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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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중국 구역은 여행유의, 북한 구역은 여행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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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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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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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한민족만주족성지
북한중국 국경 사이에 있는 화산이며 북한에서는 가장 높은 해발 2,750m의 화산이다. 백두산의 최고봉 높이는 나오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른데, 대한민국, 북한, 중화인민공화국, 일본 4개국의 해발고도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인 것도 있고, 과거 측정의 정확성에 대한 의문 때문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2,744m는 일제강점기 때 측정한 것. 인공위성에서 정확하게 측정하는 방법이 도입되기 전에는 높이가 알려진 장소에서 삼각 측량을 통해 높이를 측정했었고 때문에 상당히 부정확했다. 백두산 높이가 2,750m라는 것은 그간 중국과 북한의 계산이고 2,744m미터는 한국과 일본의 계산이었다.

동시에 대한민국의 명목상 영토에서도 가장 높은 산이다. 량강도 삼지연군과 중화인민공화국 지린 성 사이에 위치한다. 대한민국의 명목상 행정구역상으로는 함경남도 혜산군 보천면과 함경북도 무산군 삼장면에 걸쳐 위치하고 있으며, 천지(용왕담) 전역은 혜산군 보천면 관할이다. 중화민국의 명목상 행정구역으로는 안둥 성(安東省) 창바이 현(長白縣)과 쑹장 성(松江省) 안투 현(安圖縣)에 걸쳐 위치한다. 천지는 창바이 현 관할.

한민족만주족의 영산이며 대한민국과 북한의 애국가에도 나온다. 고려시대에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 사전 중 중사(中社)를 지내는 제사터를 표시하는 지도에도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다. 고려시대에 서경에 세운 '팔성당'에도 호국 백두악 태백선인 실덕 문수 사리보살(護國白頭嶽太白仙人實德文殊師利菩薩)[1]이라는 신격을 모셨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있고,[#] 삼국유사에서도 신라에서 신성시하던 5대 산에 관한 전설을 보면 "이 산은 곧 백두산의 큰 줄기로, 각 대에는 진신이 늘 있는 곳이다."[#]라고 기록한 부분이 있어 신앙적으로도 백두산을 상당히 중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아래 항목에 나와있듯 백두산에 대한 신앙이 지금처럼 크게 두드러진 것은 근현대를 거치면서부터며, 그 전까지는 백두산이 유별나게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2 명칭

조선 국경에서 멀지 않은 산림 가운데 태백산, 즉 백두산이 구름 위에 솟아 있습니다. 이 산은 지금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청조(淸朝)의 시조인 한왕(汗王 누르하치)의 탄생지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유명합니다.
그 산 서쪽 비탈에는 그의 옛 집이 보수되어 보존되어 있는데, 중국인들은 그곳을 종교적 예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주 먼 지방에서 경건한 순례자들이 와서는 이마가 땅에 닿도록 조아립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페레올 고 요한[2] 주교에게 보낸 편지 中 [#]

백두산이라는 말은 『고려사성종 10년(981)에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난다. 13세기말 문헌인 『삼국유사』, 『제왕운기』에는 ‘태백산’으로 나온다. 단군신화, 부여, 고구려를 설명하면서 ‘태백산’을 무대로 언급하고 있다. 혼용되던 이름은 대체로 10세기 후반부터 백두산이라 불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김대건 신부의 편지 사례에서 보듯 19세기때도 태백산이라는 이름이 쓰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 이전부터 백두산 이외에도 장백산을 혼용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장백산이 심심찮게 나오며, 오히려 백두산보다 훨씬 더 많이 나온다.)

이 부분에 조금 부연설명을 하자면, 일단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단군신화를 설명할 때는 환웅이 자리잡은 태백산에 '묘향산을 이른다'는 주석을 달았으나 고구려 건국신화 부분에서 동부여 왕 금와가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유화를 만난 부분에서는 태백산에 특별한 주석을 달지 않았고, 다만 고구려=졸본부여라 하면서 졸본을 요동 인근으로 비정했는데, 지리적인 상황으로 보아 학계에서는 백두산으로 본다.[3] 반면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는 처음부터 태백산이라고만 적고 별도의 주석을 달지 않았으며, 부여, 옥저, 신라[4], 고례(高禮), 예맥이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보는 동시에 이승휴 자신이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 요하 근처의 무덤을 현지인들이 "이 무덤은 부여 부마 대왕의 무덤입니다"라고 증언하는 것과 요하 인근을 부여의 땅으로 기록하고 부여가 후조선[5]의 후예라고 기록한 가탐의 기록을 실어놓아 요하 일대와 백두산을 부여 영토로 비정하고 있다. 여기서 단군신화의 태백산을 일연이 묘향산이라고 주석을 단 데에는 백두산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설(서대석 교수의 주장), 묘향산이 불교의 성지라서 그 영향을 받았다는 설,[6] 백두산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면서 백두산 신앙의 요소가 묘향산으로 이동한 것을 반영했다는 설(최남선 주장), 고조선의 수도가 평양으로 이동하면서 평양 지역에 토착화되면서 변했다는 설 등이 있다.(단군 문서 참조)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가 자리잡혀가며 단군이 한국민족의 상징으로 등장하며 백두산의 위상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북한 김일성 정권의 (자칭)백두산 혈통, 단군릉복원 등과 남한 이승만 정권의 단군상 설립, 단기사용[7]이 한국인의 단군숭배를 상징한다.[8] 이러한 단군숭배사상과 맞물려 한국에서 백두산은 단군신화의 고향으로써 민족의 영산 취급을 받게 된다.

하지만, 백두산에 관련된 신화는 한민족뿐만 아니라 만주족(청나라)에게도 나타난다. 만주족의 기원신화의 중심지 또한 백두산이며 청나라 시절 백두산은 만주족의 영산으로써 매우 특별한 취급을 받았다. 이런 맥락에서 백두산을 단순히 한민족의 상징이라 보며 '백두산은 본디 한국땅인데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중국이 장백산화 시킨다' 라는 인식은 심히 잘못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산해경의 기록에선 불함산(不咸山)으로,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221∼589)에는 태백산(太白山)·도태산(徒太山) 등 여러 이명으로 불리웠다. 현대에는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통일되었는데, 이는 만주어로 '긴 흰 산', '큰 흰 산'이라는 뜻의 '골민 샹기얀 알린(golmin šangiyan alin)'[9]을 의역한 것으로, 역사적으론 , 금나라 시기부터 쓴 이름이다. 이러한 명칭은 9개월 가까이 눈이 쌓여있는 특색있는 산정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10] 즉 현대 중국 정부가 쓰고 있는 '장백산'이라는 표현은 유래에서 보듯 한족(漢族)의 용어는 아닌 것. '장백산', '백산'은 우리나라가 백두산을 지칭한 이름중 하나이기도 하다.
10세기 무렵 부터는 중국에서 대부분의 경우 장백산, 백산이란 명칭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 시기 고려에서도 장백산이란 명칭으로 많이 불렀고, 조선 시대에도 이어졌다. 지금의 백두산이란 명칭은 조선 말기에서나 빈도가 높아진다.

일본 NHK에서 북한 측의 협력을 얻어 백두산 일대의 식생을 50분짜리 자연다큐멘터리로 담아낸 적이 있는데, 여기서 볼 수 있는 백두산의 모습이 그야말로 '희고 긴 산'이다. 한국 측 미디어에서 대부분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그려내는 데 비해, 이 다큐는 삼지연 일대의 자연을 담고 있어서 밑에서 올려다보는 백두산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

영어권에서는 백두산이란 이름을 중국식으로 읽어서 Baitou Mountain이라고 하기도 한다. 한편 환빠들은 '밝달뫼'라는 어처구니 없는 명칭을 원래 이름이라고 홍보하고 있다.이른바 순우리말 이름이라고 도는 이름 가운데 10월이 하늘연달(개천절 때문)이라는 주장도 더 석연치 않게 하는 구석이다. 일단 공식 표기는 북한의 표기인 Paektu.

백두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이름은 병사봉(兵使峰)이다. 북한에서는 장군봉이라고 하는데[11], 장군봉이라는 작명을 한 사람은 김정일. 1963년 8월 백두산 방문시, 백두산의 최고봉 이름이 병사봉인 걸 알고 "수령님백두산이 낳은 장군님이신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병사봉일 수는 없다. 장군봉으로 고치게"라고 발언했단다. 그런데 백두산의 병사봉은 병사(兵士)가 아니라, 지금의 사단장~군단장 급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마절도(兵馬節度使)를 줄여 말하는 것이다. 북한 학자들이야 이를 모를 리 없겠지만 누구 말이라고 토를 달겠는가(...) [#]


3 국경선

6.25 전쟁 종전 이후 북한중국 사이의 새로운 국경조약인 조중변계조약 의해 현재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은 천지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참고로 이 국경조약을 보면 북한 방향으로 뻗은 백두산 천지의 54.5%를 북한의 영토로, 중국 방향으로 뻗은 백두산의 나머지 45.5%의 영토를 중국의 영토로 인정하는 조약이다. 정확하게는 16개 백두산 봉우리중 9개가 북한영토, 7개가 중국영토이다.

다만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조약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토 분쟁 여지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외교부에서 공식적으로 한국땅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정부 발행 지도에서 계속 자국 영토로 표시하여 백두산을 한국땅으로 주장하고 있다. 중화민국 역시 백두산 전체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있다.[12] 얼굴을 맞댄 쪽끼리는 어찌어찌 합의가 되었는데, 해당 지역에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쪽(대한민국, 중화민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해당 지역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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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는 중화민국이 주장하는 국경선이 빠져 있다. 아래 지도를 매의 눈으로 보면 보이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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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연

높은 위도와 고도로 인해 이 산의 정상부는 한국에서 가장 추운 곳이다. 10월부터 5월까지가 겨울이며, 1월 평균기온 -25℃, 7월 평균기온 7.8℃로 북극해 연안과 비슷한 기온분포를 보이며, 강수량은 1,500mm 정도로 많다. [1997년 1월 2일에는 무려 영하 51도가 기록되기도 했었다.] 한반도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한대기후에 속하는 지역이다.

백두산의 날씨는 눈, 구름, 안개, 폭우, 강풍, 혹한 등이 일반적이며, 연중 변화무쌍해 쾌청한 날씨를 찾아보기 힘들다. 9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겨울이며, 봄이 되면 곧 여름, 가을로 이어져 버린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기후가 급변하고 구름에다 안개로 가려져 백두산의 전경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날씨 좋은 타이밍 맞추어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보는 것은 행운이라 여길 정도다.

여름에도 갑자기 기온이 낮아져 방풍복을 준비해야 한다. 기온은 연평균 6도 ~ 8도, 최고기온 18도 ~ 20도이며, 연중 눈, 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일, 연중 강풍일수는 270일이다. 겨울 날씨가 1년 중 230일이다. 6월 초까지 눈에 덮여있는 백두산 등정은 한여름 장마철 보다, 6월 말에서 7월초, 8월 말에서 9월초가 적당한 시기이다.

백두산이라는 이름답게 정상 부분에 화산재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하얀 암석이 있다.눈이 없어도 어쨌든 백두? 현지 가이드들은 '100번 올라서 2번 천지를 보기 어렵다'고 지어졌다는 농담을 한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칼데라인 천지가 정상에 있으며, 이 천지의 수량은 20억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을 자랑한다. 천지의 수량이 이렇게 많다는건 문제가 되는게, 화산폭발할때 주변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것중에 하나인 화산재가 많이 발생한다. 휴화산들중에서 가장 칼데라의 수량이 많다 카더라 .

오늘날의 천지는 1000년전인 10세기 무렵의 폭발로 형성된 것이다.[13] 백두산이 천 년전엔 높이 3500m가량이었고 천년전 폭발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그 폭발은 천 년전이 아닌 훨씬 이전의 일이고 천 년전에는 주로 부석을 분출했다. 백두산에 안 가본 사람들은 백두산이 후지산처럼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 형태라고 생각하지만 백두산은 후지산과 달리 개마고원이 있고 주변에 2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막연한 상상과는 차이가 있다.


4.1 천지 괴수

천지에는 괴수가 산다는 소문이 있다. 증언에 따르면 네스호의 괴물을 닮았다는 이야기가 많으며 황소를 닮은 머리를 가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산해경 17권에 백두산에 산다는 괴생물 이야기가 나오기는 한다.

大荒之中 有山 名曰不咸 有肅愼氏之國‘ 有蜚蛭 四翼 有蟲 獸首蛇身名曰琴蟲
대황(大荒)에 산이 있는데 이름을 불함(不咸)이라 한다. 숙신씨(肅愼氏)의 나라가 있다. 비질(蜚蛭)이 있는데 날개가 넷이다. 짐승 머리에 뱀 몸통을 하였으며 이름을 금충(琴蟲)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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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스톤

위의 그림이 백두산에 산다고 산해경에 나오는 괴수 금충(琴蟲). 하지만 곽박이 산해경에 단 주석에서 금충을 '뱀의 일종'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뿐이라, 흔히들 생각하는 '천지에 서식하는 거대생물'과는 거리가 있다. 머리 부분이 특이하게 생긴 뱀이었을 것이다.

백두산이 10세기 무렵에 대폭발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에도 분출한 적이 있으므로 천지에 괴물이 산다는 소문은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는 헛소문에 불과하다. 천지에 정말로 괴물이 살았다 해도 이런 화산폭발 때문에 이미 옛날에 죽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1960년에 산천어를 천지에 푼 이후 산천어가 번식함을 확인하였다. 천지가 물이 맑고(먹잇감이 없고) 차가워서 산천어를 풀어도 그 안에서 살기 어려우리란 평이 지배적이었으나 결과를 보면 산천어가 살기 매우 좋은 환경인 듯. 천지에 사는 산천어는 몸집도 다른 곳에 사는 산천어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심지어 천지에 산다는 괴물에 대한 소문이 이들 대형 산천어 때문일 거라는 주장마저 나올 정도.[#][#]


5 화산

백두산은 여러번 분화를 한 기록이 있는 휴화산이다. 화산분출물이 층층히 쌓여 이뤄지고 정상에 대형 칼데라가 있는 전형적인 성층화산. 다만 후지산처럼 홀로 우뚝 선 건 아니고 그 옆의 개마고원은 과거에 유동성이 큰 마그마가 흘러서 넓게 형성된 순상(盾狀, 방패모양) 용암대지라 순상화산으로 보기도 한다.

서기 940년 경에 대분화가 있었고 소분화는 가장 최근에는 1903년에 있었고 자주 있는 편. 946년 대분화는 쌓인 화산재의 양 등으로 보아 화산폭발지수 7에 해당하는데 서력기원 후에 그정도 규모로 분화한 화산은 3개 뿐인 정도의 강력한 규모이다. 다만 한번에 큰 폭발로 끝난게 아니고 1-2년에 걸쳐 수차례 분화한 듯. 기록은 큰 450km 나 떨어진 개성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고 하고 1000km 떨어진 일본에서도 화산재 구름을 목격한 기록이 있다.

일본의 마치다 히로시라는 학자는 940년 경 백두산이 폭발해 발해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는 설을 주장했는데, 요사나 동시대 역사서에 백두산과 관한 언급이 없어 분화와 멸망의 인과 관계는 인정받지 못했다. 또 바람의 방향에 따라 중국쪽에는 거의 영향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2000년대 들어 화산 폭발 주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현재 백두산의 높이가 cm단위로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고, 지하의 마그마 층의 활동도 더 활발해졌다고 한다. 게다가 마그마가 천지로부터 바로 10km 아래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천지 주변의 열분포를 보면 지속적으로 지열이 상승 중에 있으며 지형도 안에서 찐빵 부풀어오르듯 커져 있다고 한다. 일본의 위성 관측상으로는 천지의 지면이 예전보다 2cm 가량 부풀어 오른 상태라고 한다. 거기다 이 마그마층으로 인해 달궈져 지표로 나오는 열수의 성분도 점점 변해가고 있다(...) 지진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2010년에는 떼가 출몰했다. 다만 전문가의 의견으로는 이건 그냥 화산의 징조라기보단 대량 방생으로 인한 출몰이라는 듯(…). 또 한 대북인권단체는 2010년 12월 김정일이 함경북도 무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2016년에 백두산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으니 백두산 인근 주택들은 철거하고, 철광 생산을 서두르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작년에는 2015년에 터진다고 했는데?

윤성효 부산대학교 교수에 의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백두산의 화산활동이 재개되는 것은 확실하며, 다만 그 시기가 약 100여년 정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100년 정도의 시간은 인간의 생애에 비해서는 긴 시간이지만 지질학적 스케일로 봐서는 정말로 찰나와 같은 짧은 순간이니, 곧 폭발한다고 표현하더라도 과언은 아니다.

화산이 폭발할 경우 경제기반이 취약한 북한 지역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공산이 큰데 규모 7 정도의 지진이 평양을 덮친다고 하며 골조도 없이 부실공사를 한 건축물이 대부분인 평양은 초토화 될 것이다.[14]20억톤에 달하는 천지의 물 때문에 폭발시 엄청난 화산재가 나오기 때문에[15]북한 뿐만 아니라 울릉도, 독도, 일본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고 한다. 당장 화산재 때문에 동아시아의 모든 항공편이 결항되며 상당수의 전자제품같은 정밀한 기술력을 요구하는 제품들을 생산하는 일본의 공장들도 미세먼지들때문에 가동을 중지시킬것이다. 관광산업도 모두 망한다. 태양력발전기들도 당연히 못쓰게되니 상당한 시설들이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없게된다. 장기적으로 전기도 역시 화산재때문에 제대로 쓰지 못한다.동아시아 항공편결항으로인해 피해를 입게될 한국조차 예상피해액이 11조원이니 일본은 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할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본을 덮어버린 화산재는 성에도 안차는지 이어도를 거쳐서 상하이,광저우,선전같은 중국 남부의 핵심 대도시들과 홍콩, 대만 그리고 더 멀리 날아갈 경우 호주 북부 및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멕시코 바하 칼리포르니아, 뉴질랜드까지 덮어버린다.[16]

그래서 북한도 이 백두산 화산 폭발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남측과 공동연구를 제의하는 등의 시도를 했었다. 일본 쪽에도 의견을 구했는데 인터뷰 상대인 일본 지질학자는 북한이 상당히 다급하고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을 남겼다. 그리고 북한 핵실험으로 마그마 층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졌단 얘기도 있으며 핵실험이 폭발을 유발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관련기사] 이렇게 되면 북한은 100% 망하고 주변 다른 불의 고리 축인 대만일본, 사할린 섬, 캄차카 반도, 필리핀, 인도네시아까지 연쇄 작용이 일어난다.[17]

1천년 전 있었던 백두산 폭발은 일본까지 날아가 화산재를 5cm나 쌓아둔 전례가 있다[18][19]. 왠지 음모론스럽게도 중국은 2005년부터 백두산에 관한 관측 자료를 비공개로 돌리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다면 2010.11.27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분을 참고해보자.

백두산이 대폭발한 946년 경 당시의 화산폭발지수(vei)는 7 정도로 1816년 탐보라화산의 폭발에 비하면 약간 약했으나 그래도 분출물의 양은 100여 세제곱km에 달했고 이는 2010년 4월 있었던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분출물의 약 1000배에 달한다.

여담으로 백두산 폭발 주장 때문에 1998년에 KBS 일요스페셜 특집으로 참고자료를 위해 규슈의 화산분화 현장을 찾아간적이 있었다. 당시 분화로 인해 튕겨나온 돌이 숲에 있는 도로 한복판에 떨어진 바람에 치우기가 여의치 않아 녹인(…) 일이 나온다. 어쨌거나 이 방송에서 백두산 분화 당시 일본에 쌓였던 화산재도 방송되었다.

2011년 3월 북한이 화해무드를 조성하며 백두산 화산관련 연구를 공동 진행하자고 제의를 해왔다. 남한은 민간 전문가를 파견하여 회의를 가졌으며 해당 회의에서 북한은 일본 지진을 언급하며 백두산의 위험을 환기, 연구에 협조를 요구 했다. 그러나 남한은 천안함 피격사건부터 연평도 사건까지 쌓인게 많은 상황이었으므로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북한도 4월부터 현대 아산의 금강산 사업권을 날려버리며 꼬장을 부리기 시작해 도루묵이 되었다.

최근 국내에서 백두산 화산폭발시를 모의실험한 결과가 공개되었는데, [동북아의 항공로가 완전히 마비되어 버린다고 한다.]그저 흠좀무.

2011년 11월 24일 북한이 [지진 화산 피해 방지 및 구조법]을 제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장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봄, 가을에는 남한에도 화산재가 유입될 수 있다고 한다. [봄·가을 북동기류 타고 화산재 남한 날아올 수도] 게다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휴화산이었는데 지금은 엄연한 활화산이다. 최근 천지 밑에 마그마방이 서너 개 발견됐기 때문이다.

단 화산 폭발과 지진 예측은 아직 인간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지질학 최대의 이루지 못한 숙원이라고도 불리는 분야이며, 더군다나 우리나라에는 화산 전문가도 몇 없다. 저에게 시간과 예산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 북한에 화산 연구하러 찾아가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백두산 분화에 대해서 딱히 무언가 답을 내는 것은 힘들다.

2016년 4월 국제 연구진에 의해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 서울 면적의 2배나 되는 마그마가 백두산 아래 5-10km 지점에 있는것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이 연구는 북한학자들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서방학자들과의 공동연구로 진행되었는데, 상기했다 시피 북한이 서방학자들까지 끌여들이는건 뭔가 백두산에 크든 작든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것으로 풀이된다. ['#']

다만 남한 입장에서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백두산이 다시 분화한다고 해도 946년 분화 정도의 초대규모 폭발일 가능성은 낮아 비교적 소규모로 끝날 수도 있고, 또 그 직전에는 상당히 강력한 전조현상이 없을 수 없으므로 어느날 예고없이 갑자기 덮칠 가능성은 적다. 충분히 대비하고 계속 감시한다면 사전에 주민을 대피를 시켜 인명 피해 등은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분화 후 화산재 피해도 중국과 북한의 백두산 인접지역에는 적지않은 피해를 미치겠지만 높이 올라간 화산재는 한반도 상공의 제트기류 때문에 대부분 동해 해상 쪽으로 집중되어 남한 쪽에 미치는 피해는 계절풍으로 인한 약간의 피해는 있을지언정 심각한 정도는 아닐 것이며, 오히려 제트기류를 탄 화산재가 낙하할 일본이 훨씬 더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간에 소규모가 됐든 대규모가 됐든 수십년내 분화는 확실해 보이니 충분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6 관광

우리나라의 경우 옛날에는 제도적으로 해외여행 자체가 어려웠던 시절인데다 냉전체제로 인해 북한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북한과 함께 적국으로 인식되던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을 거쳐 백두산에 가보는 것도 이상에 가까운 꿈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부터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고 19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과의 민간 교류가 시작되면서 일부 민간단체들을 중심으로 백두산 관광이 제한적으로 시작 되었으며, 이후 1990년대 초반 냉전이 완전 종식되고 우리나라와 중국의 수교가 시작되면서 일반인들도 중국을 통해 백두산 관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 제작된 칠성사이다 CF에서 백두산 장백폭포, 천지 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백두산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져 백두산 관광의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백두산 산행코스는 크게 두 갈래로 나눠지는데, 육로로 등반하는 서파코스와 자동차를 타고 올라가는 북파코스로 나눈다. 서파코스는 비교적 완만하여 짚차에서 내려 청석봉아래 5호 경계비가 있는 천지에 40여분이면 오를 수 있으며, 천지에서 청석봉까지 오르는 코스와 북파까지 종주하는 코스가 있다. 북파는 관광코스로 정상 부근 기상대까지 지프차로 오른 후 5분이면 천문봉에 올라 천지를 내려다보는 관광코스로서, 장백폭포 좌우로 한정된 부분만 오르는 산행코스이다. 관광으로 간다면 북파코스, 산행으로 간다면 서파코스를 권한다. 서파코스에는 서파 5호 조중경계비와 그 주변 경치, 경계선등 볼게 많은데, 특히 조중경게비 근방의 북한 땅 100m이내를 직접 돌아다닐 수 있어 서파코스를 통해 등산을 하면 북한 양강도 심지연 땅을 밟았다 할 수 있다! 즉,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위험하지 않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북한 땅을 밟았다 할 수 있는 방법[20]. 대부분의 백두산 여행상품들이 북한 접경지대 관광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백두산 관광은 북한을 상당히 근접해서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백두산은 관광지역이기 이전에 엄연히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다. 방문빈도가 높은 천지 구역은 대한민국의 명목상 영토에 속하나 북한은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조중변계조약으로 천지의 반절은 중국 영토로 되어 있다. 그렇기에 갈 수 있다는 역설. 대한민국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질적 영토인 '천지 서북부와 그쪽에 붙어 있는 육지'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민이 중국을 통해 관광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에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라고 되어 있지만, 북한 실효지배 지역을 거쳐서 등산을 하더라도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기소한 적은 없다.

천지구역은 북한과 국경으로 정확히 절반으로 갈리기 때문에, 정상 및 천지 부분에서 지정된 경로 및 구역 외에 함부로 이탈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정상 부근에 파견 나간 중국 공안들의 통제도 꽤 심하다. 한국인의 경우 백두산 정상 및 천지에서 태극기를 펼치거나 애국가나, 아리랑 등의 민족적 색체가 짙은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으며, 관광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사진촬영 조차도 상당한 통제를 받는데 중국 당국으로 부터 사전에 정식으로 촬영허가를 받은 특수한 경우말고는 일반적으로 백두산 천지 및 정상의 풍경을 담는 사진 촬영은 인물을 포함하는 기념사진 촬영의 범주에서만 허락되고 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경규가 간다에서 이경규가 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한라산 백록담에 퍼온 물을 백두산 천지에 담기 위해 백두산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아쉽게도 산행 장면은 방송되지 못 하고, 천지에 올라가 백록담 물을 천지에 쏟아 부은 장면만 방송되었다. 이후 1박2일에서 예능 프로그램 최초로 백두산 촬영허가를 따냈는데, 이를 준비하기 위해 6개월 이상을 소비해야 했을 정도다. KBS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뢰성 있는 공영방송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걸린거 보면 중국 당국에서 상당히 까다롭게 심사를 하는 듯 하다. 아무래도 중국 입장에서는 국경지대로서 보안상 예민하게 관리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고, 백두산 영토 문제와 관련하여 발생할 주변국과의 역사인식 충돌 및 마찰 등을 사전에 차단하려고 하는 느낌도 강하다.

중국 땅을 거쳐 가는 경우 이런 불편함과 눈칫밥을 감수해야 하다보니, 2000년대 초중반 북한과의 교류량이 많았을 때는 북한을 통해 백두산을 가보자는 목소리들도 많이 나왔다. 실제로도 정부에서 북한과 함께 금강산 관광에 이어서 북한행 항공편을 통한 백두산 관광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실무적인 문제 및 수익성 검토 등으로 인해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최근에는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인해 금강산 관광 조차 안전 보장이 안되어 중단 돼버린 현실 때문에 중국을 거치지 않고 북한을 통한 백두산 관광은 실현 가능성은 커녕 거론 자체가 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중국정부가 한국인의 백두산 관광 자체를 금지시킬 가능성도 약소하나마 존재한다. 중국이 북한과 맺은 계약을 거론하며 실질적인 지배세력임을 강조할 가능성이 크기에 여기에 대한 반론도 준비해야 할 중요성이 커진다. 한국이야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나 국제적으로는 북한 역시 하나의 국가로 간주하므로 실질적으로 한국이 대응은 거의 없다.

특히 백두산 서파 코스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통일부의 허락 없이 한국인들이 북한이 실효지배하는 이북 땅을 밟을 수 있게끔 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라고 하는데, 등산객들이 조중경계비인 서파 37호 근방의 몇백 미터 북한 땅을 거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것이 가능한 이유는 조중 국경지대의 특성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의 헌혈 기준에서 북한 지역 중 유일하게 여행시에도 헌혈이 가능한 지역으로 되어있다.


7 관련 문서

  1.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고려 인종 9년, 신해년(辛亥年), 1131년 (국역 동국통감, 1996.11.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3대 교구장
  3.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평안도에 있다고 나오나, 이는 태백산=묘향산으로 비정하여 적은 것이기 때문에 부여의 실제 위치인 만주 지역하고는 맞지 않는다.
  4. 원문에는 시라(尸羅)
  5. 기자조선을 말한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대로 기자조선은 없있다. 그냥 고조선이 있었을 뿐.
  6.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무려 360여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7. 당시 대부분의 책은 단기를 사용했다.
  8. 일제시대 이전에는 '우리는 단군의 자손' 이라는 말도 없었다.
  9. 한자로는 '果勒敏 珊延 阿林 山(과륵민 산연 아림 산)'. 현대 표준중국어 발음으로 읽으면 '궈러민 산옌 아린 산(Guǒlèmǐn shānyán ālín shān)'
  10. 만주어 명칭은 조선 영조 때 학자인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의 지행록(地行錄)에 '가이민 상견 아린(歌爾民 商堅 我隣)'이란 음차로도 기록되어 있다. 음차일 뿐인데 굳이 한자의 훈을 억지로 끼워 맞춘 해석인 '그곳 백성(爾民)이나 장사꾼(商)이 노래하는(歌) 굳센(堅) 우리(我) 이웃(隣) 산'(…)이란 말이 웹상에 떠돌지만 이는 지행록 역자의 오류인 듯. 지리지인 성경통지(盛京通志)에도 "'歌爾敏(가이민←골민)'은 '크다(≒길다)'는 뜻이고 '商堅(상견←샹기얀)'은 '희다'는 말이며 '阿隣(아린←알린)'은 '산'을 말하는 만주어"라고 되어 있다.
  11. 항간에는 원래 이름이 장군봉이었는데 일제가 비하할 목적으로 병사봉으로 고쳤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정작 일제가 붙인 이름은 대정봉(大正峰)이었다.
  12. 물론 중화민국이 타이완(타이민) 지구 이외의 지역에 대해서 특별히 나서지 않기 때문에 명목상에 불과하다. 과거 정부 발행 연감에서는 이곳이 아예 한반도가 아니라고까지 언급하기도 하였는데, 현재는 타이완 지구 이외에는 언급이 없다. 애초에 저런 곳까지 신경 쓸 정도로 상황이 좋아 보이진 않는다
  13. 시기상으로 따지면 발해가 멸망한 직후의 시기이다. 발해의 멸망 원인을 이 화산폭발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기상으로 발해가 망하고 10년 뒤쯤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대폭발 전에 지진 등의 이상현상이 있었다면 민심혼란이나 왕권약하 등의 문제는 생길 수 있는데 그 당시 자연재해나 이상현상은 왕의 부도덕함으로 신이 노했다.라고 생각하였기 때문(...)
  14. 이참에 북한의 핵시설도 아주 초토화 될 것이다.
  15. 폭발시 북한 양강도일대와 중국 지린성일대를 천지의 물이 시속100km의 속도로 덮쳐버려 물바다가되어버린다. 압록강,두만강,쑹화강을 타고 강일대의 주변지역까지 수장시켜버리는건 덤. 그리고 증발된 물때문에 비가오게되는데 예상되는 양이 시간당 800mm라고...집이 무너질 정도라고한다.시간당 200mm여도 엄청난 강우인것을 감안하면(...)
  16. 불의 고리의 끝자락인 한반도 동부에서 화산이 분출하면 연쇄 반응으로 일본-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뉴질랜드로 지진 및 화산 분화가 이어지고 반대쪽 편인 미 서부와 멕시코 북부도 지진이 일어나게 된다. 1985년 멕시코시티 대지진 급의 대형 재난(빅 원)이 캘리포니아와 멕시코를 덮친단 떡밥도 있다!!! 본격 세계 침몰
  17. 대만 양명산은 활화산으로 타이베이 근교에 있는 무서운 화산이다. 여기가 터지면 일본에서 후지산이 터진것과 동급 효과가 나타난다. 화산재 및 연무는 최소 오키나와홍콩, 최대 호주 북부까지 날아갈것으로 추정한다.
  18. 이것이 얼마나 강한 위력인지 감이 잘 안 온다면, 봄철 황사가 불 시기를 상각해보자. 황사철에는 온 하늘 뿌옇지만 쌓이는 양은 겨우 0.1mm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화산재를 바다 건너 일본까지 넘어가서 5cm나 쌓았다는 것이니 실로 엄청난 양의 화산재를 내뿜었을 것이고, 이를 통해 화산의 위력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19. 세인트 헬렌스 화산폭발의 100배의 위력이라 한다. 참고로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기록한 최대 위력은 350Mt로 차르봄바의 7배나 된다.
  20. 다른 방법은 판문점 견학. 휴전선에 걸쳐져 있는 군사정전위원회 건물 견학시 북한 쪽 출입구만 폐쇄하고 내부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북한 땅을 밟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