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민주당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
신한민주당통일민주당[1]민주자유당
평화민주당/민주당(1990년)

500px

1 개요

진행 순서1987년: 신한민주당 창당과 통일민주당의 탈당, 창당[2][3]
11984년 12월 20일: 창당발기인대회(민주화추진협의회과 구신민당(1967년) 최고위원연합)
21985년 1월 18일: 신한민주당 창당
31987년 이민우 개헌투쟁노선에서 의원내각제 지지
3신한민주당(1987년)김대중, 김영삼 지지의원 포함 73명 분당 선언(1987년)
4통일민주당 창당(1987년 4월)

신한민주당의 다수파인 상도동계(YS)와 동교동계(DJ)가 1987년 4월 선도탈당해 창당한 정당.

그러나 대선 갈등으로 10월 말 동교동계가 탈당하면서 평화민주당을 창당, 상도동계와 일부 비주류가 남았다.

그 해 12월의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2위로 패배하고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제2야당(제3당)이 되었다. 약칭은 "민주당"이나 '통민당'이라고 호칭되기도 했다. 군부독재 시대 이래 약칭으로 민주당을 사용한 첫번째 정당으로, 후술하는 꼬마 민주당 세력이 평화민주당(잠시 신민주연합당)과 민주당(1991년)을 구성하면서 민주당의 계보가 2010년대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당의 색깔이 빨간색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고정된 색깔은 아니었으며, 주로 평민당의 노란색과 대비되는 87년 대선 시기의 이야기로 보인다. 아래에서 보듯 당 로고엔 적용되지 않았다.

2 창당과 분열

이민우 구상에 반대한 김영삼김대중의 "빅딜"로 1987년 4월 창당되었다.

창당 당시 용팔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정치깡패들의 테러로 온갖 동정표를 잔뜩 받은 상태에서 출발했고, 전두환 정권에 대대적으로 반발하며 6월 항쟁을 주도하였고, 결국 6.29 선언이 나오게 하는 기염을 토하였지만....

진행 순서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과 분열
1통일민주당 창당(1987년 4월)
2김영삼통일민주당 상도동계(1987년 10월 29일)김대중의 통일민주당 동교동계 탈당(1987년 10월 29일)
3김영삼통일민주당(1987년 11월 12일)김대중평화민주당 창당(1987년 11월 12일)

애초에 쌍두마차 체제로 움직이던 파벌이라 대통령 후보를 놓고 단일화에 실패해 벌어저 김대중 파벌이 탈당해서 평화민주당을 만드는 바람에 김영삼 파벌만이 남게 된다. 이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4],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부진을 면하지 못하여 제 2야당으로 전락했다. (득표율에서 2위를 기록했지만 정작 지역구에서 2등으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아, 당선자 숫자에서 평화민주당에 밀렸다.) 게다가 대통령 선거 직후 한겨레민주당으로 일부 양김이 아닌 세력들이 탈당했다. 하지만 한겨레민주당은 폭망.[5]

파일:Attachment/통일민주당/tongilmin.jpg
"이의 있습니다"의 사진기자로 유명한 당시 경상일보 김종구 사진기자의 사진 #

이후 평민당, 신민주공화당과 연합해 노태우 정권에 대한 정치적인 견제를 효과적으로 선보여 당시 리더십이 부족했던 노태우에게 물태우란 별명을 안겨주기까지 했었다. 도리어 초기에는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평민당보다 강경했던 측면도 있었다고.

3 위기와 3당 합당

강원도 동해시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후보 매수 사건으로 김영삼 총재의 측근인 서석재 사무총장이 위기에 놓이면서 김영삼의 차기 대선 자체가 위험해지는 상황이 되었다.

진행 순서1990년: 민주자유당 창당에 참여한 정당과 과정
1민주정의당(1981년)김영삼통일민주당 상도동계(1988년)신민주공화당(1987년)
2민주자유당(1990년)

이런 상황에서 노태우가 이미 김종필을 끌어들인 상황에서 김영삼을 꼬셔서 민주자유당으로 3당 합당을 해 버렸다. 당연하게도 재야를 중심으로 "김영삼이 민주화를 뒤로 한 채 군부와 야합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이에 대한 김영삼의 답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갔다."

1990년 2월 9일, 민정.민주.공화 3당 합당으로 민자당 창당

물론 3당 합당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쪽에서는 결국 야합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니 거꾸로 잡혀먹힌거나 다름없다고 폄하하지만, 당내 소수파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 하나회를 완전히 뿌리뽑아버리고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사실상 주도한 점은 긍정적이다. 물론 말년엄청난 흑역사를 겪긴 했지만....

3당 합당을 반대하면서 항의하는 노무현 초선의원
width=100%
width=100%
"이게 회의입니까? 이것이 어찌 회의입니까? 이의가 있으면 반대토론을 해야 합니다! 토론과 설득이 없는 회의가 어디 있습니까? 토론과 설득이 없는 회의도 있습니까?"[6] - 3당 합당에 반대했던 당시의 노무현 초선의원.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경력에 있어서 첫 정당이기도 한데, 이때 3당 합당을 반대하면서 잠시 유명해졌다. 합당 반대파들은 당에 잔류해 민주당(꼬마민주당)으로 재창당했다. 또한 통일민주당은 영원한 피닉스 이인제의 첫 정당이기도 한데, 그는 노무현과 달리 3당 합당에 참여했다.[7]

4 상도동계의 신한국당 장악

이들 상도동계 일명 "민주계"[8]는 김영삼 집권기를 거치며 신한국당의 주류가 되었고, 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면서 현재는 보수로 분류된다. 다만 김영삼도 정계를 은퇴했고, 세월이 오래 흐르면서 더 이상 단일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는 파벌은 아니다. 다들 알아서 각개약진.[9][10] 이로서 3당 합당을 계기로 보수정당도 민주화 세력의 후계를 자처할 수 있게 되었다[11]. 다만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덕룡, 문정수 등 김영삼계 일부 정치인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다.

5 정당 이미지

정당 이미지 색깔은 하얀색으로 태극기와 같은 하얀 바탕을 거울삼아 나라와 국민에 힘써 이바지한다는 의미로 쓰였으며 심벌마크는 파란색 원 안에 하얀 한반도를 본딴 무늬를 새겨넣었다.한민족이 백의민족이라는 점에서도 볼 때 한민족이 민주주의로 하나되는 정당을 표방한다는 일설도 있고 민주정의당전두환의 어둠에서 벗어나 광명어린 세상으로 가자는 뜻에서 하얀색을 정했다는 일설이 있다. 방송사 선거방송 때도 하얀색으로 나왔던 적이 있다.

6 역대 선거결과

  •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 김영삼 28.0% 낙선
  • 1988년 13대 국회의원 총선거 24.3% 59/299

7 통일민주당 출신 정치인

통일민주당 출신 정치인
소속기간이름직위비고
1987년 4월 ~ 1990년 1월 22일김영삼2대 총재자유당 3대 국회의원
민주당(1955년) 5대 국회의원
민정당 6대 국회의원
신민당(1967년) 7.8.9.10대 국회의원
통일민주당 13대 국회의원
민주자유당 14대 국회의원
※ 14대 국회의원직 사퇴
14대 대통령
신한국당 명예총재
1988년 1월 ~ 1990년 1월 12일노무현
통일민주당 13대 국회의원(부산 동구)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의 3당합당에 반발 탈당.
해양수산부 장관(국민의 정부)
새정치국민회의 15대 국회의원(서울 종로)
※ 16대 대통령
1987년 4월 ~ 1990년 1월 22일김무성의사국장
의원국장
※ 삼동산업(주) 대표이사
통일민주당 총무국장, 국회행정실장, 기조실차장
1994년 제48대 내무부 차관
김영삼 대통령후보 추대위 총괄국장
※ 제14대 김영삼 대통령후보 정책보좌역
※ 대통령 민정비서관, 대통령 사정비서관
신한국당 15대 국회의원(부산 남구을)
한나라당 16대 국회의원(부산 남구)
한나라당 17대 국회의원(부산 남구을)
※ 2007년 한나라당 박근혜 대통령 경선후보 조직총괄본부장
※ 2008년 5월 18대 총선에서 친박무소속연대 출마 당선(부산 남구을)
※ 2008년 7월 한나라당 복당 [12]
※ 15~18대 신한국당 한나라당 국회의원
새누리당 19대 국회의원(부산 영도)
2014년 7월 ~ 제16대 새누리당 대표
1987년 11월 12일 ~ 1990년 1월 22일이인제[13]대변인1.1987년: 김영삼의 권유로 통일민주당 입당
2. 1990년: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3당합당을 함.
3. 3당합당으로 창당한 민주자유당에 합류함.
4. 1995년: 민주자유당의 후계 정당인 신한국당에 합류
5.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 신한국당 경선: 이회창에게 패한 불복하고 탈당, 국민신당 창당
6.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
7. 2000년: 새정치국민회의의 후신인 새천년민주당 합류
8.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에게 패한 후 불복 / 탈당 / 김종필이 창당한 자유민주연합에 입당
9. 2005년: 김종필의 정계 은퇴/자유민주연합 탈당/심대평국민중심당에 입당
10. 2007년: 새천년민주당의 후신인 민주당에 재입당
11. 2008년: 민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이 합당한 통합민주당에 합류함
12. 2008년: 18대 총선 통합민주당 공천 탈락 후 불복/탈당/무소속 출마 후 당선
13. 2011년: 자유선진당국민중심연합이 합당한 자유선진당에 입당함
14. 2012년: 자유선진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가 됨. 당명 선진통일당 변경
15. 2012년: 10월 25일 선진통일당이 새누리당에 합당/새누리당에 합류함

8 관련 항목

  1. 민주당계 정당으로 분류되지만 이 당의 대다수가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며, 보수정당 내의 계파 중 하나인 민주계를 형성하기에 보수정당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2. 두산백관 신한민주당
  3. 한국근현대사전 신한민주당
  4. 이는 단일화 실패, 군인의 부재자투표의 사실상의 공개투표의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영향이 크다.
  5. 한겨례민주당은 박형오 1명이 당선됐으나, 평화민주당에 입당한다.
  6. 노무현 당시 초선의원의 격렬한 이 항의발언이 끝나자마자 바로 뒤에, "신당 창당을 위한 만세삼창을 하겠습니다."가 나오고 자화자찬을 하면서 만세를 부른다.
  7. 참고로 이인제는 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경기도 안양시 갑 선거구에서 당선되어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8. 상도동계와 민주계는 현재는 별 구분없이 사용되나 엄격한 의미에선 다르다고 한다. 1985년을 기점으로 이전 YS의 상도동 사저시절부터 정치적 운명을 같이한 사람들은 상도동계라 칭하고(김덕룡등이 포함 김무성은 막내), 1985년 이후 12대 총선을 전후하여 통일민주당시절에 YS측에 참가한 사람들은 민주계라고 구분한다고한다. 이인제,서청원,김광일등이 해당된다.
  9. 사실 2010년 이후에도 현역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옛 상도동계 인사도 거의 없다. 이건 오랜 라이벌이었던 동교동계도 마찬가지. 각자 보스도 이미 정치를 떠낫고, 다들 나이도 먹었고. 이제는 가끔가다 모여서 친목회나 하는 정도로 보면 된다.
  10. 참고로 3당 합당 당시 상도동계 가장 막내였던 '김무성'이 현재 60대로 새누리당에서 당대표급이다.
  11. 다소 애매한 개념이긴하다. 원칙적으로 민주화이전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 모두 진보적이라기보다는 보수주의에 이념적기반을 둔 정당이었기때문이다. 실제 5.16이전 집권당인 민주당도 신,구파 모두 반공을 기반으로한 보수주의에 신념을 두는 정당이다. 민주당이 진보적 색채를 띄게 된 것은 노무현정부이후부터이다
  12. 프로필
  1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