언한 변화무쌍한 유운검법 18초를 하나의 초식으로 관통해내는 초식이였다.
↑ 실제로 유언검법이 창시된지 몇백년이 지난 중원무림에서조차 유운검법은 천하에서 가장 변화가 많은 검법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
↑ 곽일산 또한 유운검법을 창시하면서 중원무림을 평정할 정도의 검초를 생각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
↑ 종남파 사상 최초로 육합귀진신공을 익힌 인물
↑ 유백석은 무공에 천부적인 기재라서 작중에서도 육합귀진신공의 완성과 무염십팔보가 탄생하는데 기여할정도이다.
↑ 무공도 무공이지만 장문인으로서 문파의 제자들을 키우는데 매우 뛰어나서 그의 지도아래 종남파 사상 최고의 고수들로 손꼽히는 종남오선이 탄생하여 종남파가 천하제일문파로 도약하는데 기반이 되었다.
↑ 어렸을때 첫결투는 당시 종남파 입문이 몇달 빨랐던 매종도가 승리했지만 이후로도 매종도와 정립병의 격차는 도저히 좁혀지지 않았다.
↑ 형산파의 5결검객 고진이 5결의 수좌인 조화신검 사견심의 존재로 인해 폐인이 된것과 유사
↑ 몇달간 폐인이 되었다가 비참해진 자신의 몰골에 충격을 받았다.
↑ 호탕하고 대범하여 많은 친우를 가진 혈선이 얼마나 좌절했는지 알수 있다.
↑ 종남오선의 신분으로서 자신의 목적을 위한다고 해서 차마 종남파에게까지 누를 끼칠수 없기 때문이었다.
↑ 결국 혈삼객으로 불리며 검선에 맞먹을 검객으로 유명해졌지만 본인은 명성을 떨치는 게 아닌 검선을 꺾는 무공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 유운검법 자체는 이미 곽일산이 연구를 마친것으로 보인다. 7권에서 곽일산이 검초를 연구하면서 기존의 유운검법을 수정-보완했었다고 언급된다. 정립병이 연구한것은 유운검법이 아닌 유운검법 18초를 일통하는 미완성의 검결이다.
↑ 선대고수의 유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곽일산이 남긴 유운검법 18초를 관통하는 검결을 완성하면 매종도를 능히 능가할수 있을것임을 확신했기 때문.
↑ 실제로 미완성의 검결에 불과한데도 기존의 상념을 송두리째 바꾼 검학이며 정립병이 원했던 매종도를 꺾을 검도의 궁극에 이른 단계였다고 묘사된다
↑ 어찌 보면 형산파 고진이 처한 상황과 상당히 비슷한 편이다.
↑ 특히 형산파 고진과 비교하면서 진산월을 금수저라고 하는데 이는 무작정 까에 불과하며 오히려 진정한 금수저는 고진이다.심지어 고진은 진산월과 달리 해당하는 검초가 소속문파의 무공이 맞는지 조차도 의심되는 상황이다
↑ 사실상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이렇게 길게 써놓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군림천하 초반부만 봤어도 절대 금수저라는 말이 안나올텐데.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진산월이 금수저였다면 왜 1권부터 검정중원을 만들어서 휩쓸고 다니지 않았을지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사실 종남파는 현재 군림천하가 30권까지 나왔지만 실제 문파로서 기능을 하게 된 것은 거의 15권 정도(초가보를 무너뜨린 이후)가 되고나서부터였다. 1권~7권까지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상황이었고 8~14권까지는 아예 문파 자체가 무너졌다가 간신히 다시 세운 것.
↑ 심지어 육합귀진신공이 창시되기 이전이다! 육합귀진신공을 완성해야 종남파 무공의 극의를 알수 있다는 검성 모용단죽의 언급으로 볼떄 곽일산은 단지 육합귀진신공이 없었기 때문에 천하제일고수가 되지 못한 가능성이 크다 육합귀진신공과는 별개로 곽일산은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천하제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이룬 검학을 본 정립병은 사상을 통두리채 바꾼 검학이라고 평했고 내공또한 육합귀진신공을 이룬 정립병보다 높았다.(정립령의 시신은 2백년 후에는 백골이 되있었지만 곽일산의 시신은 2백년 후에도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그러한 정황을 봤을때 정립병보다 높은 경지를 이뤘으며 정립병이 당시 매종도를 제외하면 누구보다 강했음을 생각하면 당대 천하제일은 곽일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모용단죽의 말은 현재의 종남파 무공을 얘기한 것이며, 당연한게 그 당시에는 육합귀진신공은 있지도 않았다. 있지도 않는 신공을 기반으로 하는 무공이 있을리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렇다면 육합귀진신공이 창시되기 몇백년 전부터 있지도 않는 육합귀진신공을 염두하고 무공을 정립, 발전시켰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육합귀진신공이 없어 곽일산이 천하제일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 매종도가 직접 언급. 정립병이 아직도 내가 너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냐고 따지자 부인하며 천하에서 자신의 상대가 될수 있는것은 오직 혈선 정립병 뿐임을 언급했다.하지만 그 혈선 조차도 불과 80초만에 깨진다. 넘사벽
↑ 실제로 하동원이 종남파에서 자신이 알던 유운검법을 기반으로 소지산이 펼친 유운검법의 허점을 공략하며 하다 크게 낭패를 당했다
↑ 소지산이 유운검법의 검초중 승룡와운을 사용했는데 하동원은 자신이 알고있는데로 소용돌이를 구성하는 검광의 한복판이 비어있음다고 여겨 검을 찔러넣었다가 돌연 튀어나온 세줄기의 검광에 혼비백산하였다함정카드 발동
↑ 이때문에 정립병이 미완성의 유운검결을 연구할때 혈삼객으로서 중원 구석구석까지 벌였던 비무행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묘사되었다.
↑ 그리고 말이되는게 유운검법은 군림천하 세계관에서는 천하에서 가장 변화가 많은 검법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검정중원은 유운검법의 정화를 단 1초에 관통하는 검초고 .
↑ 검에 대해선 매종도 이전 종남파 사상 최고의 고수
↑ 종남오선중 1인, 매종도가 천하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경쟁자라 할만한 상대는 정립병 혼자뿐임을 언급.~~매종도만 없으면 천하제일고수콩라인
↑ 내공이 부족해서 패한것이지 무공에 대한 안목은 나보살이라 불렸던 시절에서도 탁월했음을 소설전개에서 알 수 있다. 내공이 부족함에도 비무에서 여러번 승리를 할 정도
↑ 검법의 천재이며 진산월 이전 종남파 최고 고수였던 임영옥도 유운검봉은 단지 4개를 만들어내는 수준에서 그쳤다. 그이상 검봉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임독양맥이 타통되고 내공이 한갑자 이상이 되어야 했기 때문방화는 유운검법입문하기도 전에 좌절크리
↑ 유운검법을 창시해낸 곽일산조차도 말년에 이르러서야 16개의 검봉을 만들어 냈는데 중원무림에서 그 16개의 유운검봉을 제대로 받아내는 고수들조차 거의 없었다고 묘사된다
↑ 그나마도 곽일산과 정립병이 미완성의 유운검결에 대해 수십년씩 연구해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진산월은 이를 바탕으로 3년간 완성할 수 있었다
↑ 진산월조차도 검정중원의 미흡한 상태를 실감하며 사용을 꺼릴지경. 사용하지 않고선 이길 수 없는 상대였던 매장원과 양천해를 상대로만 사용했으며 이후 실력이 증가하자 복양수와의 일전에선 검정중원을 봉하고 다른 무공으로 상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