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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클래식 음악인, 지휘자. 1970년생 서울 출생이다.
2 경력
(광주시향 시절의 모습을 담은 다큐 영상. 말러 2번 교향곡 '부활' 5악장의 연주를 중심으로 제작되었다.)[1]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만하임국립음대 대학원 지휘과에서 공부한 후 독일 다름슈타트 국립오페라극장 상임지휘자[2] (2002년)와 독일 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 수석상임지휘자[3] (2005년)를 역임하여 해외에서 커리어를 쌓은 후, 국내로 복귀해 2009년 광주시립교향약단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4] 2년 후인 2011년 3월에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단장 겸 상임지휘자로 자리를 옮겼다.
(경기필 시절의 구자범)
여기까지만 보면 꽤 괜찮은 커리어인것 같지만....[5]
3 성희롱 무고 사건
2013년 5월 경기 필하모닉에 사표를 냈다. 경기 필하모닉의 한 여성 단원이 자신의 연주 징계를 철회받기 위해 구자범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였고, 몇몇 단원들이 이 사건을 이용해 지휘자를 내쫓으려 시도했다. 구자범은 단원들의 태도에 배신감을 느껴 사표를 제출한다.[6] 이때 중부일보에서 구자범 단장이 성희롱 논란으로 사표를 제출하였다고 최초로 보도하였는데, 당시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의혹사건이 생긴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기에 엄청난 여파로 주요 일간지에 똑같은 내용으로 기사가 나간다.
이후 더 황당한 일이 이어졌는데 포털사이트에 구자범 연관 검색어로 ‘구자범 변태’ ‘구자범 성희롱’이 떴고 일부 언론에서는 마치 구자범 성희롱이 사실인양 보도되었고.
그 이후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는데, 지휘자가 요구하는 연습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단원들의 불만이 올라가 레슨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7]원로 단원들로부터 지휘자에 대한 원성이 점점 올라가게 되었고,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모든 일이 끝난 후 해당 여성단원은 성추행이 아니었다며 신고를 취하했고 검색어 조작에 관여한 단원들에게는 벌금형이 부과되었다. 구자범은 언론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고소했지만 검찰은 이미 사건이 끝나 피고소인을 기소하지 않았다. [8]
구자범이 떠난 이후, 경기 필하모닉의 지휘자 및 예술단장은 여성 지휘자 성시연이 맡고 있다.
4 이후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자막팀에 4개월짜리 단기 스태프로 채용되어 자막 교정일을 보았으며, 지휘자 일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비록 사건의 전모는 밝혀졌지만 이미 이미지가 나빠질 때로 나빠져 피아노 학원의 선생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러다 2016년 3월 연극 <마스터 클래스>의[9] 음악감독 겸 무대 피아노 반주자로 참여했다.
2016년 5월 28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음악제에서 지휘자로 합류하여 경기필을 떠난지 3년만에 연주무대에 복귀할 것으로 기대되었는데, 지휘자가 돌연 교체되었다. 이를 두고 처음에는 "구자범이 14일의 첫 리허설 직후에 일방적으로 잠적했다"는 주최측 주장이 알려졌지만, 곧바로 구자범 측에서 "음악제의 예술감독인 류재준(작곡가)이 지휘 사퇴를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이후 류재준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를 표했지만, 이미 음악제 자체의 신뢰마저 타격을 입은 후였다. 구자범은 지휘 복귀의 기회가 무산되었음은 물론, 또 다시 언론에 의해 일방적으로 매도당했다는 점에서 이중의 상처를 안게 되었다.[10] 얄궂게도, 다수의 공작으로 인해 몰락한 지휘자가 이번에는 단 한 사람의 독단으로 또 한번의 좌절을 맞은 것.
5 왜 복귀가 늦어지고 있는가?
경기필에서의 성희롱 논란이 금방 무혐의로 드러났고, 당시 음악인[11] 들의 구명운동 및 여러 음악회의 지휘제안이 구자범에게 들어왔지만 본인의 완강한 거부가 있었을 뿐, 그가 음악계에서 완전히 매장된 것은 아니었다. 성희롱 사건은 구자범이 명백히 피해자였지만, 그가 바로 복귀하고 활동하였으면 그저 명예훼손, 혹은 무고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었다. 특히 본인이 원한다면 명예훼손 소송이나 무고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는데, 당시 지휘 일에 회의를 느꼈었는지, 본인이 음악계에 완전히 사표를 제출하겠다며 한사코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2년간 두문불출하다보니, 음악계에서 더욱 고립된 면이 있다.
이 사건과 별개로 음악활동을 하며 그가 보였던 정치적 성향(예: 광주 5.18 추모공연 등)이 보수적 클래식 음악계에서 일종의 눈에 가시, 괘씸죄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지적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태생적으로 보수적 기독교인이 주류를 이루는 집단이기 때문에[12], 지휘자가 공개적으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고 튀는 행보이다[13]. 특히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이런 식의 음악활동은 관객과 평단에게 인기가 좋을 수는 있더라도 음악계 내부에서는 필연적으로 안티를 부를 수 밖에 없다는 것.[14]- ↑ 원곡의 독일어 합창 가사가 우리말로 번역되어 불리고 있는데, 해당 연주가 5.18 광주 민주항쟁 추모 음악회에서 사용된 것을 반영해서였다.
- ↑ 음악감독, 수석상임 지휘자 아래 제 3 지휘자의 포지션.
- ↑ 음악 감독(Generalmusikdirektor) 바로 밑의 직책으로 연간 여섯 편 정도의 오페라를 공연한다.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 부지휘자 개념과 달리 오페라 극장에서 GMD 밑의 카펠마이스터들의 공연횟수는 GMD와 크게 다르지 않다.
- ↑ 광주시향을 맡을 시기에 국내에서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인기리에 방영된 직후였는데, 마침 드라마 속 주인공인 강마에(김명민 분)처럼 베토벤을 연상시키는 사자머리 장발이기도 해서 '광주의 강마에', 혹은 '구마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 ↑ 바스티유 오페라 감독을 맡았던 정명훈 이후 유럽의 오페라 극장에서 상임 직을 맡은 한국 지휘자의 수는 매우 적다. 최희준(작센주립극장), 지중배(트리에 극장, 울름 극장) 등이 있지만 이 극장들에 비해 슈타츠오퍼 하노버의 규모가 더 크다.
- ↑ 참고로 언론 보도가 나간 뒤에 사표를 낸 것이 아니라 사표를 냈기 때문에 언론에서 보도한 것이다. '잘못을 했으니까 사표를 내지 않았겠냐'는 생각으로 보인다.
- ↑ 사실 시립교향악단은 공무원신분이므로 과외를 하는것 자체가 불법이지만, 퇴근 이후 악기 전공학생에게 레슨하는것은 오랜 관행으로 용납되었다고 한다. 1시간당 10만원정도 였다고 함
- ↑ 구자범은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정말 답답해 울었다”면서 “그들을 용서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미워하진 않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만 있다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 ↑ 20세기의 전설적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인 칼라스 역은 배우 윤석화가 맡는다.
- ↑ 이에 대해 구자범은 언론들이 초기에 '잠적' 운운하며 구자범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류재준 등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보도한 것에 대해, "왜 내게는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인가?"라며 섭섭한 마음을 토로했다.
- ↑ 여성 음악인, 음악학자들이 다수 있었으며, 성희롱논란이 사실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지지자그룹이 있었다
- ↑ 클래식 음악 도입 자체가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왔고, 국내 최초의 음악대학은 이화여대(1925년)이며, 20년이 더 지난 후 서울대에 음대가 생겼다. 또한 음악계의 주요한 엘리트 코스인 예원학교- 서울예고 역시 이화여대 재단에서 설립한 기독교 학교이다
- ↑ 실제로 성희롱 (무고)사건이 벌어졌을 때 여러 보수 언론사에서 이를 언급하였지만, 무고로 밝혀진 것은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으며, 2년 이상 두문불출한 끝에 구자범이 인터뷰를 하고 언론에 기고를 시작한 것도 한겨레가 처음이었다
- ↑ 다만 2010년 광주 5.18 추모 연주같은 경우는 구자범 개인의 정치성향에 앞서 광주시가 운영하는 광주시향 소속의 지휘자였다는 점이 보다 큰 이유였을 수도 있고, 이 외에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 다른 사례가 있었는지의 여부를 찾아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