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載烈
1913~1944
1 개요
일제시대의 법률가. 가인 김병로의 둘째 아들이자 김종인의 아버지.
2 생애
1913년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서 1932년 보성전문학교에 들어갔고, 그 다음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큐슈(九州) 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그 사이인 1936년에 이필기 여사와 결혼하여 종은(鍾恩), 종현(鍾賢) 자매와 아들 종인(鍾仁) 3남매를 낳았다.
그 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변호사 시보를 마친 후, 변호사 개업을 하기 직전에, 그것도 해방을 불과 1년 앞둔 해인 1944년에 병마로 사망하였다. 아들 종인이 겨우 만 4세이던 때였다.
김재열의 요절은 가인 김병로에게 ‘참척(慘慽) 의 슬픔’이었다고 한다. 당시 조선인으로서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사람은 매우 희귀했기 때문에, 지금도 가인 김병로의 집안 내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아쉬워 하면서, “김재열 변호사가 살았다면 가인의 대를 잇는 큰 법조인으로 성장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한다.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