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빈 김씨

1 소개

선조의 첫번째 후궁이자 광해군임해군의 생모.

2 생애

2.1 선조의 후궁

야사에는 소주방 나인이었다가 선조의 승은을 입었다고 한다.명종비 인순왕후는 당시 명종의 상중이었고 의인왕후와 혼인한지 얼마되지않아 의인왕후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어서 선조가 궁녀를 가까이하지않길 바랬다고 한다. 당시 아들은 커녕 딸조차 귀한 조선 왕실에서 장남 임해군과 차남 광해군을 낳은 김씨는 빈이 되었고 위세가 높았다. 중전 의인왕후 박씨를 제치고 선조의 총애를 독차지했으나, 김씨는 광해군을 낳은지 2년만에 산후병에 걸려 사망했다.

2.2 사후

죽어서도 선조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싶었던 공빈은 죽기 전에 " 제가 아픈건 다른 후궁들의 저주 때문입니다 " 라고 선조에게 말했다. 실제로 선조는 그걸 믿고 다른 후궁들에게 모질게 대했지만, 이후 소용 김씨가 선조의 총애를 받게 되어 인빈으로 책봉되었다. 인빈 김씨는 왕에게 공빈의 허물을 자주 들춰내었고, 선조는 공빈을 잊고 인빈을 총애하게 되어 의안군, 신성군, 정원군을 포함한 여러 자녀를 낳았다. 또한 선조는 공빈 김씨가 죽은지 3년만에 간택 후궁 숙의를 세 명을 들였고 그녀들은 나중에 빈이 되었다.

2.2.1 광해군 즉위 후

광해군이 즉위한 후 공성왕후로 추존되었으나 정원군 이부의 아들인 능양군 이종이 일으킨 인조반정으로 인해 광해군이 폐위되자 다시 후궁으로 강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