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노에 덴노

(고노에 천황에서 넘어옴)
일본의 역대 덴노
75대76대77대
스토쿠 덴노코노에 덴노고시라카와 덴노

일본의 76대 덴노.

시라카와 덴노가 죽은 후 토바 덴노가 직접 국정을 다스리는 원정(院政)을 실시했는데, 그 당시의 덴노는 토바 상황과 후지와라노 다마코 사이에 태어난 제75대 스토쿠 덴노였다.

그런데 스토쿠 덴노가 실은 토바 덴노의 자식이 아니라, 시라카와 상황과 다이켄몬인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라는 풍문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도바 덴노가 스토쿠 덴노를 미워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1139년 8월, 도바 상황은 후지와라노 나리코에게서 태어난 나리히토 친왕을 생후 3개월 만에 황태자로 책봉하고, 2년 후인 1141년에는 스토쿠 덴노에게 양위를 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결국 스토쿠 덴노는 압력에 굴복해 나리히토 친왕을 양자로 삼아 양위를 했다. 이로써 불과 2살의 나이에 76대 나리히토 친왕은 코노에 덴노로 즉위하게 되었다.

스토쿠 덴노가 나리히토 친왕 코노에 덴노에게 양위할 때 내려진 선명에는 나리히토가 스토쿠 덴노의 황태자가 아닌 황태제, 즉 천황의 아들이 아닌 동생으로 되어 있었다. 결국 이 때문에 스토쿠 덴노가 양위 후에 상황으로서 원정을 할 수 있는 길이 막히게 되었다. 따라서 고노에 덴노의 재위에는 여전히 아버지 도바 상황에 의한 원정이 지속되었다.

코노에 덴노는 몸이 병약하여 15세 때에는 실명을 할뻔 하였는데, 1155년 7월, 17세의 이른 나이에 죽었다. 코노에 덴노에게는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이복형인 고시라카와 덴노가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그런데 형제간인 제77대 고시라카와 덴노와 제75대 스토쿠 덴노 사이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호겐의 난이 발생하게 되었다. 호겐의 난으로 고시라카와 덴노 편의 미나모토 가문과 스토쿠 덴노 편의 다이라 가문의 대결이 벌어졌는데, 이를 시작으로 이후 봉건 영주들, 즉 무사들 간의 오랜 전쟁이 벌어졌다.

결국 코노에 덴노의 이른 죽음은 호겐의 난의 원인으로 작용하였으며, 이로써 일본 역사상 중세의 서막이 열리게 되었다. 코노에 덴노의 능묘는 교토 시 후시미 구에 위치한 안락수원 남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