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페로

Henry Ross Perot

1 개요

미국의 사업가이자 정치가. 1992년과 1996년 대통령 선거에 나섰으나 각각 빌 클린턴에게 패배하였다.

2 경력

텍사스 출신으로 미 해군에서 4년 간 복무했다.

2.1 사업

주로 IT 산업에 종사했으며 IBM에서 일하다가 나와 Electronic Data Systems(EDS)를 차려서 크게 성장시켰다. EDS가 GM에 인수된 뒤에 퇴사하였으며, 그 뒤에 스티브 잡스가 세운 NeXT에 출자하기도 했다.

2.2 정치

1992년 TV쇼 래리 킹 라이브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공약은 균형 재정, 총기규제 반대, 보호 무역 등이었다. 한때 높은 지지율을 받았지만 미국 50개 모든 주(州)에서 후보 등록이 어렵다고 생각해서 출마를 취소했다가,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등록하여 다시 출마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지자를 빌 클린턴에게 거의 빼앗겼다.

1992년 대선에는 18.87%의 득표율을 보였으며, 선거인단은 1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1995년 ‘미국 개혁당’을 창설하고 1996년에 다시 대선에 도전하였지만, 이전보다 낮은 8.40%의 득표율로 다시 낙선했다.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빌 클린턴의 가장 큰 정치적 은인이라고도 볼수 있다. 2000년, 2004년, 2008년, 2012년 최근 4차례 대선을 보면 공화당이 가장 발린 2008년 대선 오바마 vs 맥케인 때도 공화당 후보 맥케인은 45.7%를 득표했는데, 92년 공화당 부시는 37.5%, 96년 밥 돌은 40.7%를 얻는데 그쳤기때문. 반면에 클린턴은 92년에 43.0% 96년에 49.2%를 얻으며 당선했다. 오바마가 2012년에 51.1%로 당선되었는데, 16년간 민주당의 지지층인 히스패닉 인구가 엄청나게 증가한점을 감안하면 96년 대선의 경우 로스 페로의 출마로(8.4%득표) 민주당 이탈표는 거의 없었고, 공화당 표만 주로 분산시킨것. 로스 페로의 출마로 클린턴은 비교적 손쉽게 초선,재선에 성공한셈.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미국 개혁당에서 패트릭 뷰캐넌을 후보로 내놓았지만, 이전보다 더욱 낮은(…) 득표율을 보였으며 미국 녹색당의 랄프 네이더에게 밀려 제4위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