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버트런드 러셀이 제안한 유추
만일 내가 지구와 화성 사이에 도자기 찻주전자 하나가 타원 궤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 찻주전자는 너무나 작아서 성능이 가장 뛰어난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다고 덧붙인다면 아무도 내 주장을 반증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내 주장을 반박할 수 없기에, 내가 이를 의심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억측이라고 주장한다면, 모두들 당연히 내가 헛소리를 한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찻주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고대의 책에도 나오고 일요일마다 신성한 진리로서 가르치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주입한다면, 이 존재를 믿기를 망설이는 것은 기행의 표식이 되고 이를 의심하는 자들은 현대의 정신과 의사나 옛날의 이단 재판관의 관심 대상이 될 것이다. |
여기에서 태양을 공전하는 찻주전자는 보통 반증이 불가능한 대상(특히 신)을 의미한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 비유를 통해서 신의 실존에 우호적인 종교를 비판하고자 했으며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으므로 신앙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허황됨을 보여준다.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지 없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믿음을 유지하는 것은 웃긴 일이라는 말이다. 반증이 불가능한 대상에 대한 패러디라는 점에서,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나 내 차고 안의 용, 보이지 않는 분홍 유니콘과 사실상 동일한 개념.
이걸 통해 불가지론을 까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이 유추는 불가지론 자체를 까는 것이 아니라 불가지론을 말하면서 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종교인들을 비판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유신론적 불가지론자나 호교적인 성향의 불가지론자 혹은 불가지론의 탈을 쓴 종교인들을 까는 용도로는 쓸 수 있겠지만, 불가지론 그 자체를 까는 용도로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일단 러셀 자신도 이 찻주전자의 존재/부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전제는 인정하고 시작한다. 다만 존재/부재를 증명할 수 없으니 존재를 믿지 않고, 신의 존재를 믿지 않으니 무신론자인 것. 무엇보다도, 러셀 자신부터가 무신론적 불가지론자에 가깝다.
사실 위에서 불가지론과 관련해서 쓸데없이 길게 설명했지만, 여기서 나온 것은 '거증책임'의 문제이다.
무엇의 존재 혹은 당위를 설명하고 싶다면, 그것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거증책임(=증명책임=입증책임)이다. 그리고 이는 현대 법학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자신이 입증해야 한다'라는 입증책임 분배의 원칙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화성궤도의 찻주전자'이건, '신앙의 대상'이건 그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이 입증해야 하고, 그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입증하라고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러셋의 찻주전자인 것이다.
2 본격 무신론 만화 러셀의 찻주전자
Chaz Braman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연재하던 만화. 러셀이라는 비범한 꼬마와 기독교의 신이 등장해 무신론의 테제들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홈페이지는 닫힌 상태다. 무신론 갤러리 고정닉인 Safranine이 자신의 블로그에 번역본을 포스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