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광

Ken_Lo.jpg

이름노혜광 (卢惠光(간체),盧惠光(번체)[1]
국적라오스
생년월일1959년 3월 17일
신체182cm, 82kg [2]
가족배우자 여숙현[3], 아들 2명
무술 스타일무에타이, 태권도
데뷔1985년 영화 '타공황제'

1 개요

성룡의 보디가드 출신이자, 성룡의 스턴트 팀인 '성가반'의 전멤버이자 배우, 무술가, 스턴트 배우 겸 연출 기획가.
우리에게는 취권2에서 최종보스역으로 철권백두산이나 화랑의 게임에서나 볼법한 발차기를 맨몸으로 보여준 발차기의 대가. [4]

액션영화 팬이라면 너댓번 이상 봤을법한 무술영화 역사상 최고의 발차기 액션의 소유자. 절대 CG, 와이어 장비가 아닌 순수 백퍼센트 발차기다!

2 생애

1959년 3월 17일 라오스에서 태어났다. 지독하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가난을 피한 보금자리를 얻기위해 5살때 캄보디아로 이주했으나, 크메르 루주때문에 1975년에 태국의 우돈타니로 또다시 이주해야만 했다. 태국으로 이주한뒤에 생계를 위해서 어린나이임에도 무에타이를 배워 시합에 나갔는데, 노혜광은 타고난 골격과 강골에 신체조건이 현지 태국인보다 월등했으며, 8살부터 캄보디아에서 킥복싱을 수련해왔기 때문에 실력이 비약적으로 일취월장하여 중량급[5] 스타선수로 수차례 우승을 거머쥐었다. 거기다가 부수적으로 태권도를 수련하였다.
태권도를 배우게 된것은 그도 이소룡의 열렬한 팬으로써 쿵후를 배우고 싶었지만,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정통 쿵후를 배운 화교출신들이 없어 낙심하다가 이소룡이 태권도를 연마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수소문 끝에 우돈타니에 거주하는 탈북자 출신 한국인이 운영하는 태권도 도장을 찾아[6] 수련 했다고 한다.

3 홍콩으로 이주, 데뷔

1980년. 무에타이 챔피온을 해도 생계를 꾸려나가는데 부족하여, 지인이 홍콩에서 운영하는 여행사에 태국여행 현지 가이드로 일하게 된다.
이시절 노혜광의 무시무시한 실전 격투실력을 증명함과 영화계로 데뷔하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지는데, 당시 80년대 홍콩에는 '자유격투기'라는 격투기 시합이 있었는데 이 경기는 발리 투도를방불케하는 무규칙의 무시무시한 룰로 진행되는 시합이었다.
노혜광은 이 무시무시한 자유격투기 대회에서 무려 7회나 우승을 한 저력이 있으며, 시합을 구경하던 서극감독에게 눈에 띄게되어 1985년 '타공황제'에 킥복싱 선수 역할로 영화계 진출을 하게 된다.

4 성룡과의 만남

1986년. 가이드 일을 그만두고 홍콩의 한 나이트 클럽의 보안 책임자로 일하며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던중이였는데, 평소 노혜광이 근무하는 클럽에 자주 들리며 노혜광의 격투기 팬이였던 이수현(홍콩)성룡에게 노혜광을 소개해준다.
성룡 역시 노혜광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당시에 인기가도를 누리고 있는 성룡이 개인 경호원이 되어줄수 없냐는 제의에 노혜광은 흔쾌히 이를 수락하며 이때부터 성룡의 신변보호를 맡으며 함께하게 된다.
성룡은 노혜광의 뛰어난 무술실력에 감탄하여 자신의 영화나 홍금보의 영화에도 출연을 시켰는데 원체 무에타이로 다져진 탄탄한 무술실력이 베이스로 깔려있고 무술 센스도 뛰어나서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성룡의 성가반 스턴트 멤버로써도 활동하게 된다.
그의 출세작으로 알려진것은 누가 뭐라해도 1994년작 취권2. 이 작품에서 노혜광은 발차기 하나는 레전드급으로 기억되며, 오늘날 격투액션 영화 최고의 대결장면중 탑5안에 항상 드는 명장면을 연기했다. [7]

5 그 이후 활동

성룡의 영화뿐만 아니라 홍금보, 이연걸, 견자단 등 유명 액션배우들의 영화에 조연 내지 단역으로 출연하여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몇번정도는 준 주연급을 맡은적이 있긴한데 그 작품들은 아쉽게도 흥행에 실패했다. 90년대 초중반까진 악역 및 최종보스의 이미지로 카리스마가 넘쳤는데, 90년대 중후반이후부터는 이미지 탈피를 위해 코믹한 악당을 주로 연기했다. 근데 죄다 잘싸우는것 같다가 몇대맞고 멍들어 아파하거나, 안습하게 기절하는 굴욕적인 씬이 많아졌다.
국내에는 노혜광은 취권2정도, 혹은 정말 홍콩 액션마니아가 아닌이상 인지도가 극히 낮지만, 홍콩의 액션영화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성룡도 결코 무시못할 수준이며 서구권에서는 취권2의 현란한 발차기로 인해 그를 추종하는 매니아들도 있을 정도.
현재 곧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인지라 체격도 많이 줄고 액션의 빈도도 줄었지만, 여전히 조연과 단역으로 출연하여 코믹함이든 카리스마를 뽐내고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특히 격투기 선수였던 경험을 살려 사실감 있는 격투장면을 연출과 무술지도 또한 맡고 있다.

6 트리비아

  • 영화에서는 발차기가 주력이지만 실제로 복싱 실력도 프로 선수급이다.
  • 취권2의 마지막 결투 씬은 당시 감독이었던 유가량이 계속 지휘했다면 절대 볼수 없었다. 원래 유가량의 각본대로라면 노혜광과 그의 부하로 연출한 재미교포 스턴트맨인 박호성과 함께 협공으로 공격하는것이고 원래 촬영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하지만 성룡은 노혜광의 발차기 실력을 썩혀두고 싶지않아 유가량의 각본에 개입하여 다투면서 지금의 우리가 기억하는 전설적인 씬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 성룡의 경호원과 성가반을 그만둘때 월급도 못받고 내 쫒겼음을 폭로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노혜광이 이에 대해 해명하기로는 경호원 역할을 하면서 배우와 성가반의 스턴트를 하려니 육체적으로 너무 힘이들어 성룡에게 정중히 휴식을 요구하며 퇴사 요청을 했다고 한다. 허나 성룡이 그때 당시 작품들이 흥행에 실패를 하며 성룡역시 심기가 불편하던 시기였다. 그때 의지하던 노혜광이 그만둔다고 하자 의견이 오가던중 감정이 상했고, 결국 말다툼끝에 성룡이 썩 꺼지라는 듯이 쫒아내다시피 하여 그때 당시에는 연락을 한동안 끊은것은 맞다고 하였다. 연예티비의 인터뷰에서 성룡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다가 성룡과 금전적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경호원을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 시기가 성룡에게는 좋지않은 시기여서 스턴트맨 수당과 자신의 경호원 월급이 너무 늦어져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생겨 자주 다툰적이 있었다고 하며, 이에 대해 섭섭하였다라고 했을 뿐인데 돈도 안주고 쫒아냈다는것은 명백한 오보라고 해명 하였다. [8] 현재 성가반의 소속은 아님에도 꾸준히 성룡과 성가반 멤버들이 출연하는 영화에도 참여하고 있고, 성가반에도 무술지도를 해주고 있을정도로 성룡과 인간관계는 경호원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좋게 유지해나가고 있다.
  • 홍콩에서 무에타이 체육관도 운영중인데, 홍콩에서 열리는 무에타이나 킥복싱, 그외 격투기 시합은 의외로 그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실제로 홍콩에서 열리는 격투기 시합에 항상 그의 사진이 찍혀있을 정도이며, 자신이 격투기를 지도하여 시합을 보낸 연예인들도 있고 현역 격투기 선수들도 그의 문하생으로 수련중이다.
  • 견자단 주연의 영화 '특수신분'에서 전성기 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한 무에타이 실력, 특히나 유연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마작을 밟고 넘어지며 다리를 180도로 찢는 장면은 가히 압권.
  • 영화 살파랑2를 기획했는데 토니 쟈의 무에타이를 홍콩액션에 맞게 보정을 해주었다고 한다. 토니 쟈에 의하면 노혜광은 의외로 태국현지 무에타이계에서도 알아주는 선수인데, 노혜광은 중량급 최강자로 유명했다고 한다. [9]
  • 1994년작 취권2에서 그가 보여준 발차기 이후로 그를 능가하는 발차기를 보여줄수있는 배우도, 영화도 없다.
  1. 북경어 발음은 루 훼이광, 광동어는 라우 웨이 궝
  2. 180cm로 알려졌지만 181cm인 배우 고천락보다 근소하게 더 크다. 90년대 활동 당시 근육량이 늘어 80kg이 넘었다고한다.
  3. 배우로써 2006년 합의하 이혼
  4. 철권 개발팀이 백두산의 캐릭터를 처음 만들어낼때 노혜광의 발차기를 많이 참고했다.
  5. 현재 라자담넌 최고중량급인 72kg이하 미들급에서 활약했다.
  6. ITF로 추정
  7. 해외 무술영화팬들뿐만 아니라 액션배우들도 최고의 격투장면을 꼽으면 반드시 거론된다.
  8. 성룡 역시 방송에서 노혜광과의 일을 회자했고 ' 한때 내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형제나 다름없던 그를 그렇게 대하고나서 마음이 편하지 못했고, 사과할 기회를 자꾸 놓쳐버렸다'라고 말하자 노혜광이 스튜디오에 나타났고, 성룡은 폭풍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며 서로 울었다. - 유튜브에 영상이 있었는데 삭제됨. 관련영상 보유한 위키러는 추가바람. -
  9. 사실 노혜광은 키가 180이 넘고 평균체중이 80kg이라 당시 중량급 한계인 72kg급인 미들급으로 감량해서 뛰었다. 게다가 그시절엔 미들급의 중량급 선수층이 매우 빈약했다.왜냐면 태국 무에타이 선수들도 대부분 평균 62kg체중의 경량급 선수층이 많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