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해군

臨海君
1572년 9월 20일 ~ 1609년 6월 3일

1 개요

왕자판 연산군.[1]

조선왕자이자 선조의 서장자이다. 남동생들인 정원군, 순화군과 더불어 선조의 아들들 중 개막장으로 유명하다.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태롭던 시기에 세자가 되지 못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선 전기 양녕대군도 저리 가라 할 수준으로[2] 막장이 극에 달했다.

2 생애

이 성격 개차반의 예를 보여주는 사건이 전란 중 남동생 순화군함경도로 떠나[3] 병력을 모으는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국경인(鞠景仁)과 국세필(鞠世弼)이 왜군가토 기요마사와 내통해 임해군과 순화군을 왜군에게 넘겨버렸다.

이후 포로협상으로 풀려나지만 안 그래도 막장이었던 성격이 포로 생활 동안 겪은 일 때문인지 더더욱 막장이 되어버려서[4] 민가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등 엄청나게 깽판을 치고 다녔다. 일단 확인되는 범죄 행위들만 따져도 구타, 강도, 권력을 이용한 재산강탈은 기본에 공물약탈, 심지어는 첩실을 빼앗기 위해 강도로 위장해 도승지 유희서[5]를 살해하기까지 했다. 이때 선조는 그래도 자기 아들이라고 감싸고 돌았다. 형제의 우애도 나빴으니, 동복동생인 광해군 때문에 자기가 세자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해 상당히 미워했다.

임해군 사건

3 사망

당연히 광해군도 이러한 임해군을 싫어했고, 선조 생전에도 이미 처벌하라는 상소가 빗발쳤지만 선조는 끝끝내 감싸고 돌아서 살 수 있었던 임해군은, 광해군이 왕이 되자 서인, 북인, 남인 각 당파를 초월해서 아예 죽이라는 상소가 끝이 없었다. 훗날 영창대군을 지키려고 사실상 목숨을 건 상소를 올리는 의병장 곽재우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임해군을 죽이라 할 정도로 막장이었다. 결국 광해군은 임해군을 귀양 보내버리고 임해군은 귀양지에서 의문사했다. 광해군이 죽였을 거라는 심증만 제기되고 있을 뿐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당파를 초월해서, 지역을 초월해서 만장일치로 죽이라는 위아더월드를 이룩해낸 참으로 위대한 왕족, 그것이 임해군이었다. 훗날 인조 때, 귀양지의 관리가 독살했다는 노비의 증언이 나오긴 했는데, 그나마 이 독살설도 반정세력 권력 정당화를 위해 조작한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이 불거진다.

사실 임해군 자신도 자기가 살 길을 모르는지 맨날 무사들과 어울리고 자신이 잡힐 것 같자 여장을 하고 도망쳤는데 공격받는 마당에 도망까지 치려고 했으니 죽지 않을수가 있을까?

4 평가

사실 보다시피 개막장인 인물이지만 선조와 반정세력들의 광해군 견제, 깎아내리기 등으로 인해 상당히 충공깽스러울 정도로 미화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도 사극에서는 입체성이 필요해서인지 마냥 미화하거나 사이코로 묘사되진 않고, 음모에 휘말린다거나 양녕대군처럼 위악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정쩡하게 묘사되곤 했다.

물론 장남이면서도 일찌감치 세자 경쟁에서 배제된 꼴을 보면 그의 한심함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선조실록에서 당대의 사관이 평한 글을 보면 온통 악평밖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 하도 악행이 많으니 무뢰배들과 종실의 망나니들이 그의 이름을 사칭해서 대신의 집을 습격, 강도질하는 사건까지 벌어젔다. 이에 사관은 "자업자득이다" 식으로 평해놓을 정도였다. 실록의 기사.

역사스페셜에서 임해군의 아들이 일본의 어떤 영주(다이묘) 밑에서 자라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즉 에도 시대의 저명한 일연 스님이 되었다고 하며 딸은 도가와 다츠야스의 (측실)으로 살다 죽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임해군의 아들아버지의 죽음을 듣고 슬퍼하며 지은 글이 전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다뤘다. 임해군은 자식이 없어 조카를 양자로 입양해 대를 이었다. 임해군과 순화군과 같이 생포된 사람들의 이름이나 직책도 실록에 적혀있지만 임해군의 아들과 딸의 이야기는 없다. 왕릉 도굴 사건으로 조선과 일본의 국교재개 문제가 논의되었을 때도 아무도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없었다. 일본으로 끌려간 왕족들은 왕가의 수치라 생각하여 없는 사람 취급한 듯.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선조 말년에 명나라 조정에서 만력제황태자주상순을 두고 일으킨 후계자 교체 문제로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입장을 바꿔 장자를 세자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판으로 광해군의 세자 자리가 위태로워졌고, 장남인 자신이 정신 차리고 얌전하게 행동하면 다들 임해군이 세자 자리를 노리고 점수를 따려고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할 것이므로 임해군이 정신 못 차리고 계속 망나니짓을 한 것은 임해군 나름대로의 처세가 아닐까하는 설을 제시했다. 그러나 문제는 광해군에게 자신의 충정 의사를 전달하는데 실패했다고... 설령 그런 의도가 있었다 한들 워낙 상상 이상의 막장행각을 벌인 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왕권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존재로 찍혀버려 스스로 자기 명을 재촉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5 창작물에 등장한 임해군

  • 조선왕조오백년에서는 배우는 정성모. 여기서는 순화군과 같이 어울려 다니면서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다가 국경인국세필의 밀고로 가토 기요마사에게 위치가 노출되고 온성구조사 이수가 직접 가토 기요마사에게 임해군과 순화군을 넘겨준다.
  • 효게모노에서는 배용준으로 나온다. 장동건의 어색한 일본어 구사를 패러디한 대사를 해서 현대아줌마 한류팬들을 패러디한 것 같은 나이가 좀 있는 시녀를 한방에 뿅 가게 만들어서 그 도움을 받아 탈주하려고 하다가 들켜서 가토에게 대차게 싸닥션을 맞는다. 이때 순화군도 같이 등장했지만 이쪽(순화군)은 생긴 것도 평범하고 존재감도 공기였다.
  • 왕의 여자에서는 배우 김유석이 임해군 역을 맡았다. 굉장히 미화되어 무인 기질의 인물로 나오면서 선조 독살 소문을 듣고 명과 손잡으려다 광해군이 자기를 보호한 걸 알고 명 사신 앞에서 미친 척 연기하는데, 이걸 보고 이항복 등의 온건파 대신들은 진정 나라를 생각하는 왕자라고 감탄하고, 이이첨대북도 이 평가에 동의한다. 하지만 대북의 결론은 그래서 더욱 죽어야한다 라서 살해당한다.
  • 불의 여신 정이에서도 등장했는데 배우가 다름아닌 이광수. 이젠 사극에서도 배신 이광수의 배우 인생에서 첫 번째 악역 연기다. 다만 배우가 배우인지라(...) 실제 역사 속 임해군보다는 포악함보다 찌질함이 더욱 강하고 푼수 같은 면모가 강하다.
  • 징비록에서는 배우 윤홍빈이 임해군 역을 맡았다. 임진왜란기가 중심인지라 등장이 잦지는 않다. 포악하고 거친 면모보단 왕자랍시고 기세만 등등하며 정말 철딱서니 없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 화정에서는 배우 최종환이 임해군 역을 맡았다. 여기서는 광해군과 대립 모드가 아닌 조력자 역할로 나오나, 매번 무리수를 두어 오히려 화를 자초하는 포지션이다. 결국 광해군의 즉위 후 반역을 도모하다 실패하여 제거되는 것으로 나온다.
  • 네이버 웹툰 오성X한음에서도 그 패악은 어딜 가지 않아서, 오성 이항복이 추노꾼 최오십동과 함께 임해군의 귀양지로 가서 임해군을 죽이려 하지만, 차마 임해군을 죽일 수 없었던 이항복과 최오십동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도망을 치지만, 누군가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 대체역사소설 이순신의 나라에서는 이순신의 반정으로 함흥으로 파천하다, 왕실 가족들과 함께 혜산으로 또 파천하게 된다. 파천길에도 술타령을 하여 주변인들이 혀를 찬다. 결국 정원군을 조선왕으로 만들기 위해, 여진족들이 왕실 가족들을 살해하는 와중에 살해된다.
  1. 엄연히 따지자면, 연산군도 세자 시절에는 평범하게 자라났고, 재위 초반에는 나태를 멀리 하려 노력하는 등, 나름 국사는 잘 돌봐왔었다.
  2. 실제로 양녕대군은 훔쳐도 정도였지 내놔라 뭐 내놔라 하진 않았고 부정축재도 없었다.
  3. 정확히는 순화군강원도에서 병력을 모으는 것이었지만, 강원도가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어가면서 함경도로 피해 임해군과 합류했다.
  4. 하지만 선조수정실록과 임해군과 순화군을 포로로 잡았던 가토 측의 기록에서 공통된 점이 있는데, 포로로 잡은 조선 왕자들을 잘 대접했다는 점이다. 즉 포로 생활로 인해 막장인 성격이 더더욱 막장이 된 것에는 어폐가 있다. 다만 이 때의 경험이 시발점이 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없지만은 않다. 나중에 명나라에서 '임해군이 있는데 왜 차남광해군이 즉위했냐'고 딴지를 걸자 '임해군이 왜군포로로 잡혔다가 미쳐버렸다'고 둘러댔던 걸 보면 당시 조정에서도 이 일로 인해 더 포악해졌다고 여겼던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5. 이덕형과 외종지간인데 형제보다도 더 친해서 이덕형이 사건 당시 특히 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