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발톱 작전

Operation Eagle Claw
델타 포스의 사실상 첫 실전 투입이자 처참한 실패 작전으로 악명 높다.

구출작전을 준비하는 델타 포스 대원들.

1 작전의 발단

1979년, 이란에서의 이슬람 원리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이란 미국 대사관이 이란 혁명수비대에 점거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의 전개는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항목 참조.

2 작전의 준비, 그리고 시작된 삽질

이 작전은 대테러전 능력을 언론플레이 강조하며 입지를 쌓아왔던 델타 포스에게 찾아온 첫번째 실전의 기회였다. 문제는 당시 미군과 정보기관이 좀 많이 개판이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CIA는 반 팔레비 시위대가 테헤란을 뒤덮고 있는 데도 팔레비 왕조의 통치능력 굳건함. 이란내 정세 안정적 따위의 정세분석 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하고 있었다. 당시 CIA의 이란 지역 정보수집이란게 독자적인 정보원은 거의 없고, 팔레비 왕조의 비밀경찰 보고서를 그대로 복사하는 수준이었다. 이건 미 국무부나 국방부도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협력관계를 이어온 팔레비 왕조의 외교관 및 이란군 인사들의 공식적인 주장만 듣고 실제 이란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심지어 주 이란 대사는 팔레비 2세와 하버드대 동창생이였다는 이유만으로 임명된 정실 인사였다.

거기에다 냉전기간 동안 비대해진 정보기관을 정리한다는 카터 행정부의 정책으로 수많은 인력들이 감축된 상황이라 이란 내에 있는 CIA 요원이 단 한명도 없는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국무부, 국방부 그리고 CIA 등 모든 정보기관이 하나같이 이란 정세를 안정적이라고 계속 평가했기 때문에 인원감축 과정에서 이란 지역 요원들이 축소된 것이다. 별일 없다는데 굳이 요원을 상주시킬 필요가 있냐느냐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중동지역에서 유일하게 서구화된 친미국가에 오랜 기간 팔레비 왕조의 독재가 이어져오고 있다는 겉모습에 다들 홀린 것이다. 그탓에 델타 포스의 초기 정보수집은 고작 TV 뉴스화면을 통해 이뤄져야 했다.

그 못잖게 심각한 문제는 작전계획 수립단계에서 숟가락을 얹어보려는 각군의 이해관계가 뒤엉켜 점점 복잡해졌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 나온 작전계획은 대충 이러하다.

1단계 : 4월 20일, 07시 30분 델타 포스가 현지에서 도움을 줄 이란인들과 합류한 뒤 수송기 편으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한다. 여기서 대사관 구출과 동시에 이란 외무성으로 분산 격리된 인질들을 구출할 그린베레 작전팀과 합류해 이집트로 이동한다.

4월 21일, 이집트에서 최종 리허설과 작전 정보를 갱신한뒤, 24일 오만 근처의 마시라 섬으로 이동, 18시에 작전 병력과 장비를 수송할 3대의 MC-130과 헬리콥터 연료를 탑재한 3대의 EC-130기로 이란을 향해 출발한다.

2단계 : MC-130 1번기는 다른 수송기들보다 먼저 이란 영공에 도착해 수송기의 착륙지점인 LZ '데저트 원' 상공에 도달해 미리 정찰팀이 준비해둔 비컨을 원격 조종으로 작동시켜 위치를 확보하고, FLIR로 주위를 살펴본 뒤 데저트 원에 착륙, 이후 다른 수송기 5대도 착륙해서 델타 포스와 델타 포스의 지원을 담당한 레인저 대원들을 내려 LZ를 확보. 이어 항공모함에서 작전수행에 필요한 8대의 RH-53D 헬리콥터들까지 도착하면 연료를 실어온 EC-130기들이 RH-53S에 대한 재급유를 시작하는데, 이 때, 헬리콥터가 6대 이하라면 작전은 취소함. 필요한만큼의 헬리콥터가 확보된다면 최소한의 작전요원들을 탑승시킨 뒤 일출 1시간 전까지 새로운 은거지점 '데저트 투'로 이동하고, 수송기들은 레인저들을 탑승시킨 뒤 다시 마시라 섬으로 복귀한다.
데저트 투에 도착한 헬리콥터들은 대원들을 내려주고 다른 은거지점 '피그바'에 가서 헬기를 위장시켜 숨긴 뒤 대기. 델타 포스는 이미 현지에 침투해 정보수집 및 은거지 구축을 하고 있던 델타 포스 선발대와 접선한뒤 테헤란 근처의 와디에 도착해 낮 동안 대기.

3단계 : 선발대원 2명이 동이 트기 전에 테헤란으로 돌아갔다가 밤이 되면 1대의 픽업 트럭과 1대의 버스를 타고 델타 대기지점으로 합류. 두 차량중 하나는 6명의 운전수와 6명의 통역을 태우고 작전 기간중 델타 포스를 테헤란으로 수송할 트럭들을 숨겨둔 창고로 이동하며 다른 한 대는 베크위스와 다른 12명의 델타 포스 대원들을 태우고 테헤란 시내에 잠입해 대사관 주변을 정찰.
베크위스가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뒤 20시 30분, 델타 포스는 6대의 트럭에 분승해서 테헤란 시내로 강습. 외무성에 억류된 다른 인질들을 구출할 그린베레 작전팀은 버스에 탑승해서 델타 포스와 따로 이동.

4단계 : 미 대사관에 도착한 델타 포스는 3개 팀으로 나뉘어 각 팀의 구역에서 위치를 잡고 작전을 수행. 화력이 취약한 구출부대를 위해 상공에는 AC130 건쉽의 지원이 준비됨. 대사관이 장악되면, 미리 준비하고 있던 헬리콥터들이 인질과 구출대원들을 퇴출시킴.

5단계 : 구출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지프와 오프로드 오토바이를 장비한 75명의 레인저 중대를 태운 MC-130 2대가 건쉽의 호위를 받아 이란군의 버려진 활주로를 강습. 활주로가 확보되면 사우디에서 대기중이던 C-141 수송기가 도착해 구출부대의 도착을 기다림.
구출부대와 인질들이 레인저가 확보한 비행장에 도착하면 C-141기에 탑승해 F-14 전투기의 엄호를 받으며 탈출. 레인저는 구출부대가 타고 온 헬리콥터들을 파괴시킨 뒤 타고 왔던 MC-130편으로 귀환.

작전에 동원된 해군의 RH-53D 소해 헬리콥터.

... 보다시피 엄청나게 복잡한 작전이다. 거기다 특별한 당위성 없이 단순히 각 군의 이해관계에 따라 작전 규모가 커진 부분도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앞으로 작전을 대차게 말아먹을 헬리콥터에 관련된 사항들이다. 작전에 사용되기로 한 해군의 RH-53D은 본격적인 특수전용이 아닌 단순한 기뢰 제거용 소해 헬리콥터들이었다. 물론 델타 포스측에서는 이 부분을 걱정했고, 구출작전을 총괄하는 JTF의 공군 특수전력 핵임자였던 제임스 카일 대령은 해군의 소해 헬리콥터 대신 공군 CSAR 비행대의 HH-53 헬리콥터와 파일럿들을 동원하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delta3.jpg
이글 클로 작전중 데저트 원에 내린 레인저 대원. 구출작전이라 그런지 레인저답지 않은 흑복 차림에 눈에는 야간투시경까지 끼고 있다.

3 말어먹기 시작한 작전의 진행

그리고 운명의 작전 개시일. 데저트 원에 무사히 전개한 레인저와 인질구출부대인 델타 포스는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민간 차량들을 정지시키고 인질구출부대인데도 차량 안의 민간인들을 억류시키며 LZ에서 대기했다. 중간에 지나가던 유조트럭 1대를 바주카로 쏴버리는 실수로 불타오르고 트럭 운전사는 도망쳐버리는 난장판이 벌어졌지만[1]

그래도 작전은 그럭저럭 순조롭게 진행(하지만 당연히 이 유조트럭의 대폭발은 멀리서 목격되어 신고되었고 이란군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되었고, 이윽고 다른 수송기 5대도 꾸역꾸역 착륙해서 헬리콥터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헬리콥터가 안 온다.

한참을 기다리자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1대씩 서로 다른 방향에서 털레털레 날아온 헬리콥터는 총 6대뿐이었다. 알고보니 날아오는 도중 모래폭풍을 만났고, 작전을 위해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런 야간비행, 그것도 특수전 비행에는 익숙치 못했던 헬리콥터 조종사들은 기체 고장문제까지 겹쳐서 제대로 LZ에 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6대가 모였으니 작전을 어떻게든 진행하려는 찰나, 지상에서 1대의 헬리콥터가 추가로 고장나버려 헬리콥터가 부족하게 되었고, 결국 작전은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취소되어 다시 복귀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헬리콥터 1대가 급유를 해주던 C-130기를 들이받아 수송기 승무원 5명과 헬리콥터 승무원 3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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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한 뒤에야 헬리콥터들의 상태가 그렇게 개판이었던 이유가 밝혀졌다. 헬리콥터들을 정비한 정비사들은 훈련때부터 함께 해온 이들이 아니라서 이 헬리콥터들이 무슨 일을 하러 가는지도 모르고 통상적인 수준의 정비만 했던 것이었다. 가뜩이나 불안불안한 헬리콥터들이었는데 거기에 결정타를 날린 셈이었다.

결국 델타 포스는 현지의 정보망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에서도 자체 정찰팀을 침투시켜 구출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차량과 은거지까지 구축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부대'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으나, 이런 뼈아픈 실패는 곧 미군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한편 유조트럭 폭발 신고를 듣고 이란은 미군이 들어온 걸 알아차려 이란군이 출동했는데 그들은 불타버린 미군 시체 8구랑 온갖 장비 파편을 발견하고 어이없어 웃었다고 한다. 그리고 좋아라 우리 이란으로 쳐들어온 미국 새키들이 지들끼리 들이박아 이런 꼴이 났습니다라며 방송으로 미군 시체들 및 장비를 보여주며 전세계로 송출했다. 그야말로 미국은 개망신을 당했고 미국 여론도 가서 미군끼리 서로 죽고 돌아왔어? 라고 어이없어했다. 나중에서야 미국 정부는 사망자 시체 모두를 이란에게 애걸복걸하면서 유조트럭 배상비를 비롯한 여러 경제적 보상을 해주고 나서야 돌려받았다.

4 실패의 교훈

이글 클로의 대실패를 통해서 얻은 교훈들을 통해 카터 행정부 들어서 거의 씨가 말라가던 특수전 부대의 재정비, 전문적인 특수전 비행대[3]의 창설, 원활한 합동 특수작전의 수행을 위한 합동특수전사령부(JSOC)의 창설이 이루어졌으며, 델타 포스는 이후 계속되는 작전들을 통해 억울하게 뒤집어 쓴 오명을 만회한다. 안타깝게도 델타 포스뿐만 아니라 미군 전체가 단단히 벼르고 있던 2차 구출작전은 인질 석방으로 인해 시도조차 못하고 취소되지만...후일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로 개편되는 특수전 비행단, TF-160의 전신인 TF-158과, 해군판 델타 포스라고 할 수 있는 SEAL 제6팀이 창설된 계기 역시 2차 구출작전을 준비하면서였다.
  1. 이는 카더라가 아니라 당시 작전에 참여하던 이들이 증언하여 국내에서도 더빙방영한 다큐멘터리에서도 나왔다. 트럭이 미군의 정지신호를 무시하자 그냥 바주카를 쏴버렸더니... "우린 비명을 질렀습니다...라고 했는데 쏜 다음에서야 유조트럭이라는 걸 알았기에 폭발은 엄청났고 멀리서도 다보였으니 우린 이제 들키는건 시간문제다!" 라면서 당황했다...고 증언했다.
  2. 한국에서는 이 때 델타포스 부대원 전원이 사망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 출판인쇄물이나 인터넷 텍스트가 많다.
  3. 후일 TF-160으로 개칭되며, 이들은 90년대에 다시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로 개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