段疾陸眷
(? ~ 318)
311년에 대군, 상곡, 광녕 등에서 백성들이 유곤에게 귀부하자 왕준이 화가 나서 재상 호구를 파견했는데, 단질육권은 왕준의 요청으로 호구와 함께 백성들을 귀부시키기 위해 파견된 유희를 죽이고 대군, 상곡, 광녕의 백성들을 약탈했다.
312년에 왕창과 함께 후조를 양국에서 공격해 북쪽의 성을 공격했는데, 그 와중에 단말배가 붙잡히면서 석륵이 이를 이용해 단부와 화친하고자 했다. 석륵이 화친을 요청하자 단문앙이 인질을 무시해 석륵을 잡자고 했지만 이를 거절했으며, 석륵의 화친을 받아들여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313년에 왕준이 군사를 요청해 석륵을 공격하고자 했지만 단질육권은 이를 거부했으며, 왕준이 탁발의로, 모용외 등을 끌어들여 단질육권을 공격하고자 했다. 모용한의 공격으로 도하, 신성 등을 빼앗기고 탁발육수를 패배시켰다. 317년에 단필제가 격문을 보내 고안에서 석륵을 토벌하기로 했지만 단말배의 설득으로 이에 응하지 않았고 318년 정월 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