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브즈(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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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

말콤 그레이브즈는 발 들이는 왕국, 도시 국가, 제국 어디에서나 현상 수배가 나붙는다. 거칠고 강인한 의지력에다 무엇보다도 끈질긴 성격의 그는 범죄로 점철된 (그러다 결국은 망친) 삶의 행보 중에도 조금의 재산은 모을 수 있었다.
“네놈들의 목숨이 아니라 금을 가지러 온 것이니, 괜히 영웅이 되려고 하지는 마.”

말콤 그레이브즈는 걸음마보다 도박과 사기, 거짓말을 먼저 배운 타고난 무법자다. 빠른 손과 거친 언사를 이용해 큰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쉽게 번 돈은 쉽게 잃게 마련, 결국 가는 곳마다 쫓기는 신세가 되고야 말았다.

그레이브즈는 빌지워터의 후미진 뒷골목에서 자라났다. 가난이 지긋지긋했던 그는 어렸을 때 화물선에 숨어들어 내륙으로 왔다. 그러나 할 줄 아는 것은 남을 등쳐먹는 일뿐이었다. 이 때문에 닥치는 대로 도둑질을 하고 도박판을 기웃거리며 떠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커다란 판돈이 걸린 도박판에서 트위스티드 페이트를 만나게 된다. 운명을 바꿔버릴 위험한 동료 관계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둘은 모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을 만큼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걸, 첫눈에 반하는 것처럼 단번에 서로 알아차렸다.

죽이 잘 맞았던 그레이브즈와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둘도 없는 동료가 되었다. 이름을 날렸고 수많은 돈을 벌었다. 가끔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멍청한 부자들을 골탕먹이기도 했다. 두 남자에게 모험이 주는 짜릿한 전율은 빠져나올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한 번은 국경지대에 인질로 잡혀 있는 상속자를 구출한다는 구실로 유서 깊은 두 가문을 이간질했다. 그레이브즈와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의뢰인에게 보상금을 챙기자 바로 상속자를 팔아 넘겨버렸다. 또한, 필트오버에서 절대 뚫을 수 없다고 알려진 태엽장치 금고를 털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뛰어난 언변으로 경비대원을 꾀어 금고의 보물을 화물선에 싣게 하였다. 수평선 너머로 배가 멀어질 때까지도 경비대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금고는 텅 비어 있었고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카드 한 장만 달랑 조롱하듯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운도 거기까지였던 걸까? 크게 한탕 하려다 그만 일이 꼬여버렸고, 이후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종적이 묘연해졌다. 그리고 그레이브즈는 무시무시한 범죄자 특수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고문이 이어졌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그레이브즈는 고통의 나날을 복수심으로 버텨냈다. 달도 없는 어느 야심한 밤, 그는 마침내 높은 수용소의 담을 넘었다. 자유를 찾은 그에게 남은 숙제는 오직 하나, 바로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뒤를 쫓는 것.

몇 년이 지났을까? 마침내 그레이브즈는 트위스티드 페이트를 찾아냈다.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된 그레이브즈는 혼란에 휩싸였고, 둘을 제거하려는 갱플랭크의 손아귀에서 함께 도망치게 된다.

전우애일까? 옛정일까? 그레이브즈는 옛 파트너에 대한 복수를 그만두기로 한다. 나이만 먹어버린 철없는 그레이브즈와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부와 명예를 되찾기 위해 다시 손을 잡는다. 속임수와 도둑질, 폭력... 외줄을 타듯 개성 넘치는 술수로 기막힌 모험이 다시 시작되리라.

텅 빈 술집, 부서진 탁자에 기대선 말콤 그레이브즈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창밖에서 현상금 사냥꾼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좀 해. 술맛 떨어지잖아.”

그레이브즈는 술병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데마시아 와인? 정말 이것뿐인가?”

온 사방이 산산이 부서진 유리조각 투성이였다. 간신히 몸을 숨긴 주인장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게 저희 집에서 제일 비싼 술이라굽쇼.”

“그래, 그래. 남은 술이 그거밖에 없겠지.” 그레이브즈는 박살 난 술병들을 내려다보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주인장이 벌벌 떠는 게 당연했다. 여기는 매일 혈투가 벌어지는 빌지워터가 아니니까. 필트오버는 그레이브즈가 태어난 빌지워터보다 안전하고 깨끗한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그레이브즈는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깨물어 바닥에 뱉고 병나발을 불었다. 그러더니 부자들이 하던 것처럼 와인 냄새를 맡고 술을 혀 위에서 굴려보았다. “오줌 맛이네. 뭐 공짜 술에 이렇다저렇다 할 수 없겠지만? 안 그래?”

부서진 창문 너머로 짐짓 허세를 부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포기하시지. 우린 일곱이고 너는 혼자야. 좋게 끝나지는 않을 거야.”

그레이브즈는 피식 웃으며 받아쳤다. “당연하지. 좋게 끝나길 기대했나? 그럼 친구들을 더 모아보라고!” 술병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일하러 갈 시간이네.” 특수 제작된 산탄총을 긴 탁자에서 집어 들며 그레이브즈가 말했다. 새 탄환이 장전되는 위협적인 딸각 소리는 바깥까지 울려 퍼졌다. 한 번이라도 그레이브즈를 만났던 사람이라면 이 소리를 모를 수 없다. 파멸을 알리는 자명종 소리.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

그레이브즈는 미끄러지듯 문 쪽을 향해 다가갔다. 유리조각이 장화 굽 아래 경쾌하게 부서졌다. 그는 몸을 굽히고 깨진 창문 너머를 흘끗 쳐다봤다. 네 명의 남자가 쪼그리고 앉아 선술집 안쪽으로 석궁과 소총을 겨냥하고 있었다. 둘은 작업장이 있는 이 층에, 둘은 그늘진 문간이었다.

아까의 새된 목소리가 외쳤다. “지옥 끝에서부터 너를 쫓아 왔다고. 이 망할 자식아! 수배지에 생포하란 얘긴 없었어. 더 피 흘리기 싫으면 총이 보이게 손들고 걸어 나와.”

그레이브즈가 답했다. “나갈 거라고. 걱정 붙들어 매라니까.”

그리고는 바다뱀 은화 한 닢을 휙 던졌다. 동전은 럼주가 쏟아진 탁자 위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앞면을 위로하고 멈췄다. 주인장이 바들바들 떨며 겨우 손을 내밀어 동전을 집어 들었다.

“문 값이야. 잘 챙겨놔.” 그레이브즈는 씩 웃었다.

“문이라굽쇼?” 주인장이 울먹이며 되물었다.

커다란 장화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술집 앞문의 경첩을 부수어버렸다. 그레이브즈는 총알을 난사하며 박살 난 문 사이로 돌진했다. 텅 빈 필트오버의 거리로 경쾌하고 무시무시한 빛의 그림자가 날아오를 듯 어른거렸다.

“좋다, 이놈들아! 두 눈 크게 뜨고 어떻게 끝나는지 지켜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