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극진공수도는 최영의 총재 생전에도 독립해서 나간 단체들이 많았으며, 대도숙, 아시하라회관, 월드 오야마 가라데 등이 독립해 나가서 유명해진 단체들이다. 직접 독립하진 않았으나 정도회관과 원심회관 같은 경우도 원래 극진에서 유명하던 사범과 선수들이 구성원의 주축을 이룬다.
총재 사후에는 '극진'의 이름을 달고 분파가 되기 시작한것이 특징. 사실 이 분파문제는 각 단체 지도부들이 양보없이 맹렬히 대립하고 법정까지 간 문제라, 각 단체의 사범과 수련생들도 언급이 조심스러울수밖에 없어 언급이 꺼려지는 문제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데...
1. 최영의 총재 사후에 유언장으로 극진회관 2대 관장으로서 마쓰이 쇼케이[1]씨가 선출되었으나, 유언장만으로는 법적효력이 없다는 주장과 함께, 일부는 문장규씨의 리더쉽에 의문을 제기[2]하며 분열.
2. 국제공수도연맹(IKO) 상표권과 '관장'직함 사용등으로 법정 공방이 생김. 극진회관, 극진 종가회, 극진 장학회, 신극진회, 극진관, 극진연합, 기타 그룹등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 결국 쌍방향으로 다수의 법적 공방이 시작됨.
3. 2007년에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짐. '극진회관'의 2대 관장으로서 문장규씨의 관장 직위는 인정되나, 극진공수도를 만드는데 다른 사람들 역시 공헌을 했기에 그 사람들이 상표권이나 명칭을 사용하는데 방해를 하면 안됨(타 단체를 이단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 되기에). 현 극진회관은 분열로 인해 최영의 총재 생전과 같은 단체라는 의미로 보기 힘듬고, '관장'이란 명칭이 한 단체 수장임을 과시하는 명칭으로 쓰일수 있기에 이 명칭을 사용한다고 해서 다른 단체를 이단처럼 보이게 하지는 않음.
그리하여 다들 분리가 되고, 각 단체의 수장이 자신들 단체의 관장직을 주장할수 있는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인식으로도, 미디어 상으로도 문장규씨의 극진회관(IKO1)이 좀더 정통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1. 최영의 총재가 만든 단체는 '극진회관'이었고, 그 단체명을 이어가고 있음. 하물며 웹사이트 주소도 [1] 쿄쿠신카이칸으로 극진회관 이름 그 자체.
2. 세계대회와 전일본대회등을 최영의 총재 시절로부터 이어서 계최중. 다른 단체들은 전부 새로운 대회를 개최...(그러나 신극진회 역시 전일본대회, 세계대회를 꾸준히 이어서 하고 있고 신극진회의 역대 세계대회 우승자 목록을 보면 분파 이전의 5회까지는 IKO1과 동일)
3. 최영의 총재시절에 이미 7~8단을 사사받은 고단자들 대부분이 문장규 관장을 지지중. 예를 들자면 고다 사범(본부 고문), 이소베 사범(브라질 지부장), 피터청(싱가폴 지부장), 바비 로우(하와이 지부장이자 최영의 총재 최초의 내제자. 2011년 연말에 사망.), 하워드 콜린스(유럽 지부장), 케니 우이텐 보가트(아프리카 지부장)등...
그러나 2016년 기준으로 하워드 콜린스 사범과 케니 우이텐 보가트 사범 등등 고단자들이 마쓰이 지지 철회 및 마쓰이파를 탈퇴했다. 그래서 고단자 가 가장 많은 지지하는 곳은 극진연합이 되었다.
4. 세력이나 영향력이 아직도 극진 단체들중에서 가장 큼.
단, 2016년 기준으로 일본내 너무 많은 마쓰이파 도장들의 탈퇴로 일본내 도장수는 신극진 밀려 2위가 되었다. 그래서 현재 1위 신극진, 2위 마쓰이파, 3위 총극진 순서이다
...위와 같다.
물론 일반적인 인식이 그렇다는 것이고, 각 유파의 수련생들은 당연히 자신을 정통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괜히 타 유파에게 저런 말을 해서 싸움을 일으키지는 말자.
또한 유파가 다르다고 해도 어쨌든 같은 극진의 뿌리에서 나온 단체이기 때문에, 사이비 단체가 아닌 이상 수련 내용이나 대련 규칙에 큰 차이는 없으므로[3], 자신이 어떤 신념이나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한, 굳이 멀리서 찾지 말고 집 가까운 도장에서 배워도 상관 없다.
한편, 수뇌부들이 저렇게 대립하는 와중에도 각 단체 수련생과 사범들 중에는 선후배 사이로 맺어져 대립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나, 한국에서는 사범과 수련생들 끼리도 서로를 배신자로 디스하여 지금까지도 좋지않게보는 경향이 남아있다고 한다.
2 분파 일람
세계적으로 수십 개의 분파가 존재하지만, 회원수로 볼 때 크게 보면 다음과 같다.
- 극진회관(極真会館)[4] : 관장 마쓰이 쇼케이(松井章圭). 본명 문장규. 극진회관 극진회관 한국지부 홈페이지 극진회관 한국지부 본부도장 다음카페 극진회관 한국지부 네이버 카페
- 극진회관 세계총극진(極真会館 世界総極真) : 극진 3대 유파 중 하나. 전일본 2회 참피언 출신이고 최영의 총재 1대 제자인 하세가와 카즈유키(長谷川一幸) 사범이 대표로 있다. [2] 한국본부 홈페이지 [3]
- 극진회관 종가(極真会館 宗家) : 유족파(遺族派). 대표는 최영의 총재의 딸 오야마 기쿠코(大山喜久子). 분열 이전의 구 총본부 도장과 최배달의 초상권을 관리하고 있다. 유족들이 중심이 되어 있다. 극진회관 종가
- 신극진회(新極真会) : 최초에는 극진회관 지부장 협의회파(極真会館支部長協議会派)였으며, 이후 유키오 니시다, 산페이 게이지를 거쳐 현재의 미도리 겐지 관장(관장이 아닌 대표. 신극진회는 관장 직이 아닌 선출제로 인한 대표제이다)과 함께 WKO 신극진회로 독립한다. 1995년, 산페이 케이지를 중심으로 일본 국내 지부장 48명 중 35명이 이탈하여(그러나 9명은 극진회관으로 돌아가고, 1명(후쿠시마 지부)는 또 이탈했다.) 구성되었다. 또 일시적으로 최영의 총재의 아내 오야마 치야코(大山智弥子)를 대표로 앉혔서 유족파와 협력했으나 유족파가 '종가'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결별했다. 현재 극진회관과 함께 극진공수도를 양분하고 있는 단체이며, 대회의 TV 중계나 극진공수도의 올림픽 유치 시도 등을 통해 매체 및 미디어에 자주 등장함으로써 일반인에게 인지도가 높아져 있다. 신극진회
- 극진회관 테츠카그룹(極真会館・手塚グループ) : 대표는 테츠카 토루(手塚 暢). 최영의 총재사후 원로 사범들의 회의에서 극진회관의 대표로 선출된다. 직무시작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병으로 병원에서 18개월을 보내게되고, 이때 스스로를 리더라고 천명한 3인에 의해 IKO 3개의 그룹이 생겨난다. 극진의 가르침과 철학에서 다른 견해를 가진것이다. 테츠카 사범은 패권을 다투지 않고 2000년 테츠카 그룹을 출범시킨다. 그리고 회장에 취임한다. 마쓰이 관장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며,마쓰이 관장은 본부도장으로 가기전 13년 동안 테츠카 회장의 지바도장에서 지도를 받았다. 극진회관테츠카 그룹
- 전일본극진연합회(全日本極真連合会) : 통칭 극진연합. 대표는 고이 요시카즈(小井 義和). 주식회사 체계인 극진회관과는 달리 정회원 만장일치제에 의한 사단법인 체계이다. 체계의 모습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분열 과정에서 독자 노선을 걸은 사범들이 세운 독립 도장들의 연합체에 가깝다. 극진연합
- 극진관(極真館) : 당초 문장규 관장 밑에서 극진회관의 최고고문, 주석사범을 맡고 있던 로야마 하쓰오(盧山初雄, 역시 한국계로 한국명 노초웅) 사범이 독립하여 관장을 맡고 있다. 극진회관의 재단화와 극진 장학회의 부활을 추진했으나, 마쓰이 관장과 의견 마찰을 빚어 이탈했다. 이쪽은 로야마가 부활시킨 극진 장학회가 중심이 되어 있으며, 연합회와 마찬가지로 연합체 체계이다. 기존의 극진룰과는 별도로, 글러브를 착용하고 안면타격을 허용하는 극진관 진검승부 룰을 도입했다. 극진관 극진관 한국본부도장 네이버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