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나치 독일
1.1 나치당
1919년부터 1945까지 존재했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나치 독일이 무서운 전쟁범죄(세계제2차대전, 유태인학살(홀로코스트)를 저지르는 데에 앞장섰다고 봐야 한다.
나치(Nazi)는 멸칭이며, 스스로를 부른 정식 명칭은 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공식 약칭은 NSDAP이다. '사회주의'를 당명에 담고 있으나 사회주의와는 전혀 다른 정책을 시행했으며, 오히려 노동탄압을 자행했다. (사회주의에서 전체주의 항목 참조)
1934년 독일 대통령이었던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사망한 이후 총리였던 아돌프 히틀러가 대통령까지 겸임하면서 총리 겸 대통령(=총통)으로 부상하면서 본격적으로 독일 전체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후 1938년 오스트리아를 강제병합하고 체코슬로바키아도 집어삼켰으며 일본, 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맺고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후, 1939년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을 시작하였다. 한때 영국을 제외한 유럽 전역을 석권하였으나 연합군의 반격으로 패전의 위기에 몰리고, 1945년 5월 아돌프 히틀러의 자살과 임시대통령 칼 되니츠의 항복 선언으로 완전히 해체되었다.
존속기간동안 제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유럽의 여러 나라를 침공하고, 유대인과 집시족 등 수많은 인종들을 조직적으로 대량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현재 독일에서는, 나치나 나치의 상징물을 사용하는 자들은 형법에 의하여 처벌하며[1] 이를 금기시하고 있다. 나치의 죄악에 연루되었던 이스라엘에서도 나치와 나치즘에 대해 금기시하고 있다. 나무위키에서도 나치를 찬양하는 논조의 서술을 편집지침으로 금지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와, 나치를 신봉하거나 나치적인 주장을 펴는 집단을 일컬어 네오 나치라고 통칭한다. 많은 경우, 민족적 정체성의 '보호'나 반유태주의를 주요 담론으로 내세운다. 대규모 이민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많은 유럽의 국가들이 이들의 주 무대로, 강력한 반나치법이 적용되고 있는 독일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2]
1.2 나치즘
1.3 나치스
1.4 욕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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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는 당연히 1번 항목. 특히 독일인을 욕하는 단어로 쓰인다. 독일인 앞에서는 사용해서는 안되는 말로, 나치가 현대 독일에서 어떤 위치와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독일인이 조롱을 했거나, 독일인과 싸우고 싶을 때는 써도 된다! 혐오발언에 속하므로, 한국인으로 비유하면 종북, 빨갱이 급의 욕설이다.1번 항목의 속성 때문에 타 의견을 압살하고 전투적이며 독선적인 주의자들을 나치에 비유해 욕하기도 한다. 따라서 다른 말과 합성돼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1.4.1 문법 나치(grammar Nazi)
위의 나치에서 유래한 신조어로, 사소한 오타나 문법 오류도 넘어가지 못하고 즉시 지적, 수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1.4.2 페미나치
위의 나치에서 유래한 신조어로, 페미니즘+나치. 독선적이고 무관용적인 전투적 극렬 페미니스트들을 말한다.
2 那智
일본의 지명, 인명. 한국어 표기는 '나치'로 동일하지만 위의 나치와는 아무 상관 없는, 그냥 이름일 뿐이다. 영문표기 역시 nachi로 1.의 NSDAP에 대한 폄칭으로 시작된 nazi와는 다르다.
2.1 성우 노자와 나치
2.2 일본 해군이 운용한 묘코(妙高)급 중순양함 2번함 나치(那智)
이름의 유래는 동맹국과의 우호증진 차원에서 그 동네 집권당 이름을 따서 지은 게 아닌 와카야마 현의 나치카츠우라쵸에 있는 나치산(那智山)으로 구레(吳) 공창에서 1924년 11월 26일 건조되어, 1928년 11월 15일 취역 후 1932년의 상해 사변시까지 경비함으로 운용되었다. 이후, 중일전쟁 기간인 1937년 8월 20일에서 24일에는 상하이 상륙작전에 동원되었고, 1941년 태평양 전쟁 기간에는 남방으로 파견되어 파라오, 다바오, 메나도, 암본 섬, 마카사르 공략 작전을 지원했다. 1942년 2월 17일에는 치모로 섬과 쿠판 공략 작전 참가 후 22일 스탈링 만으로 귀환, 24일에는 자바 섬 공략 작전을 위해 출항하여 27~28일 연합군 함대와 교전하였고, 3월 10일 북방함대에 편입되어 4월 11일에는 5함대의 기함이 되어 5월 26일 알류산 작전에 참가했다.
1943년 3월 7일~13일까지 앗튜 섬으로의 수송 작전에 참가하였고, 27일 앗튜 섬 해전에도 참가하여 미 해군 중순양함 솔트레이크 시티 등의 함선과 교전하였다. 9월 6일 오후 9시경 일본으로 귀환하던 나치는 미군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 3발 중 두 발이 후방 연통 부분과 함미에 명중했으나 운 좋게도 어뢰가 불발이었기에 약간의 침수 외에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1944년 10월 15일 대만 해협 항공전에서 미군이 대피해를 입었다는 오보를 접하고 잔존 미군을 격퇴하기 위해 중순양함 아시가라(足柄) 등과 함께 세토나이카이를 출발하여 17일 아마미 오오시마에 입항하여 18일 재출항, 21일 레이테 만을 내습한 미군을 물리치기 위해 2유격부대의 기함이 되었다. 25일 스리가오 해협에서 대파된 중순양함 모가미(最上)와 충돌하여 서로 손상을 입기도 했으며, 28일 마닐라에 입항하여 수리 후 11월 5일 다시 재출항했으나 마닐라 해역에서 미군 항공모함 렉싱턴에서 발진한 함재기들로부터 다수의 폭탄과 어뢰로 집중공격을 당하여 침몰당했다.
2.3 위의 함선을 모티브로 한 함대 컬렉션의 칸무스
- 나치 항목 참조
- ↑ 무조건...은 아니고, 조건이 생각보다는 널널하다. 독일형법 86조 제2항에서는 '제1항에 의한 선전물은 그 내용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및 국제적 이해와 합의에 반하는 문서만으로 한정한다'고 되어 있고(즉 나치 시절에 만들어진 표현물이라 하더라도 나치주의가 옅거나 없으면 금지되지 않는다는 이야기), 제3항에서는 '선전물 또는 선전행위가 국민계몽(예를 들어 '나치는 나쁘다'고 홍보하는 경우), 위헌적 계획의 저지, 예술, 학문, 연구, 학설, 시사 사건이나 역사의 진행 과정에 관한 보도(예를 들어 당대의 사건을 다룬 작품), 기타 이와 유사한 목적에 공하는 경우에는 제1항이 적용되지 아니한다.'라 되어 있다.
- ↑ 2004년경 한국인 관광 가이드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네오 나치로 추정되는 스킨헤드들에게 체인으로 후두부를 가격당해서 식물인간이 된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