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중 하나
1 한국에서의 활동
본명은 신능균으로, 1939년 황해도 평산출신이며,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애니메이터. 어릴적부터 그림을 좋아해서 교과서 그림을 따라 그리는것을 하다가 본인에게 그림그리기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만화그리는 일을 찾다가 신동헌 화백에게 무작정 찾아가 문하로 받아달라고 떼를 써서 문하로 들어가 시사만화로 데뷔한다. 시사만화를 그리다가 전쟁이 끝난후 한국산업이 성장기에 오르자 광고계로 진출하여 기업들의 애니메이션 광고에 원화가로 데뷔하여 애니메이션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2 미국진출
그렇게 오랫동안 광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다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긴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해보기 위하여 70년대 초반에 애니메이션의 본고장인 미국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이 무작정 진출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일거리를 찾기위해 무작정 나선 거리에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을 찾는다는 한인 광고회사 직원의 제안에 월급 350달러를 받고 취직이 된다.(당시 한달 호텔비가 280달러였다고)
생계를 위해 광고회사 일 말고도 무려 17가지나 되는 직업을 전전하며 미국사회에 적응하고 광고회사 사장의 도움으로 가족들도 미국으로 초청해서 본격적인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이즈음 서양식 이름으로 넬슨을 도입한다.[1] 그렇게 오랫동안 광고계에서 활약한 넬슨 신은 자기도 모르게 애니메이션계에 소문이 나있었고 미국 애니메이션 협회에 가입된 애니메이션 회사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헐리웃 애니메이션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일을 하다가 넬슨 신의 재빠른 일처리 솜씨를 눈여겨본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의 제작을 돕게되고 스타워즈의 그 유명한 라이트세이버를 만들어 낸다.
이후 <핑크 팬더>, <지 아이 조(G.I. Joe)>, <판타스틱 4>, <심슨 가족>의 제작을 연이어 맡다가 완구회사 해즈브로의 요청으로 트랜스포머 1세대 등 80년대 당시 해즈브로가 관여한 애니메이션 작품의 연출을 돕게된다.
3 한국 복귀
마블 스튜디오로 부터 일거리를 받은 뒤 한국으로 돌아가 애이콤(AKOM)을 세우고 3년후에 사장이 되어 아직까지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인 <애니메이툰>을 아직도 발간하고 있다. 발간당시 정부에 찾아가서 발간에 관한 협조를 부탁했으나 정부관료는 개인에게 도움을 줄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을 당한다.
한국 복귀후 미국 현지의 외주제작 방식이 바뀌면서 자체 제작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되고 그것이 <왕후 심청>이란 이름으로 개봉을 했으나 저조한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참패한다. 언젠가 재개봉을 목표로 수정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네이버 캐스트의 그의 인생이야기가 자세하게 소개되어있다.#
'이렇게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계속 해즈브로 등 외국 업체와 계속 빌붙는 바람에 한국은 하청기지로 전락하고 국내 자체 기획 애니메이션 작품이 발전할 기회를 놓쳤다'는 식의 이야기가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나 팬덤에서 돌고있는 듯 하나, 여기서 다룬 내용(영어)을 보면 AKOM의 실력이 그렇게 뛰어난 것은 아니었던 듯 하다. (특히 "Prophet of Doom" 에피 얘기를 보면...) 이 외에도 TV Tropes 회원들은 AKOM의 다른 실수를 귀신같이 잡아냈다
- ↑ 특별한 이유는 없고 넬슨이란 이름이 맘에 들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