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옥환숙

곡옥의 군주
곡옥 신설1대
곡옥환숙(曲沃桓叔) 희성사(姬成師)
2대 곡옥장백(曲沃莊伯) 희선(姬鱓)
(姬)
진(晉)
칭(稱)
아버지진목후 희비왕(姬費王)
생몰기간음력기원전 802년 ~ 기원전 731년
재위기간음력기원전 744년 ~ 기원전 731년

1 개요

본명은 희성사(姬成師).[1] 시호는 환이다. 곡옥 땅의 백작. 그는 진후였던 형 진문후의 동생이며, 그 뒤를 이은 진소후의 숙부였기 때문에 곡옥환숙이라 불리는 것이다. 진목후아들.

2 곡옥백으로서

진소후 원년인 기원전 745년 진소후는 진문후가 죽고 진후가 되었는데, 희성사의 세력이 강성했기 때문에 그를 두려워한 진소후는 희성사를 곡옥의 백작에 봉했다. 그 때 희성사의 나이는 58세였다. 곡옥의 백작이 된지 약 5년 후인 기원전 739년 진의 대신 반보가 진소후를 시해하고 곡옥환숙을 맞아들이려고 했다. 곡옥환숙 또한 진소후가 죽은 틈을 타서 을 먹으려고 했다. 그러나 진나라 사람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내쫓아버렸다. 그리고 진나라 사람들이 진소후의 아들인 희평(姬平)을 진후로 모시니 그가 바로 진효후다. 기원전 731년 곡옥환숙은 죽었다.

3 후일담과 가정사

곡옥환숙이 죽은 뒤 그 아들 희선이 곡옥의 백작이 되니 그가 바로 곡옥장백이다. 그리고 곡옥장백도 진나라를 적극적으로 차지하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희선의 아들 희칭(姬稱), 즉 곡옥무공진후민을 죽이고 주나라의 재가를 진무공을 칭했다. 그리고 한나라의 시조로 알려진 한무자는 이 곡옥환숙의 손자다.
  1. 이름에 이룰 성자가 들어가는 희성사는 형인 진문후의 이름인 희구(姬仇)는 별로 좋지 않은 뜻이기 때문에 진나라 본국이 곡옥백작인 희성사에게 먹힌다는 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