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조 덴노

일본의 역대 덴노
22대23대24대
세이네이 덴노겐조 덴노닌켄 덴노

일본서기에 의하면 456년 아버지 이치노헤노시하가 유랴쿠 덴노에게 살해당하자 그는 형 오시와 함께 도망쳤다고 한다. 유랴쿠 덴노는 형 안코 덴노가 사촌 이치노헤노시하에게 덴노의 자리를 멋대로 물려준다고 한 것을 원망한 나머지, 이치노헤노시하를 사냥터로 유인해 암살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암살당하는 난을 피해 두 황자는 단바 국 요사 군으로 도망친 후 하리마 국 아카시에 있는 시로 동굴 등에 숨어 살았다. 이때 이름을 다니와노와라와(丹波小子)로 바꾸고 그 지역의 창고 책임자인 시지미노미야케노 오비토를 섬기며 지냈다고 한다. 그러던 중 481년 11월, 니야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하여 자신이 황족임을 밝히는 노래를 불러 황자 신분을 되찾았다. 이듬해, 오시 황자는 후사가 없던 세이네이 천황에 의해 황태자로 봉해졌다.

484년에 세이네이 덴노가 사망하자, 형 오시 황자는 황족 신분을 밝히는 데 공이 있는 동생 겐조 덴노에게 황위를 양보했다. 겐조 덴노는 처음에 이를 사양했지만, 승낙하고 485년에 즉위했다. 겐조 덴노가 즉위한 뒤에도 오시 황자는 황태자로 남았다. 이로써 일본 역사상 덴노의 형이 황태자가 된 유일한 사례가 되었다. 한편 황위가 공석이 되었을 때, 한동안 이치노헤노시하의 황녀인 이토요노키요노 히메미코가 정권을 잡기도 했다.

고사기에 의하면, 겐조 덴노는 황위에 오른 뒤 아버지 이치노헤노시하의 묘소를 찾아 조문했으며, 황태자 오시 황자에게 아버지를 암살한 유랴쿠 덴노의 황릉을 훼손시킬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겐조 덴노는 외지에서 고된 생활을 한 탓에 민중을 위한 정치를 펼쳤다고 한다. 일본서기는 그가 즉위 3년 만인 487년에 사망했고,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형 오시 황자가 뒤를 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사망 시기에 관하여 고사기는 치세 8년 만인 38세에, 그리고 일대요기는 48세에 죽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