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미국 교외 지역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지옥. 이름은 러브지만 절대로 러블리한 곳이 아니다
1 경위
1890년대 초, 윌리엄 T. 러브는 전력의 획득과 선박 운행을 목적으로 운하 건설을 계획했다. 이때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큰 장애물이었는데 폭포만 없다면 미국 중부 내륙에서 대서양 연안까지 선박을 운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러브는 나이아가라 강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해 물길을 트겠다고 운하 공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재정위기로 이 운하 건설은 중단됐다.[1] 이미 길이 1마일(약 1.6km), 폭 15피트(약 4.6m), 깊이 10피트(약 3m) 정도의 구덩이가 파여진 다음이었고 이렇게 흉물로 남겨진 구덩이의 이름은 '러브 커낼(LOVE CANAL)' 이었다.
1920년 러브의 토지는 나이아가라 시에 매각되어 화학폐기물 매립(석유화학과 화학무기 폐기물)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1942년에는 후커 사(Hooker Chemical and Plastics Corporation)도 폐기물을 매립하기 시작했다. 1947년부터는 후커 사만 단독으로 매립했고 이후 5년 동안 약 2만 2천톤의 독성 폐기물을 매립했다고 한다. 1952년엔 매립이 완료됐고 시설은 폐쇄됐으며 폐기물 위로 불투수성 진흙으로 두껍게(약 4피트) 덮었다. 이대로 폐기물이 잠들었어야만 했던 것을...
2 재앙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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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이 완료되었을 때 나이아가라 시의 인구가 늘어나 지역학교위원회(!!!)는 부지난을 겪던 도중 후커 화학사에 이 토지의 매입을 희망했다. 이런 미친 난 여기서 빠져 나가야 되겠어
철조망 뒤의 건물이 문제의 학교
화살표의 학교와 파랑 색의 Canal의 거리를 보라
후커 화학사는 매각에 반대하며 조사공을 뚫어 폐기물 매립을 시에 설명하였다. 하지만 부지가 부족했던 위원회는 토지 매입을 반대하지 않고 토지소유권에 문제가 생긴 후커 사는 토지를 단 1달러에 나이아가라 시에 매각하면서 토지 이용의 위험성을 경고하였다.[2]
문제는 시작하기 전에 나타났다.
학생이 학교 건물의 지하에서 악취가 나는 물을 발견하였고, 이 지역의 유산율이 다른 지역의 몇배는 된 것이다.
그러다 1957년 나이아가라 시는 하수도 건설 중 진흙폐쇄층을 파괴하면서 문제가 점차 수면으로 드러났다. 1958년 주민들이 악취를 항의했고 마당에 화학물질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이나 지난 1978년 러브 커낼 거주민 연합의 회장 로이스 깁스의 건강영향 조사가 시작됐다. 큰 쟁점은 이랬다.
- 러브 커낼 거주민 연합 : 높은 암 발생 및 기형아 발생은 폐기물이 원인이라고 투쟁
- 후커 사 및 정부 : 폐기물과 무관하다고 반박
- => 학교는 폐쇄됐지만 학교 위원회 및 회사는 폐기물과 연관성 부인
1978년 8월 미국 언론에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지미 카터 대통령은 러브 커낼을 연방 비상지역으로 선포하고 매립지 인근 주민을 이주시켰다. 과학적인 조사 실시 후 벤젠 등 11가지 후보 발암물질이 존재하고 폐기물이 토양을 통해 이동했으며 지하실을 통해 실내 공기가 오염되었음이 규명되었다.
화학물질 성상 | 중량(t) | 화학물질 성상 | 중량(t) |
Acid chloride 류 | 400 | Liquid disulfides(LDS/MCT) | 700 |
Thionyl chloride | 500 | Hexachlorocyclohexane(BHC, Lindane) | 6,900 |
Chlorination 류 | 1,000 | Chlorobenzene | 2,000 |
Dodecyl mercaptan(DDM) | 2,400 | Benzyl chloride | 2,400 |
Trichloropphenol(TCP) | 200 | Sulfide | 2,100 |
Benzoyl chloride | 800 | 기타 | 2000 |
Metal chloride | 400 | 합계 | 21,800 |
이것이 매립된 화학 물질의 종류와 양이다.
1980년 5월 러브 커낼 거주민의 혈중 염색체 손상, 발암, 생식이상 및 유전적 위험성을 보고됐고 지미 카터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1500여 가족을 이주시키며 보상키로 했다. 당국의 조사결과 이 지역 여성들의 유산율이 다른 지역보다 4배나 높았고 1973년~1978년에 태어난 아이들 16명 가운데 9명이 정신박약이거나 심장, 신장질환을 앓았다. 이 사건은 미국에서 유해산업폐기물 처리기금 관련법인 '슈퍼펀드(Superfund)법(Comprehensive Environmental Response Compensation and Liability Act)' 을 개정하는 계기가 됐다.
러브 커낼 지역은 세 차례에 걸쳐 총 2억 5천만 달러를 들여 복구를 시도했지만 아무도 살지 못하는 죽음의 도시가 되었다. 그래서 현재도 이 곳은 단 한 명도 살지 않는 유령도시로 남아있다.
더 막장인 것은 슈퍼펀드법으로 찾아낸 러브 커낼과 비슷한 지역이 미국 내에서만 2만 766개였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유해물질 제거를 실시한 장소는 507개. 그것도 1985년 9월 30일에 만료되었다가 1986년에 기금을 16억 달러에서 85억 달러[3]으로 증액하는 법이 통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