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브즈(리그 오브 레전드)/리그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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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그레이브즈
날짜: CLE 21년 10월 14일

관찰

말콤 그레이브즈를 보노라면 강인함이 느껴진다. 흉터와 굳은살로 뒤덮인 그의 육체는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탄탄하며, 표정은 항상 근엄하면서도 의지로 가득 차 있다. 그레이브즈의 한 손에는 항상 육중한 산탄총 한 자루가 들려있다.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총기지만, 어떻게 보면 그에게 딱 맞는 무기다.

하지만 그레이브즈의 진면목은 그의 눈을 봐야지만 알 수 있다. 그의 시선은 뭔가 그가 달성할 수 없는, 그의 손아귀에 닿을락 말락하면서 닿을 수 없는 어떤 목표에 고정되어 있다. 그 무엇도 그가 가는 방향을 돌릴 수 없다. 자신의 머리에 얹혀진 막대기로부터 대롱거리는 당근을 너무 오랫동안 쫓은 나머지, 그것이 속임수임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것밖에 할 수 없는 모습처럼 보인다.

회고

'어디 가나 똑같구먼, 높으신 분들은 항상 희한한 쇼를 좋아하는군.'이라고 그레이브즈는 생각했다.

그레이브즈에게 화려함은 사치였다. 그는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대부분 그의 산탄총을 통해 진행했다.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먼 옛날, 그는 진심으로 남을 속이는 것을 즐겼었다. 멍청한 놈들을 골탕먹인 후, 들통 나기 전에 훌쩍 마을을 떠나는 게 그토록 즐거울 수 없었다. 물론 그때에는 자신과 비슷한 철학을 가진 동료가 있었다. 그 철학은 이랬다: '사기는 오래 칠수록 훌륭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 좋을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그를 등쳐먹었다.

배신에 익숙한 그레이브즈였지만, 어떻게인지는 몰라도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그를 성공적으로 배신했다. 그 한 번의 실수로 그레이브즈는 인생의 상당 부분을 헌납해야 했었고, 다시는 그렇게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쓰디쓴 교훈이었지만, 그런 교훈일수록 머리에 오래 남는 법이다.

이제 복수만 달성하면 완벽하다.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그레이브즈를 상념으로부터 일깨웠다. 암울한 종말, 속아 넘어간 인생의 소리와도 같은 소리였다. 이미 무엇이 그를 기다릴지 알면서 그레이브즈는 몸을 돌렸다. 최근에서야 얻을 수 있었던 자유와 자신 사이에는 다시 익숙한 철창이 놓여있었고, 철창 반대편에는 그의 간수, 아레고르 프릭스 박사가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그레이브즈는 프릭스의 눈 사이에 총알을 박아넣기 위해 팔을 들었지만, 그의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또 다시 프릭스의 개인 수용소에 갇힌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프릭스는 입가에 거품이 날 정도로 웃었다. 둥글납작한 체형과 구역질을 유발하는 성격을 소유한 프릭스의 유일하게 봐줄 만한 점은, 적어도 그가 수감하는 자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만큼의 용기는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그레이브즈는 생각했다. 그레이브즈가 알아낸 바로는 프릭스는 이 수용소를 경쟁자 제거에 주로 사용했지만, 그레이브즈의 경우에는 좀 달랐다. 오래 전, 그레이브즈와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프릭스의 애첩 두 명을 납치하고 프릭스의 돈으로 1주일동안 호화찬란한 여행을 다녀왔었다. 그레이브즈가 빼돌린 돈을 추적했을 시점에 트위스티드 페이트와 그는 이미 데마시아의 정복자 해변에서 사기를 치고 있었다.

프릭스가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며 물었다.

"날 더이상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나?"

그레이브즈가 대답했다.

"꼴도 보기 싫었거든. 그 돼지 같은 얼굴이 누군가의 벽에 걸려 있으면 참 멋질텐데 말이야." 그가 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가중 처벌의 위험을 달고 있는 만큼, 그레이브즈는 각 단어를 강조하며 말했다.

프릭스가 으쓱거리며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해냈는지 궁금하지 않나?"

"난 벌레가 왜 돌아온건지 궁금해하지 않아. 그냥 더 세게 짓밟을 뿐이지."

"내가 너를 다루고 난 뒤에도 그렇게 대답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프릭스가 내뱉었다. 그레이브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오래 그 지옥같은 곳에서 살아남았는지를 생각하면 벼룩과도 같이 질긴 목숨이었다. 친구도 거의 없고 간수들은 프릭스가 어딘가에서 주워온 건달들이었던 만큼, 이제와서 고통은 처벌보다는 그냥 귀찮은 것에 불과했다.

"다음 번에 네놈이 오줌 지릴 때를 대비해 좀 제대로 된 음식이나 먹어." 그레이브즈가 대답했다.

"그레이브즈, 왜 리그에 합류하고 싶어하는가?"

뚱보 프릭스치고는 의외로 직설적인 질문이었지만, 어쩌면 발로란의 제일 강력한 조직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조차도 달라지는가 싶었다.

"그걸 왜 물어보나? 내 과거는 모조리 알고 있을 텐데."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나?"

과거에서 튀어나온 새로운 목소리를 듣자 그레이브즈의 피가 끓었다. 프릭스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트위스티드 페이트를 본 그레이브즈는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철창을 꽉 쥐었다.

"트위스티드 페이트! 네놈이 줏대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쓰레기와 한통속이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구만!" 그레이브즈는 이런 재회를 꿈꿔왔던 것이 아니었다.

"이 자식─" 프릭스가 내뱉었다.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표정은 침착했다.

"그레이브즈, 왜 리그에 합류하고 싶어하는가?"

"이 철창에서 내보내주면 왜인지를 확실히 보여주─" 그레이브즈가 울부짖었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다시 물었다.

"왜 리그에─"

"네놈의 사기를 들춰내기 위해서다, 트위스티드 페이트! 세상은 네가 무슨 '챔피언'이라고 믿을지 몰라도, 난 네놈이 어떤 놈 인지를 똑똑히 알고 있어. 네놈의 전부를 앗아가버릴테다. 내가 네 진실을 모두 까발린다면, 넌 그 누구도 속일 수 없게 될게다!"

그레이브즈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그를 예상보다 심하게 자극했던 것이었다. 그레이브즈는 속으로 다시는 트위스티드 페이트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속마음을 드러낸 기분이 어떤가?"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씩 웃었다. 그 웃음을 보는 그레이브즈는 피가 다시 끓어올랐지만, 흥분하지 않기 위해 침을 꿀꺽 삼켰다.

"가시덤불에 걸터앉은 기분이군."이라고 그레이브즈가 중얼거렸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이번에는 소리내어 웃었다.

"다시 봐서 반갑군, 말콤."

그 말과 함께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밖으로 나갔고, 프릭스 역시 그를 뒤따랐다. 단단히 열이 오른 그레이브즈는 철창이 갑자기 열리기 전까지 감방 안에 앉아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감방을 나섰고, 이윽고 난데 없이 총을 든 채 전쟁기관소 안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런, 쇼였군.

그레이브즈는 이를 꽉 깨물고 총을 장전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그레이브즈였지만, 그렇게 보고 싶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