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아프리카누스

al-Hasan ibn Muhammad al-Wazzan al-Fasi
(1494~1554)
Flaminio,_Marcantonio_(1498-1500).jpg
아랍의 외교관, 탐험가, 작가.

본명은 알 하산 이븐 무함마드 알 와잔 알 파시이며 유럽인들에게는 레오 아프리카누스(레오 아프리카노), 라틴어로는 요한네스 레온, 이탈리아어로는 조반니 레오네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이 중에서 레오 아프리카누스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베리아 반도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그라나다에서 태어났으며 포르투갈, 에스파냐의 공격으로 나스르 왕조가 밀리자 북아프리카의 와타스 왕조의 도시인 모로코의 파스(페즈)로 이주하였다.

파스(페즈)에 있는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 교육의 중심지로 유명했던 알 카라윈 대학에서 교육하며 그 곳에서 자랐고 자신이 사는 도시인 파스(페즈)에 대해 볼 만한 세계이며 크고 붐비고 훌륭하게 성채,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고 묘사했다.

1501년경에는 외교관인 삼촌을 마그레브까지 동행하면서 송가이 제국의 도시인 퉁북투(팀북투)까지 여행하였는데 그는 책에서 이 때 자신이 여행한 서아프리카의 전설 속 황금 도시인 퉁북투(팀북투)에 대해 궁에는 금물을 입히고 학문이 크게 발달한 진정한 엘도라도라고 묘사하였다.

1517년 파스의 술탄인 무함마드 2세 밑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이스탄불에 가고 정복 활동인 로제타를 갔으며 카이로, 아스완 등을 거치고 홍해를 건너며 성지순례를 하기 위해 메카까지 가는 등 아라비아 반도까지 여행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튀니지로 돌아가다가 1518년에 크레타에 가까운 제르바 섬의 근처에서 스페인의 해적인 커세어의 공격을 받아 나포되어 로마의 교황인 레오 10세에게 넘겨져 감옥에 갇혔다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유한나 알 아사드라는 이름으로 바꿨으며 레오 10세를 위해 <아프리카 보고>라는 그가 청년 시절에 아프리카를 탐험하면서 익힌 아프리카의 생활, 생물, 지리, 세계관 등등 아프리카에 다양한 정보가 있는 책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인기를 얻어 5번이나 재판되었다고 하며 책에 저술한 정보에 있는 모든 장소를 방문한 것이 아니라 모로코의 여행자에게서 얻은 정보에 의존한 점도 있었기 때문에 오류도 있었으며 책을 저술한 이후 3 ~ 4년간 이탈리아를 여행하였다가 1526년에 로마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후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지만 전승에 따르면 1527년에 브르고뉴(신성로마제국)의 왕인 카를 5세가 로마를 공격하여 로마의 약탈로 클레멘스 7세를 구금하자 몰래 로마를 떠나 하프스 왕조의 튀니지로 가서 이슬람으로 다시 개종했다고 하며 1554년에 튀니지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이름의 어원 과정에서도 언급되는데 그리스어로 “추위가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phrike에 접두사인 -a를 붙여 aphrike를 추위와 공포가 없는 땅이라고 제시하였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튀니지에서 레오 아프리카누스의 저택에서 아랍에 관련된 정보를 습득하는 NPC와 바다에 돌아다니는 일반몹 중에 하산 무함마드가 따로 있다.[1]
  1. 비슷한 예로 세비야 NPC 토메 피레스가 리스본 앞바다에도 출몰하는 사례도 있고, 바스케스 데 말도나도처럼 2개 이상 해역(안틸제도/카나리아)에 동시 존재하는 NPC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