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명패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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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노무현대통령이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청문회 중, 묵비권으로 일관하던 전두환 前대통령이 퇴장한 이후 그를 제대로 청문하지 못했다는 무력감 때문에 명패를 팽개쳐 버린 사건.

사건의 배경은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으로 인한 민주화 열기 및 1988년 국회의원 선거 직후 국정이 여소야대로 개편됨으로 인해 <광주 민주화 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와 <제5공화국 비리조사 특별위원회>가 구성된 것이며, 이로 인해 5공화국 인사들에 대하여 증인심문 및 청문회를 개최한 것이 명패사건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일명 5공청문회라 불리는 이 자리에서, 전두환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대처가 정당한 자위권 발동이었다고 하며 일장 연설을 했고, 청문에 참여한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등 야당의 질문에 대해서는 묵비권으로 일관했다.[1]

이후 전두환이 끝까지 묵비권만 행사하다가 퇴장하자 당시 특위위원중 한명이었던 노무현은 분을 참지 못해 명패를 집어 땅에 내팽개쳤는데, 당시 청문회가 TV로 생중계되고 있었기에 이 장면 역시 전국민에게 그대로 방송되어 깊은 인상을 심어주며 '초선 의원' 노무현을 네임드로 탈바꿈하게 만들었고 이는 후에 노무현 초선의원이 대통령까지 당선되는 거대한 정치적 자산이 된다.[2]

인터넷이나 뜬소문으로는 '전두환에게 대놓고 명패를 던졌다'는 루머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와전된 것이며 본인의 면전에서 던지지는 않았다. 청문회 영상을 찾아보면, 전두환 퇴장 이후에 명패를 던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생전의 노무현 본인도 이런 루머가 "직접 던진 것이 아니다."라면서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3]

이 사건으로 그는 소신있는 야당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부각되어 많은 지지층을 얻게 되었다. 다만, 전직 대통령에게 무례하게 행동했다는 이유로 까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4]

다만 오해하기 쉬운데, 단순히 명패 사건이라는 돌발적인 사건만 가지고 노무현이 주목받았던 것은 아니다. 청문회에 참석한 의원들 중에서 날카롭고 조리있는 질문을 차분하게 던져서 일명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 몇몇 의원들이 있었고, 노무현은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의원이었다. 증인 및 여당의원의 잡아떼기 및 감싸기, 야당의원들의 한풀이성 고함들이 오고 가는 난장판 속에서 이들 청문회스타들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더욱 빛이 났다.

그리고, 이렇게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증인들을 몯아붙이던 모습이 해당 청문회의 중요성 때문에 매일 전국적으로 생방송되고 있었기에 더더욱 눈에 띄었다. 즉, 노무현은 명패를 던져서 갑자기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5공 청문회의 질의응답 과정 내내 보인 모습으로 유명해진 것이다. 명패사건은 그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던 노무현이 열받아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일종의 에피소드성 사건일 뿐이었다.

여담으로, 이 때 스타 정치인이 된 노무현을 가장 먼저 주목하고 대통령 후보로 여긴 곳은 다름아닌 조선일보였다. 그들의 성향이야 어쨌든 당시에는 반짝 스타일 뿐이었던 노무현을 장차 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의 잠재력을 가진 인물로 높이 평가했다.[5]
  1. 이때, 평민당의 이철용 의원이 전두환을 향해 달려가 '발포책임자 밝혀! 살인마 전두환!'이라고 외치다가 방호원들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2. 전두환의 묵비권 행사로 인해 청문회에서 아무런 대답도 듣지는 못했으나, 결과적으로 청문회 직후 전두환 내외는 백담사로 들어가고, 실질적 유배상태가 된다.
  3. 노무현의 책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노무현에게 "이왕 던질거면 헤드샷제대로 전두환에 맞추시지."라며 농담을 했다고 한다.(...)
  4. 지금이야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까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제 막 군사독재가 끝날 무렵,특히 TK에서는 이런 반응이 주류였다.
  5. 당시 노무현은 김영삼계 정치인이었고 김영삼과 조선일보의 관계가 괜찮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에는 조선일보가 노무현을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