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매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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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들. 왼쪽부터 빅토르 사엔코, 이고르 수프루니유크. 뒤에 보이는 모자이크 처리된 것은 목 매달린 개의 사체이다.

1 개요

The Dnepropetrovsk maniacs

흔히 인터넷에서 "3 Guys 1 Hammer" 혹은 "3 Guys 1 Screwdriver"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사건. [1] 2007년 6월부터 7월까지 우크라이나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2]란 곳에서 3명의 십대 후반 소년들이 21명을 재미로 살해하고 비디오를 찍어 인터넷에 올린 사건이다. 특정 대상 없이 여자, 어린아이, 노인, 노숙자, 취객, 성인 남성 등 무작위로 약해 보이는 사람을 살해했다. 범인들은 신나치주의를 신봉하는 미성년자이며, 단지 재미를 위해 동물을 학대하고 21명의 사람을 죽인 뒤 휴대전화로 촬영해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뿌렸다. 정작 히틀러는 동물애호가였건만

21번 중 12개의 살인이 동영상으로 남겨졌고, 총 300개가 넘는 사진을 찍었다.

용의자들은 이고르 수프루니유크(Igor Suprunyuck), 빅토르 사엔코(Viktor Sayenko)와 올렉산드르 한자(Alexander Hanzha)로 모두 1988년생이며, 검거 당시 19살이었다.

2 사건 내용

빅토르 사엔코, 이고르 수프루니유크, 올렉산드르 한자는 우크라이나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에 살고 있던 19살의 러시아 출신 청년 3명이었고, 2007년 여름에 한 달 동안 살인 계획을 짜게 된다. 이들은 처음엔 고양이나 개 등 작은 동물을 연습 삼아 죽여서 동영상을 찍었고, 곧 인간으로 표적을 옮긴다.

첫 번째 살인은 2007년 6월 25일 늦은 밤에 일어났다. 피해자는 33살의 한 동네 여성이었는데, 친구 집에서 차 한 잔하고 집으로 걸어 돌아가던 중 살해당했다. 그 당시 수프루니유크는 망치를 가지고 있었고, 여자가 그들 곁을 지나갈 때 수프루니유크가 갑자기 그녀를 공격했다. 그녀의 시신은 어머니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 시간 후, 사엔코와 수프루니유크는 한 명을 더 살해한다. 살해된 사람은 남성이었고, 살해될 당시 그는 벤치에서 자고 있었다. 그의 시신을 찾았을 때 그의 머리는 묵직한 무언가로 몇 번 내리쳐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진 상태였다. 그가 죽은 벤치는 검찰관의 사무실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두 번째 살인은 2007년 7월 1일에 일어났다. 총 두 명이 죽었는데 피해자들의 시신은 노보모스코프스크(Novomoskovsk)라는 마을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2007년 7월 6일에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에서 3명이 더 살해된다. 첫 번째 피해자는 공격을 받았을 당시 클럽에서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그의 시신은 어머니에 의해 아파트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두 번째 피해자는 28살의 여성이었고, 야간 경비였다. 사엔코가 진술하길 여성이 그들을 향해 걸어왔을 때 수프루니유크가 자신의 옷 속에 숨겨두었던 망치로 그녀를 몇 번이나 내리쳤다고 한다. 그러고선 그녀의 가방에서 옷을 꺼내 망치를 닦은 후 가방을 던져버렸다고 한다. 같은 날 밤, 또 다른 여성이 살해당했는데 그녀는 세 아이의 어머니였고 장애인 남편이 있었다.

다음 날 2007년 7월 7일, 포드고로즈노예(Podgorodnoye)라는 마을에서 살고 있던 14살 남자 아이 두 명이 마을 근처에서 공격당했다. 대낮에 낚시하러 갔다가 봉변을 당한 것. 두 소년들 중 한 명은 살해당했고, 다른 한 명은 도망쳐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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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변에서 세르게이를 기다리는 이고르. 손에 든 것은 노란 비닐봉지로 안에는 망치가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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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게이 야츠젠코가 도로에 내동댕이쳐진 사진.

2007년 7월 12일, 48세 남성 세르게이 야츠젠코는 오토바이를 타러 나갔다가 사엔코와 수프루니유크, 한자에게 살해당한다. 야츠젠코가 죽을 당시의 동영상은 지금도 남아 있으며 정말 죽을 동안 끔찍한 고문들을 겪었다. 이 미친 살인범들은 스크류드라이버로 그의 배와 장기를 쑤셨고, 그래도 죽지 않자 눈을 쑤시고, 눈을 통해 뇌를 쑤셨다. 하지만 야즈첸코는 죽지 않고 엄청난 아픔을 느껴 손으로 눈을 감쌌다. 계속해서 망치로 그의 얼굴을 몇 번이나 내리쳤지만 그는 살아 있었다. 말 그대로 얼굴이 반으로 갈라지고, 눈이 빠지고, 뇌와 장기들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지만 끝까지 숨이 붙어 있던 것이다. 영상에서 이 인간쓰레기들은 고통에 울부짖는 그를 보면서 비웃으며 즐거워한다. 결국 야츠젠코를 죽인 후 손을 씻고 그 장소를 떠난다.

살인 가담자 중 한 명인 올렉산드르 한자는 겁이 나서 중간에 관두게 된다. 하지만 사옌코와 수프루니유크는 범행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들은 그 후에도 13명을 더 죽였다.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반항할 힘이 없는 약한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쇠파이프로 죽였지만 시간이 너무 걸려 망치로 바꾸었다. 죽임을 당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까지 고문을 당했고, 몇몇은 살아 있는 채로 눈이 꺼내지기도 했다. 죽임을 당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은 임산부였는데, 태아가 뱃속에서 꺼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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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이 천하의 개쌍놈들은 희생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뻐큐를 날리고 기념사진을 찍는 등 대놓고 고인 모독을 하기도 했다.

3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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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에 출두한 범인들.

얼굴도 안 가리고 녹화한 영상을 인터넷에 마구 뿌린 탓에 결국 7월 23일에 이 끔찍한 살인 행각은 막을 내렸다. 수프루니유크와 사멘코는 종신형에 처해졌고, 한자는 9년의 형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자식에 부모 아니랄까 봐 살인범들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은 "살인같은 짓 안 했다"며 "아이들의 자백은 강요된 것"이라고 지껄였다. 그럼 그 영상은? 우크라이나 내무군 요원들이 할짓이 기대된다,왠만해서 중범죄자들은 다 죽도록 패는 사람들인데 우크라이나에서 해서 다행이지 러시아에서 했으면 모두 내무군 형님들에게 잡혀가 어디 으쓱한 곳에 끌려가서 죽을때까지 보드카를 트럭채로 들이킬것이다

4 범행의 동기

검찰의 말에 의하면 특별한 동기를 찾을 수 없었다 한다. 사엔코와 수프루니유크는 돈 많고 힘 좋은 집안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스너프 필름을 팔아 부자가 되볼라 했다고 한다. 한 용의자의 여자친구가 말하길 그들은 각기 다른 40개의 스너프 필름을 만들려 했다고 한다. 용의자의 같은 반 아이의 말에 의하면 수프루니유크가 의문의 남자와 얘기하는걸 들었는데 사이트의 운영자가 수프루니유크에게 스너프 비디오를 주문했고, 비싼 돈에 스너프 비디오를 산다고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맞다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스너프 필름을 찍은 셈이 되는 거지만... 근처 경찰은 사엔코와 수프루니유크와 한자가 살인을 하고 비디오를 찍은 건 비디오를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취미로 죽였고 비디오를 찍은 건 나중에 그들이 나이를 먹고 난 후 추억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보통 미친 게 아닌 듯하다

그들이 살인 당시 찍었던 사진들엔 이러한 글귀가 있었다. "The weak must die. The strongest will conquer (약한 자는 죽어야 한다, 강한 자가 정복할 것이다)"결국 자기들도 자기들보다 훨씬 강한 공권력에 의해 체포 당했다.

5 기타

인터넷상에선 아직까지 그 당시 살해 행각의 동영상이 "3 guys 1 hammer"란 이름으로 남아있으며 해외에서는 이 영상의 리액션 비디오를 찍기도 한다. 다만 정신 건강에 매우 안 좋을 뿐더러 죄 없는 사람들이 무차별히 죽어가는 영상을 단순 오락용으로 보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있어 보인다.

6 관련 링크

  1. 일본이나 한국에선 '우크라이나 21' 사건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2. 약칭은 드네프르. 율리야 티모셴코의 고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