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 전쟁 관련 정보
니하완드 전투 | ||
날짜 | ||
642년 | ||
장소 | ||
이란 서부 나하반드 | ||
교전국1 | 교전국2 | |
교전국 | 아랍 | 사산 왕조 |
지휘관 | 사아드 이븐 아비 와까스[1] 이븐 무크린† | 피루즈 호스로우† |
병력 | 30,000여 명 | 100,000여 명 |
결과 | ||
아랍 군대의 승리 | ||
기타 | ||
사산 왕조의 실질적 멸망 |
1 개요
아랍 군대가 이란의 니하완드에서 사산 왕조 군대를 격파한 전투. 이 전투의 결과로 결국 사산 왕조는 실질적으로 멸망한다.
2 배경
아랍군은 637년 까디시야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대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2], 이듬해인 637년 3월 사산 왕조의 수도 크테시폰을 함락시킨다. 이로써 티그리스 서부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아랍 군대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3 전개
4 결과
전투 이후 사산 왕조의 마지막 황제 야즈데게르드 3세는 동쪽으로 도망쳤으나 결국 메르브에서 살해당한다.[3]
이 전투에 대해 파키스탄의 시인 무함마드 이크발은 "만약 당신이 내게 이슬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이다: "페르시아의 정복". 니하완드 전투는 아랍에게 아름다운 나라뿐만 아니라 고대의 문명을 주었다...(생략)"이라고 평했다.[4]- ↑ 까디시야 전투에서도 지휘관을 맡았다.
- ↑ 자세한 내용은 까디시야 전투 항목 참조
- ↑ 그의 후손들에 대해서는 야즈데게르드 3세 문서 참조
- ↑ If you ask me what is the most important event in the history of Islam, I shall say without any hesitation: “The Conquest of Persia.” The battle of Nehawand gave the Arabs not only a beautiful country, but also an ancient civil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