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Sir Nicholas Winton (1909년 5월 19일 ~ 2015년 7월 1일)
영국의 금융인, 군인, 체육인.
체코에서 나치에 의해 억류된 아동들을 구출하는 데에 앞장섰고, 그에 의해 1939년 한 해 동안 669명이 안전하게 영국으로 옮겨졌다. 이에 따라 '영국의 쉰들러'라고 불렸다. 영국 공군에 복무하며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MBC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서 관련 내용이 2015년에 방영되었다.
2 일생
침례계 기독교로 개종한 유태계 영국인 은행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1938년까지 니콜라스 윈턴은 증권거래소 직원으로 런던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날 휴가를 받아 스위스에 스키를 타러갔을때 친구 마틴이 그를 체코로 불렀다. 당시 체코는 나치 독일에 점령되어 있었고 때문에 수많은 유태인들이 수용소에 갇혀 지냈다. 수용소의 참상을 본 윈턴은 인도적 행위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영국에선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유태인 아이들을 대거 양자로 받아 이들의 목숨을 나치로부터 구하려는 행동이 한창이었지만 체코에선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윈턴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영국에 유태인 아이를 입양보내는 절차를 밟았다. 윈턴은 체코에서 나치의 위협을 받아가면서도 자신의 재산을 털어 주로 유태인인 669명의 수용소에 갇혔던 아이들을 주로 기차로 영국에 보냈다. 마지막으로 250여명의 아이들을 태운 기차를 보내려 했지만 그때 나치가 2차 대전을 일으켜 그 아이들은 행방불명되었고 모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1988년까지 40여년간 자신의 선행을 세상에 숨겼는데, 이는 자신이 마지막 250여명의 아이들을 구하지 못 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의 선행의 증거를 다락방에서 발견한 그의 아내가 그를 설득해 세상에 의로운 업적이 알려졌다.
니콜라스 윈턴이 구한 600여명의 아이들은 그가 다시 그들을 만났을 때엔 6000여명의 가족들로 불어나 있었다.
니콜라스 윈턴은 영국에선, 1983년 대영 제국 훈장 5등급(MBE) 수훈과 2003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 서임을 받았고, 체코에선 2014년 최고 권위의 백사자 훈장을 받았다. 니콜라스 윈턴의 생애는 그의 생전 3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니콜라스 윈턴은 "가능한 일이라면 가능할 방도가 있기 마련이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자신은 쉰들러 보다 못하다며 쉰들러와는 달리 전쟁 중에 목숨을 걸지는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녀론 2남 1녀가 있고, 올림픽에 펜싱 선수로 참가한 적이 있다.
니콜라스 윈턴 경은 106세에 딸과 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을 자다가 별세했다.
니콜라스 윈턴 자신이 유태인이니 당연한 일을 한것뿐이라고 할수도 있다. 하지만 당대에도 자신의 민족임에도 귀찮거나 무서워서 안 도와준 유태인이 훨씬 많았고, 니콜라스 윈턴처럼 본인 재산까지 써가면서 목숨 걸고 도와준 사람은 더욱 드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