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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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종인(金鍾仁)
출생일1940년 7월 11일
출생지일제강점기 조선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리
(現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본관울산 김씨
학력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 학사
뮌스터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뮌스터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소속 정당더불어민주당
의원 선수5
의원 대수11, 12, 14, 17, 20
페이스북[1]
종교가톨릭 (세례명 : 알렉산델)
가족조부 김병로
약력제24대 보건사회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 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전)
별명할니니, 늙니니, 국회카이, 추호선생, 김네바야시 종인콘, 경제할배,차르(짜르)

1 개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관료, 정치인.

2016년 20대 총선 기준 3당에 모두 영향을 끼친 정치적 원로.[1]

1987년 개헌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을 직접 작성하고 관철시킨 인물로,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하면서 경제 구조 조정과 체질 개선을 주도했고, 재벌과 기업의 폭주를 견제하는 등 균형 잡힌 경제적 성과를 이뤄내려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로 보수 진영에서 핵심적인 경력을 쌓아왔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념과 고집 때문에 진보 진영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희귀한 인물이다. 거기다가 독립운동가 집안이다.[2]

그 덕분에 2004년 새천년민주당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생활을 하기도 했고, 새누리당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진보층 표심과 중도층 표심을 공략할 목적으로 그를 영입해 경제민주화 공약 설계를 맡기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그를 박근혜정부의 정도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또한 안철수 의원의 경제 멘토 역할을 하는 등 경력이 파란만장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집권하자마자 경제민주화 노선을 희석시키고 공약을 실천하지 않는 행보를 보인다고 판단해 그들과 결별하였고, 안철수 의원에 대해서는 정치에 대한 생각이 확연히 다름을 알고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있기 훨씬 전부터 일찌감치 결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철저히 야인으로 지내다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의해 비상대책위원장 겸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돼 2016년 2월부터 더불어민주당의 수장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김종인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으로 깜짝 입당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을 때 EXO 팬들은 식겁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EXO의 멤버 카이의 본명도 김종인이라 카이가 입당한 줄로 알았던 것(...) 이를 재미있게 여긴 누리꾼들은 김종인 대표에게 카이의 별명인 '니니'(종인이→종이니→조니니→니니)를 따 '할니니', '늙니니'란 별명을 붙여줬고 EXO의 카이와 더 확실히 구분짓기 위해 '국회카이'라는 별명도 만들어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엑소의 10대 팬들을 장차 더민주 지지층으로 흡수하기 위한 장기 플랜이라는 드립을 친다고 하지만 근데 엑소에는 오세훈도, 김종대도 있다.오세훈 VS 김종인 VS 김종대 국민의당 의문의 1패

20대 총선 때 '야권 통합론' 떡밥 하나로 국민의당을 한 차례 마비 직전까지 몰고 가 국민의당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더민주 지지층의 열렬한 환영을 받기도 했지만, 이윽고 정청래, 이해찬 컷오프와 비례대표 문제, 그리고 '당 대 당 야권 연대' 거부 방침 등으로 더민주 지지층의 대다수로부터 많은 비토를 받았고 그 여진이 지금까지도 가고 있다.

사용하고 있는 손목시계가 아 랑에 운트 죄네의 랑에1라고 한다. 독일에서도 알아주는 명품 브랜드라고 하는데, 독일 유학을 하던 시절 독일인 의사에게 받은 시계라 한다.

2 생애

1940년 7월 11일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리(현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3]의 손자이며,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김재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나이 겨우 다섯 살이던 1944년에 아버지 김재열의 병마로 돌아가시게 되고 할아버지에게 맡겨져 어렵게 자랐다. 할아버지 김병로는 어린 종인에게 ‘너는 아버지가 안 계시지만 그래도 너를 돌봐 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지 않으냐. 조금도 외로워하지 말고 공부 잘하여 세상을 떳떳하게 살아가면 밥 굶는 일은 없는 법’이라며 용기를 북돋워 줬다고 한다.관련 기사

1959년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에 입학하여 1963년 졸업하였다.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통합운동[4]을 주도하고 있던 조부 김병로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일찌감치 정치현실을 직접 관찰했다고 한다.

조부인 김병로 대법원장이 별세하고 나서 독일로 유학을 떠나서 뮌스터대학교에서 공부하게 된다. 1969년에는 뮌스터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1972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부전공분야는 재정학(공공경제학)으로 알려져있다.

귀국 후 1973년 3월에 34세의 나이로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되었다. 대학 교수 시절 학부생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박정희 정부에서 정책자문역할로 경제개발계획 수립에 참여하였을 때, 김재익과 함께 서독부가가치세를 연구하였고 같이 서독을 답사하고 연구보고서를 올렸다. 그 다음 해에는 김재익의 중매로 이화여대 가정대 교수인 김미경(金美經) 교수와 결혼했다.

김미경은 김정호 전 한일은행장의 딸이며, 김정호의 동생은 박정희 정권에서 재무부장관과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이다. 본인의 4촌 처남으로 노태우 정부 시절 건설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이진설이 있고,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윤영철이 있으며, 신민당 국회의원을 지낸 이택돈이 있다.관련기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를 하다가 유신 이후 박정희 정부에서 정책자문역할로 경제개발계획 수립에 참여하였다.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 입안에 참여하면서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이었던 신현확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료보험제도를 최초로 도입하는데 기여하였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는 반대 의견도 있다.[5][6]

친새누리 측 일각에서는 신현확이야말로 우리나라에 의료보험제도를 최초로 정착시킨 장본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김종인은 훗날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 등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역대 대통령 가운데 스스로 경제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었던 유일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했으며,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전직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는 자리에서 “이러고저러고 말이 많지만 그분이 오늘날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만큼은 누구도 부인을 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관련기사

1979년 국보위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민주정의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그 후 1981년부터 1988년까지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1대, 제12대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7]에서 낙선[8]한 후, 1989년 1월부터 7월까지 국민은행 이사장을 지냈다.

그러다가 1989년 7월부터 1990년 3월까지 제24대 보건사회부 장관을 역임하였고, 1990년 3월부터 1992년 3월까지 2년간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하였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그만둔 후 1992년 제14대 국회에서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러다가 1993년에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결국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으로 형이 확정되었다.

그 후 오랜 기간 동안 야인으로 있다가 2004년 3월에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되었으며, 제17대 국회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다.

2008년에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고 다시 야인으로 있다가, 2011년 12월에 박근혜에 의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2012년 9월부터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2년 12월 사임한 후, 2014년 12월에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6년 1월에는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되어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약 7개월 동안 활동하였다. 당시 분당 사태와 겹쳐 당이 혼란 상태에 있던 것을 잘 수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은 뭐니뭐니해도 나이 서열 주의 국가 결과적으로 20대 총선에서 좋은 성과를 거둠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탄탄하게 다졌다.

2016년 5월 24일에는 대우조선해양 노조위원장을 만나 “대형 국영기업이나 대우조선해양처럼 1만명 이상 고용하는 업체는 근로자가 경영을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종국에 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9]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2016년 8월 27일 새로 선출된 추미애 당대표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직에서 퇴임하였다. 최근에는 페이스북 계정을 신설했다고 한다. 요즘 정치권의 SNS 대세에 본인도 동참하기로 한 듯하다.

3 정치 활동

4 평가

5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81제11대 국회의원 선거(전국구 49번)민주정의당5,776,624 (35.6%)당선
1985제12대 국회의원 선거(전국구 32번)민주정의당7,040,477 (35.2%)당선
1988제13대 국회의원 선거(서울 관악구 을)민주정의당34,752 (27.1%)낙선(2위)[10]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전국구 11번)민주자유당7,923,718 (38.5%)당선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비례대표 2번)새천년민주당1,510,178 (7.1%)당선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비례대표 2번)더불어민주당6,069,744 (25.5%)당선

전국구, 비례대표 의원만 다섯 번을 했다. 지금까지의 국회의원 당선 모두가 비례대표를 통한 것이었고, 특히 이번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을 통해 제20대 국회 국회의원 최고령자로 기록되었다.

6 저서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 - 동화출판사 하필이면 출판사 이름이 동화은행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이름일까(...)

경제책인데 매우 쉽다.

저자가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재정학 박사까지하고 서강대에서 교수로 재직하였지만 정치 현업에 더 오래 있어서 그런지 경제 학술서적인 느낌은 아니다. 특히, 이 책에는 의료 보험, 재형 저축, 부가가치세 등의 도입 과정과 저자가 평생을 걸쳐 3번이나 시도한 노사 관계 재정립을 위한 노동법 개정 등의 얘기가 담겨져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저자의 풍부한 독서와 경험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역사와 원리에 비추어 시대마다 정치인이 해야하는 역할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책을 통하여 저자의 경제민주화는 사회자유주의의 독일 버전인 '질서자유주의'의 영향을 짙게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거대 경제 세력에 대한 정치의 견제 기능을 강조하는데 이는 시장가격기구를 신뢰하면서도 공정한 시장을 지키기 위해 국가 질서의 원칙을 강조하는 질서자유주의와 유사하다.
  1. 노태우 대통령의 경제수석비서관,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기여(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의 원내 제1당 확보 및 16년만의 여소야대 정국 형성, 안철수의 새정치 초기 조력자(그 당시엔 '새정치연합'). 그리고 20대 총선에서의 최고령 당선자(만 75세)다.
  2. 故 김병로 선생이 그의 할아버지다. 故 김병로 선생은 우리나라의 초대 대법원장이자 일제강점기 때 광복 운동을 했던 광복 운동가들을 무료로 변론해줬던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3. 위의 각주에 이미 설명되어 있듯이, 일제강점기 때 긍인 허헌, 애산 이인과 함께 독립 운동가들의 변호를 도맡아 하던 민족 변호사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4. 그 결과 민정당, 민우당, 신정당이 통합하여 국민의당(1963년)이 탄생한다.
  5. 김정렴의 회고록에는 김종인의 역할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다. 김정렴은 다만 1975년 개각 당시 의료보험 실시를 염두에 두고 보사부장관 인선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신현확을 발탁했다는 내용만 강조할 뿐이다. 당시 언론이나 잡지에도 김종인이 의료보험을 직접 다뤘다는 글은 특별히 없다.
  6. 오히려 당시 그의 주된 관심은 부가가치세를 비롯한 세제 분야였다. 관련기사 참조
  7. 자신의 출생지가 있는 서울특별시 관악구 을 선거구 출마.
  8. 당선자는 훗날 자신이 더민주 공천에서 떨어뜨리게 되는 평화민주당이해찬 후보였다.
  9. 사실 이는 김종인이 과거부터 이야기해온 '경제 민주화'와 관련이 깊은 제도다. 더 정확히 말해, 원래 궁극적 경제 민주화는 근로자가 경영에 온전히 참여하는 것이지만 단기간에 체계를 만드는데 사회적 저항이 있는 관계로,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 이전 과도기 단계로 근로자의 경영 직접 감시권 보장을 이룩하는 제도를 주장해 왔다.
  10. 상대가 공교롭게도 이해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