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표기 : David Lemieux
국적 : 캐나다
출생지 : 몬트리올, 퀘벡, 캐나다
출생연도 : 1988년 11월 22일
신체 : 신장 177cm, 윙스팬 178cm
전적 : 38전 35승 (32KO) 3패 (2KO, 1판정)
북미 싸움꾼들의 고장 퀘벡 출신의 만 27세 하드펀쳐이자 전 IBF 세계챔피언.[1]
양훅과 스트레이트를 활용한 공격 일변도의 경기로 관중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KO율 91%의 미들급 최고 하드펀쳐 중 한명.
1 개요 및 평가
끊임없는 성장의 아이콘
퀘벡 종합격투기에 이 남자가 있었다면 현 퀘벡 복싱계에서는 르뮤가 라이징 스타
하지만 사장을 잘못만나 너무 일찍 우주굇수를 마주하게 된 불행의 아이콘.[2][3][4]
라이트헤비급에서 활동중인 아도니스 스티븐슨 그리고 장 파스칼과 함께 현 캐나다 복싱계의 강타자 중 한명이다. 커리어에 3개의 검은 별을 달긴 했지만, 첫 2개의 검은 별을 달게 된 이후 새로운 코치를 만나 훈련한 뒤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며 자신에게 검은 별을 달아놓은 2명의 선수들이 넘볼 수 없는 위치까지 성장했다. 비록 게나디 골로프킨에게 압도적인 기량차로 패하긴 했지만, 예전보다 훨씬 강해진 맷집과 투지로 기존 복싱팬들에게 제법 강한 인상을 남겼다.
빠른 핸드스피드와 가벼운 몸놀림을 앞세워 측면에 꽂아넣는 양훅이 일품이며, 바디샷도 상당히 강한 편이라 가드가 강한 선수를 상대할 때에는 바디블로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5] 몸의 체중을 싣어 내뻗는 스트레이트 역시 일품이라 수많은 선수들이 이 공격에 나가떨어졌다. 새로운 코치진을 만난 이후 맷집도 늘어서 웬만한 블로우로는 쉽게 다운되지 않는다.[6]
하지만 상당한 발전을 보였음에도 한두가지 정도의 약점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 중 하나는 잽의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새로운 코치를 만난 이후 이 점이 상당부분 개선되긴 했지만, 골로프킨과의 경기에서 보여주었듯 동등한 신체조건을 갖춘 골로프킨을 상대로 첫 1라운드동안 잽을 단 한번도 맞추지 못한 것을 보아서는 잽을 어떻게 섞어야 하는지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예전의 과감한 인파이팅 습관을 아직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는 점 역시 불안요소로 지적되며, 양훅을 제외한 펀치를 날릴 때 스텝이 꼬인다는 점 역시 골로프킨에게 완벽하게 간파당했고, 이 때문에 골로프킨의 개인 통산 한경기 최다 잽 성공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다만 아직 르뮤를 조금은 지켜볼 필요가 있는 이유는 여전히 르뮤가 한국 나이로는 스물아홉이자 만으로 스물일곱인 젊은 파이터라는 점에 있다. 미구엘 코토와 같은 파이터들이 서른을 넘긴 시점에서도 코치를 잘 만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등 성장세를 거듭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20대인 르뮤 입장에서는 여전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이야기이다.
2 유년기
프랑스인 아버지와 레바논계 아르메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가 아르메니아인 남성과 재혼하며 아르메니아인 부모 밑에서 길러지게 된다. 어려서는 학교를 잘 다니지 않고 길거리에서 싸움을 하며 보냈고, 이 때문에 학교에서 퇴학조치를 당했다. 다행히도 르뮤의 싸움실력을 눈여겨본 지역 코치 밑에서 복싱을 시작하며 인격적으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물론이고, 복싱선수로서의 두각을 어려서부터 드러내기 시작했다.
3 프로 커리어 초기
르뮤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3번 연속으로 캐나다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대표팀의 희망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 선발전에 참가하는 것을 포기하고 곧바로 프로로 전향했는데, 그 이유로 캐나다 아마복싱의 침체와 캐나다 아마복싱협회의 미흡한 지원이 한 몫을 했다고 한다.
프로 전향 이후부터 첫 20경기를 연속 KO 또는 TKO로 장식하며 캐나다 주니어미들급과 미들급의 역대급 강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20번째 경기에서는 미국의 델레이 레인즈를 넉아웃시키며 세계복싱평의회 (World Boxing Council, WBC) 대륙간 챔피언에 올랐다. 당시 나이는 한국 나이로 스물두살. 그야말로 르뮤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하지만 상대한 선수들의 이름값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고, 결국 마르코 안토니오 루비오 [7]와의 경기에서 펀치러쉬를 퍼붓다 제풀에 지친 뒤 7라운드에 루비오에게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얻어맞고 다운당한 데미지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넉아웃되며 경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 르뮤의 펀치가 공격적이긴 했지만, 미들급에서도 맷집 하나로는 알아주는 루비오를 쓰러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부분, 그리고 르뮤의 상체 움직임이 단조로워 루비오 입장에서 카운터를 맞추며 데미지를 쌓아가기 쉬웠다는 점이 르뮤의 결정적인 패인이었다.루비오전 하이라이트 영상 이 경기 이후 가진 고향 라이벌 요아킴 알신과의 경기에서도 다수결 판정패를 당하며 전략이 완벽하게 간파당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으며, 상위 컨텐더 자리에서 점점 멀어지는 듯 보였다.
4 커리어 중반 및 현재
하지만 루비오전 패배 이후 현재 자신의 코치인 마크 램지를 만나면서 르뮤의 커리어에 큰 전환점이 오게 된다. 비록 알신과의 경기에서는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패했지만, 이후 가진 경기들을 보면 발전이 두드러진다.[8] 비록 예전만큼의 평가를 받지 못해 8라운드 경기를 뛰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2라운드 경기에 복귀했고, 페르난도 게레로, 가브리엘 로사도[9], 그리고 미들급 문지기이자 넉다운 6번 당하고도 다시 일어나는 좀비인 하산 은담 은지캄까지, 예전같았으면 힘겨워했을 상대들을 가볍게 꺾으며 IBF 챔피언 자리에 오르게 된다. 특히 이전에 상대했던 루비오만큼이나 강한 맷집으로 유명한 로사도를 상대로 강력한 바디블로우와 어퍼컷을 꽂아넣으며 다운을 빼앗아낼 정도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캐나다 복싱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로사도전 풀영상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게나디 골로프킨과의 경기가 성사되며 커리어 사상 첫 PPV(Pay-Per-View, 시청을 위해 별도의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경기를 말한다.) 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미들급에서도 손꼽히는 파워와 스피드로 무장한 르뮤였기에 복싱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경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골로프킨이 빠른 스텝과 강력한 잽 및 앞손 스트레이트로 르뮤의 안면에 멍자국을 남기기 시작하며 이번에도 골로프킨이 12라운드를 채우지 않고 경기를 끝낼 것임을 암시하게 했다. 5, 6라운드 중반에는 르뮤가 골로프킨의 안면에 강한 스트레이트와 훅을 집어넣으며 순간적으로 골로프킨을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골로프킨이 슬립 앤 스웨이와 숄더롤을 이용해 잘 빠져나왔고, 골로프킨이 점차 르뮤의 펀치 강도에 익숙해짐에 따라 르뮤의 컴비네이션 시도는 모두 단발성에 그쳤다. 골로프킨의 바디샷에 다운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한 끝에 르뮤는 결국 8라운드 막판 라이트훅과 바디샷 그리고 원투훅으로 이어지는 컴비네이션을 허용했고, 이를 보다못한 심판이 경기를 중단하며 커리어 사상 두번째 TKO패를 당하고 말았다.[10] 하지만 과거에 비해 훨씬 강해진 턱과 유연한 움직임으로 예전이었다면 접근조차 하지 못했을 골로프킨에게 몇차례의 타격을 성공시켰으며, 골로프킨이 이전처럼 과감한 전진스텝을 밟지 않고 사이드스텝과 백스텝 등으로 경기를 유연하게 풀어가는 데 집중했을 정도로 정면승부에서의 파괴력만큼은 인정받았다. 그 때문인지 골로프킨이 최근 자주 보여주던 노가드로 펀치 몇 대 맞아주는 팬서비스도 안 나왔다.
비록 패배했고, 챔피언벨트까지 빼앗겼지만, 여전히 르뮤는 명실상부한 타이틀컨텐더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챔피언이 아니기 때문에 바로 다음 경기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름값이 떨어지는 선수인 미국의 글렌 타피아와 맞붙게 되었다. 글렌 타피아는 사울 알바레스와 이시다 노부히로에게 일방적인 구타를 당하며 실신 넉아웃 참패를 당한 제임스 커클랜드[11]를 상대로 고전하다 레프리스탑 TKO패를 당한 바 있는, 즉 최상위 컨텐더와는 거리가 있는 선수였고, 10라운드제로 치러진 경기임에도 르뮤가 4라운드에 기어코 넉다운을 빼앗아내자 타피아의 코너에서 경기를 중단시켰다. 골로프킨과 르뮤의 경기가 골로프킨에게 유리한 미스매치였다면, 르뮤와 타피아의 경기는 르뮤에게 유리하게 돌아간 미스매치였을 정도로 르뮤의 일방적인 우세가 돋보였던 경기였다.
5 기타
외모로 따지면 미들급 통합챔피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다. 다만 평소에 말이 없는 조용한 성격과 날카로운 인상 때문에 사울 알바레즈에 비해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 아쉽게도 게나디 골로프킨을 만나 TKO 패배하며 IBF 챔피언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 ↑ 델라호야 프로모션의 현재 주력 스타는 사울 알바레즈이다. 현재 WBC 정규챔피언인 알바레즈에게 골로프킨이 도전장을 던지자 델 라 호야가 알바레즈를 지키기 위해 프로모션 내 차기 스타의 가능성이 있었던 르뮤를 내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르뮤는 골로프킨에게 역부족이었으며, 알바레즈 대신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 ↑ 호야의 독단적인 선택은 아닌게 르뮤는 IBF 타이틀전을 앞두고 있을 때도 다들 골로프킨을 피하는데 나는 골로프킨 안무섭다. 내가 타이틀을 획득하면 다음엔 골로프킨과 시합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다녔었다. 어찌보면 약속을 지킨 셈
- ↑ 다행히 얼마 전 알바레즈 vs. 칸 코메인카드에 출전해 미국의 글렌 타피아를 4라운드 TKO로 꺾으며 여전히 건재함을 알렸다.
- ↑ 과거에 당했던 패배들이 모두 잽과 바디블로우의 부족으로 인해 단조로운 공격패턴을 간파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본인과 새로운 코치진이 가장 절실히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마르코 안토니오 루비오와의 경기에서는 루비오의 가드 위로만 일방적인 공세를 퍼붓다 카운터 몇방에 두어차례 다운을 당하며 무너졌다.
- ↑ 실제로 아래의 루비오전 영상과 로사도전 영상을 살펴보면 르뮤의 체형과 경기전략이 상당부분 변화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루비오전에서의 르뮤는 상대적으로 슬림하고 목선이 뚜렷한데다가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고 무작정 주먹을 내지르며 경기하는 편이었다면, 로사도전에서의 르뮤는 상체를 한껏 숙이고 전후좌우로 움직이며 펀치의 각을 찾는 자세가 돋보일뿐만 아니라 목 역시 상당히 두꺼워져 로사도의 어퍼컷과 훅을 연속으로 허용하고도 다운되지 않고 카운터를 적중시키는 강력함을 보여준다.
- ↑ 멕시코의 전 챔피언 출신 하드펀쳐. 커리어 중 넉아웃 패배가 게나디 골로프킨전 이외에는 없을 정도로 맷집이 좋은 선수이다. 미들급에서 활동하며 꽤나 굵직한 족적을 남겼으나, 워낙에 스피드가 느리고 투박해 최상위권 도약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넉아웃시킬 수 있는 펀치 파워와 12라운드 내내 웬만한 펀치러쉬를 견뎌낼 수 있는 강인한 맷집은 여전히 루비오를 위협적인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요소.
골로프킨전 패배만으로 이 선수를 평가하기에는 골로프킨의 펀치력이 사기적이다 - ↑ 반면 르뮤전 승리 이후 알신의 경기기록을 보면 안구에 습기가 찬다. 르뮤전 승리 이후 내리 5연패를 당했고, 가장 최근에는 KO율이 44%에 불과한, 파괴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저말 샬로에게 TKO패를 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물론 한국 나이로 41세인 노장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둘의 행보에 엄청난 격차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 ↑ 슈퍼웰터급에서 미들급으로 월장한 미국의 강타자. 미들급 컨텐더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인한 맷집과 정확한 펀치가 장점이다. 하지만 골로프킨과의 경기를 비롯해 커리어 사상 TKO패가 모두 닥터스탑과 코너스탑으로 이루어졌을 정도로 피부조직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르뮤를 상대로 기록한 TKO패 역시 눈가가 찢어지며 출혈이 심해지자 코너와 레프리 그리고 닥터가 상의한 뒤 경기를 중단한 것이다. 경기 내용으로 보았을 때에는 착실히 자신의 할 일을 하나, 안면 열상에 의한 출혈 때문에 경기를 멈춰야 하는 상황에 자주 직면한다.
- ↑ 경기 중단 직전에 르뮤가 심판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왔는데, 사실 그것은 본인이 다운을 당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그것이 경기를 중단해달라는 요청으로 받아들여진 부분에 있어서 르뮤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하겠으나, 해설위원 및 전문가들은 대부분 적절한 시간에 경기를 중단했다고 판단한다.
- ↑ 물론 커클랜드가 약한 선수는 아니나, 상대적으로 과대평가된 부분이 없잖아 있는 선수이다. 초반 방어에 큰 문제를 드러내며, 맷집 역시 강하지 않아 매번 불안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이고, 이시다 노부히로를 상대한 경기에서 일본 복싱 역사상 길이 남을 업셋의 희생양이 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 ↑ 경기력에 비해 팬이 적었을 뿐이지, 레녹스 루이스는 미국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당대 중량급 복싱 최고 흥행카드 중 하나였다. 영국인이라는 점 덕분에 영국에서도 인기몰이를 했으며, 그가 메인카드로 나서는 경기 역시 매번 티켓이 매진될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자랑했다. 그래도 엄청 대단한 선수였다고 팬들이 판단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