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dth=50 고구려의 역대 국왕 | ||||
6대 태조대왕 고궁 | ← | 7대 차대왕 고수성 | → | 8대 신대왕 고백고 |
시호 | 차대왕(次大王) | |
성 | 고(高) | |
휘 | 수성(遂成) | |
생몰년도 | 음력 | 71년 ~ 165년 10월 (95세) |
재위기간 | 음력 | 146년 12월 ~ 165년 10월 (18년 10개월) |
1 소개
《삼국사기》에서는 태조대왕의 동생, 《후한서》에서는 태조대왕의 장남으로 기록되어 있다. 연대상으로는 한서 측 의견이 더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사실 태조대왕의 연대가 불확실해서 차대왕이 태조대왕과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결론을 내리기 애매한 상황이다.
이름 자체가 태조대왕 다음 대의 왕이란 뜻이다. 태조대왕이 얼마나 오래 재위했으면 그 그림자가 이렇게 남아있는가 싶다.
삼국사기 태조대왕 기사 초반을 읽어 보면 동생 백고(신대왕)이 "님 사냥 좀 그만하삼"이라고 고언하는 데도 "내가 즐길 만하니 즐긴다는데 무슨 상관임"하는 니트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부하들을 모아서 "한번 엎자"고 선동하거나 뒤에 서술할 활약상을 볼 때 놀고먹기만 하는 허당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나 즉위 후 앞서 고언한 우보 고복장은 끔살당하고[1], 목도루는 벼슬이고 뭐고 다 내팽겨치고 튀었다... 교과서에서는 단순히 "고구려가 5세기 전에는 그렇게 잘나가는 편이 아니었음"이라고 되어 있지만. 꼼꼼히 읽어 보면 다 이런 막장 상황이 바탕이 되었으니 그랬던 거다.
2 내정
차대왕은 태조대왕 말기, 장군으로 활약해 요동, 어양, 우북평, 상곡 등을 활발히 공격하여 한나라에 악명을 떨첬다.
次大王諱遂成 太祖大王同母弟也 勇壯有威嚴 小仁慈 受太 祖大王推讓 卽位 時年七十六차대왕(次大王)의 이름은 수성이고 태조대왕의 친동생이다. 용감하고 굳세며 위엄이 있었으나 인자함이 적었다. 태조대왕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그 때 나이가 76세였다.
차대왕은 76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는데, 이는 태조대왕을 핍박하여 밀어낸 이유로 주로 설명이 된다. 조선상고사에선 왕자 고수성이 수많은 공적으로 병권을 쥐었고 최고의 관직인 '신가'에까지 올랐다고 했으나, 그 야욕이 크고 커 결국 태조대왕이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고 한다.
《삼국사기》나 기타 사서에서도 유사한 행적이 나타나는데, 《삼국사기》에선 아예 이후 태조대왕의 아들들을 자신의 권력에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 느껴 살해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二年 春二月 拜貫那沛者彌儒爲左輔 三月 誅右輔高福章2년(147) 봄 2월에 관나 패자 미유를 좌보로 삼았다. 3월에 우보 고복장을 죽였다.
三年 夏四月 王使人殺太 祖大王元子莫勤 其弟莫德恐禍連及 自縊3년(148) 여름 4월에 왕은 사람을 시켜 태조대왕의 맏아들 막근(莫勤)을 죽였다. 그 아우 막덕(莫德)은 화가 연이어 미칠까 두려워 스스로 목을 메었다. - 《삼국사기》차대왕 본기
차대왕은 《삼국사기》에 따르면, 즉위 후에는 별다른 정복 사업을 벌이지 않은 듯 하며, 그의 왕위계승을 반대하는 고복장과 조카 막근을 죽이고 동생인 백고[2]를 견제하는 등 왕권강화에 주력했다고 한다. 또한 멋대로 신하들을 죽이고 세금을 가혹하게 걷었으며, 더군다나 천재지변도 끊이지 않아 신망을 잃는다.
결국 이에 참지 못한 조정 관료들이 명림답부를 중심으로 일으킨 쿠데타로 인해 비명횡사. 그런데 죽었다는 나이가 무려 95세니 제명에 못 죽었다고 하기엔 좀 거시기하다[3] 이후 신대왕이 왕위를 잇는다.
2.1 의문점
먼저 재위기간에서 의문점이 생긴다. 《후한서》에 따르면 121년 궁(宮=태조왕)이 사망하고 수성(遂成=차대왕)이 뒤를 이었는데 아들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를 궁의 사자(嗣子=대를 잇는 아들)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삼국사기에서 태조왕이 146년에 양위하고 이후 165년에 사망한 것과 충돌한다.
《삼국사기》 상에는 태조왕, 신대왕과 형제관계로 모두 재사의 아들들로 기록되어 있지만 각각 25년과 18년의 나이차이가 나는데 이걸로 보아 이들의 수명은 후대의 조작일 가능성이 높으며, 정말로 형제관계인지 알 수 없다.
기록의 정확성은 당대기록인 후한서가 맞는 내용으로 보이고 김부식이 연도를 잘 못 쓰거나 착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3 삼국사기 기록
一年冬十二月 차대왕이 즉위하다
二年春二月 관내부 미유를 좌보에 임명하다
二年春三月 우보 고복장을 죽이다
二年秋七月 어지류를 좌보에 임명하다
二年冬十月 양신을 중외대부에 임명하다
二年冬十一月 지진이 일어나다
三年夏四月 태조왕의 장자를 죽이다
三年秋七月 무당을 죽이다
四年夏四月 일식이 일어나다
四年夏五月 점치는 사람이 점괘를 거짓 보고하다
四年冬十二月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다
八年夏六月 서리가 내리다
八年冬十二月 지진이 일어나다
十三年春二月 혜성이 북쪽에 나타나다
十三年夏五月 일식이 일어나다
二十年春一月 일식이 일어나다
二十年春三月 태조왕이 붕어하다
二十年冬十月 명림답부가 차대왕을 시해하다
4 대중문화에서의 차대왕
과학소설(SF) 작가 김보영의 진화신화에서 대표적 빌런으로 등장한다. 용불용설(...)을 차용한 작품.
다음 웹툰 위나암림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웹툰의 내용은 맥베스의 기본 스토리 얼개를 배경만 고구려로 바꾸고 거의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데[4], 그래서인지 차대왕이 태조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것으로 나온다. 태조왕이 너무 오래 살아서 동생인 차대왕이 갈등 끝에 결국 자신의 야심을 참지 못하고 태조왕을 손수 찔러죽이는, 그러면서도 죄책감에 몸서리치며 더더욱 광기를 내뿜는 등의 장면에서 드러나는 차대왕의 심리묘사가 인상적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차대왕(수성)이 태조대왕을 살해하고 왕위 찬탈 음모를 꾸미는 것으로 나오긴 하나 실제로 실천에 옮기지는 않는다. 태조대왕이 "내가 나이가 들어서"라는 이유를 시작으로 상왕으로 물러나는 데서 마무리되는데... 모르긴 몰라도 안 물러났으면 죽였을 것 같기도 하다...
허나 어째 고구려 왕이 칭제를 한다든지, 고조선 시대부터 내려왔다는 천부인을 고구려 왕인 차대왕이 즉위식에 건네받는다는지 하는 내용을 보면 뭔가 환빠스럽다(...).- ↑ 차대왕의 야욕을 알고 태조왕에게 차대왕을 제거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아들들이 죽게 될거라고 간언했지만 태조왕이 공이 많다는 이유로 내버려 뒀는데 진짜 그렇게 되었다.
- ↑ 차대왕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신대왕을 참조
- ↑ 태조대왕의 장수 기록이 워낙 쩔어줘서 그렇지(...) 이 인간도 만만치 않다. 신대왕과 더불어 소위 장수형제로 취급되는 세 왕 중에서 유일하게 제 명에 못 죽은 케이스인데, 현대 기준으로도 충분히 오래 살았다(...).
당장 근처에 자연사한 폭군 2대와 비교해봐도 - ↑ 초반부에 귀신이 왕이 되기 전의 수성(차대왕)에게 예언을 내리는 것도 맥베스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