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그린우드


1723368_w2.jpg

이름Ronald 'Ron' Greenwood CBE
생몰년월일1921년 11월 11일 ~ 2006년 2월 9일(만 84세)
국적잉글랜드
출신지랭커셔 주 워쏜(Worsthorne)
포지션수비수
소속팀브래드포드 파크 애비뉴 (1945~1949)
브렌트포드 FC (1949~1952)
첼시 FC (1952~1955)
풀럼 FC (1955~1956)
감독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1961~1974)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1977~1982)

해머스의 전성기를 이룩해낸 감독

1 일생

1.1 데뷔 이전

1921년에 랭커셔 주 번리 인근에 있는 워쏜이란 지역에서 태어나 9살 때인 1930년에 대공황으로 인해 런던으로 이사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4세에 학업을 중퇴하고 간판 화가로 일했다.

1.2 선수 시절

그린우드는 간판 화가로 일하던 도중에 첼시 유소년 팀에서 뛰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공군으로 참전했으며, 그 와중에 북아일랜드에 있는 벨파스트 셀틱[1]에서 객원으로 뛰기도 했으며, 1945년에 브래드포드 파크 애비뉴에 입단하여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R%20Greenwood.jpg
첼시 시절의 모습.

그는 1956년에 풀럼에서 은퇴할 때까지 11년을 평범하게 선수 생활을 했는데, 유일한 업적은 첼시 시절인 1955년에 리그 우승컵을 든 것 정도이다.

1.3 감독 시절

1.3.1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rg726.jpg

선수 은퇴 이후 FA에서 코치 자격증을 얻고 난 뒤 이스트본 유나이티드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여 당시 옥스퍼드 대학교 물리학 교수인 해럴드 톰슨 경[2]의 권유로 옥스퍼드 대학교 축구팀 코치를 맡다가 잉글랜드 유스 대표팀 등을 거쳐 1957년 12월부터 아스날 FC로 옮겨 조지 스윈딘 감독을 보좌하였고, 1961년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회장 레그 프래트 회장의 부름을 받고 테드 펜턴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한다.

그는 바비 무어, 제프 허스트, 마틴 피터스를 축으로 중상위권을 수성하며 1964년에 팀을 FA컵을 우승시켰고, 이후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까지 우승하여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1960년대 후반에 트레버 브루킹, 프랭크 램파드 시니어, 해리 레드냅, 빌리 본즈 등을 영입하여 세대교체를 성공시켜 중위권을 수성하다 1974년에 감독직을 수석코치인 존 라이얼에게 물려주고 총감독으로 승진했다.

1.3.2 잉글랜드 국대 감독 시절

_41313340_greenwoodtraining220.jpg

1974년 퇴임 이후 웨스트 햄의 총감독으로 3년을 재직하다 1977년에 돈 레비 국대 감독이 경질되자 취임[3]하여 유로 19801982 스페인 월드컵에 출전시켰지만, 둘 다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그나마 잉글랜드 대표팀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인 비브 앤더슨을 발탁한 것이 그의 업적이다.

1.4 은퇴 이후

1982년 감독 은퇴 이후 BBC 라디오에서 축구 해설위원으로 재직하였고, 말년에는 알츠하이머로 고생하다 2006년 2월 9일에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4일 뒤인 9월 13일에 개최된 버밍엄 시티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경기는 론 그린우드 추모경기로 치뤄졌으며, 경기는 웨스트햄이 3-0으로 승리했다.

2 우승 기록

2.1 선수 시절

2.2 감독 시절

  1. 1949년 해체.
  2. 그는 훗날 잉글랜드축구협회의 회장이 된다.
  3. 브라이언 클러프 역시 국대 감독이 되려고 했으나 무산되었다.