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참수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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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校生首切り殺人事件 혹은 サレジオ高校首切り事件.

1969년, 일본 카나가와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다니던 학생의 모교를 따서 サレジオ高校首切り事件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건의 범인 A군은 사건의 피해자 B군(통상 히로시라 불린다)와 그렇게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B군에게 중학생 시절부터 바보 취급을 받거나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사건 당일인 1969년 4월 23일, A군은 히로시에게 사전을 빼앗겼고 이후 A군은 히로시에게 산에 올라가자고 권한 뒤 히로시에게 이틀 전 훔친 나이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히로시는 나이프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넌 돼지 같아"라는 말을 했다. 이 말에 A군은 히로시에게 그동안 당한 것이 폭발해 히로시가 절벽을 바라보는 사이에 나이프로 히로시의 목을 찔렀다.

히로시가 돌아보자 A군은 더욱 히로시를 찔렀다. 10분 동안 목을 찔러 결국 잘라낸 뒤 목을 버리고 나이프는 근처의 흙속에 묻어버렸다. 그러고 나서 A군은 범인인것이 들킬까 무서워져서 자신의 어깨를 두 번 나이프로 찔러서 위장한 뒤, 차를 타고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을 세워 "3명의 불량배에게 습격당해 친구가 죽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4월 25일, A군은 아버지와 함께 경찰에 가서 진술을 했다. 그러나 A군의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의심한 경찰이 A군의 아버지가 돌아간 뒤에 이를 집중 추궁하자, 결국 히로시를 살해했다고 실토했다. 히로시를 찌른 횟수는 기억하지 못했다.

A군은 당시 만 16세 이상이었기 때문에 기소되어 살인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단 일본의 소년법에 따라 신원은 공개되지 않은 채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형기를 채워 석방되었다. 출옥 후 이름을 바꾸고 명문대에 진학해 저명한 변호사로 활약했다. A군의 부친과 히로시의 유족들은 매월 2만엔씩 35년 동안 720만엔을 보상금으로 지급하기로 합의서를 주고받았지만, A군의 부친은 고작 40만엔만을 준 뒤, 나머지는 주지 않고 버티다가 1998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한동한 묻혀있던 이 사건은 2006년, 사카키바라 사건을 통해 이 사건을 접하게 된 저널리스트 오쿠노 슈지에 의해 재조명되었다. 오쿠노 슈지가 저술한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는 논픽션임에도 불구하고 8만부가 팔릴 정도로 높은 판매고를 보였다. 그러나 책 내용은 논란이 있는데, 오쿠노 슈지는 히로시가 A군을 괴롭힌 것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고, 공정성을 잃은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쿠노 슈지의 책이 출간된 뒤, 2ch에서 이 사건의 범인을 추적해 결국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의 신원이 모두 까발려졌다. 오쿠노 슈지의 책에 의하면 히로시의 가족이 연락을 하자 그는 돈이 필요하느냐라며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후 그는 피해자의 가족에게 사죄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지불되지 않은 합의금을 지불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지만, 2008년 주간 분슌(週刊文春)이 추적해보니 그는 변호사를 폐업하고 잠적했다고 한다.

한국에는 오쿠노 슈지의 책이 번역 출간되어 이 사건이 알려졌고, 2010년 9월 12일 MBC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이 사건이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