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鄒安
(? ~ ?)
165년, 명림답부가 차대왕의 폭정을 보다 못해 쿠데타를 일으켜 차대왕을 살해하자 겁을 집어먹고 산골짜기로 피신하였다.
이듬해인 166년, 차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신대왕이 대사면령을 내려서 전국의 죄인들을 용서해주기로 하였는데 그때서야 다시 나타나서 목숨을 살려달라고 빌었다.[1]
이에 신대왕으로부터 구산뢰(狗山瀨) 및 노두곡(盧豆谷)을 하사받고 양국군(讓國君)에 봉하여지는 등 환대를 받았다. 그 이후로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2]
어쩌면 신대왕으로서는 비록 폭군이라고 하더라도 차대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차지한 셈이니 뒤가 구렸을 텐데 때마침 차대왕의 아들이 나타나 자신에게 의탁하려 한다는 점을 정치적인 이유로 이용했을 수도 있다. 물론 꼭 그렇다는 보장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